극장은 만남의 장소다. 그저 사람을 만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요즘은 영화를 ‘본다’라기보다는 차라리 ‘만난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영화를 만날 때 극장의 분위기와 상황, 이른바 극장의 ‘공기’까지 포함하여 유일한 형태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나의 첫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떠올릴 때 이 영화를 만났던 부영극장의 추억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포동 극장가 초입에 있던 부영극장은 부산에서 가장 좌석수가 많았던 초대형 극장으로 스크린 사이즈도 당시 최대였다. 돌이켜보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잔잔한 영화를 굳이 그 극장에서 볼 필요는 없었지만 덕분에 아직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얼굴의 깊게 팬 주름까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정확히는 부영극장에서 보지 않았다면 이스트우드의 구겨진 얼굴이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부영극장은 2000년 무렵에 결국 문을 닫고 없어졌는데, 그 이후로는 당시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기분이다. 이젠 그날의 공기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 시절 서울로 올라와 처음 영화를 본 극장은 충무로 대한극장이었다. 대한극장은 가능하면 겹치는 영화를 틀지 않아서 좋았다. 2001년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를 대한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심야 마지막 회차였는데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관객들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서로 떠들어대던 목소리들이 기억난다. 얼마 전까지도 대한극장 한 모퉁이를 지날 때마다 문득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했다. 기록이란 단지 종이 같은 인쇄매체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새겨질 수 있다. 부영극장의 구석진 자리, 대한극장의 담벼락에도 그곳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이들의 기억이 각자의 형태로 기록되었다. 지금은 없다. 장소라는 기록이 사라지면서 기억도 점차 희미해져 간다.
종종 우리 사회가 쓸모와 편의를 기준으로 쉽게 이 흔적들을, 기억의 거점들을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장소들, 극장들이 소리 없이,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사라질 때마다 마음이 쓰리다. 한국영화사가 단절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단관극장이 사라진 후 멀티플렉스가 들어섰던 것처럼, 멀티플렉스가 사라진(혹은 바뀐) 후 극장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을지 알 길이 없다. 본래 오래 남은 장소들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하다. 녹이 슬어 지워지기 전에, 그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해져 그 소중함을 잊기 전에 가끔 되새겨 오늘의 기억으로 되살려야 한다. <씨네21>이 30주년을 맞이한 지금, 광화문 씨네큐브의 2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특집은 단순히 지난 30년의 최고작들을 고르고 줄 세우는 리스트 업과는 조금 결이 달랐으면 한다. 지금 구태여 다시 이 영화들을 호명하는 건 기억의 이정표를 세우는 작업이 되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작은 욕심을 부리자면 극장이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여기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이 있다. 그럼 이 영화들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씨네큐브와 함께, 영화들이 반짝이고 사라졌던 극장의 기억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선물 같은 시간을 준비했다. 총 20편의 영화가, 언젠가 우리가 만났던 극장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