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보이스
[박홍열의 촬영 미학] 시점숏, 마음의 높이
박홍열(촬영감독) 2025-11-13

* <세계의 주인>에 대한 직접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점숏은 등장인물의 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숏이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이 시점숏을 통해 주인공의 눈이 되곤 한다. 바라보는 인물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리액션숏과 달리 시점숏은 대상 그 자체를 보여주며 관객의 감정적 몰입을 돕는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 시점숏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창작자들이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카메라를 인물의 눈높이(아이레벨)에 정확히 맞추려 애쓰지만, 실제 인물의 눈높이에서 촬영하면 대상이 살짝 부감으로 보이며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곤 한다. 이 시각적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간의 눈은 대상을 볼 때 시선을 약간 아래로 내린다. 평행한 눈높이에 있는 물체를 볼 때조차 눈동자의 움직임은 보통 아래쪽을 향한다. 우리의 ‘실제 눈높이’와 ‘대상을 인지하는 높이’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정직하다. 카메라를 인물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상을 촬영하면, 카메라는 기계적으로 그 대상과 정확하게 수평을 이룬다. 카메라가 인간의 눈높이에서 수평으로 바라보는 구도는, 우리가 일상에서 대상을 살짝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과 달라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대상이 인물보다 아래에 있다면 눈높이에서 촬영된 시점숏은 부감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이 ‘눈높이의 역설’을 독특하게 극복하고 진정한 공감적 시선을 획득했던 한 사진가의 이야기가 있다.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리 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진실을 폭로한 종군 사진가다. 패션지 모델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시선으로 직접 대상을 찍고 세상을 만나고 싶어 사진가로 전향했다.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처음에는 여성 관련 기록에만 머물렀지만, 결국 미국 육군 소속 종군 특파원 자격을 얻어 격전지로 향한다. 그녀의 사진이 전쟁 속 여성과 아이들을 섬세하고 공감적인 시선으로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윤리적 의지와 그녀가 선택한 카메라의 물리적 특성이 맞물린 결과였다.

리 밀러가 전쟁 내내 모든 기록을 위해 사용했다고 알려진 카메라는 롤라이플렉스, 즉 이안리플렉스카메라다. 이 방식의 카메라는 뷰파인더가 사용자의 가슴과 허리 사이에 있는 웨이스트레벨파인더이다. 사용자는 카메라를 허리 높이에 두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구도를 잡고 촬영해야 한다. 뷰파인더의 위치가 인간의 눈높이보다 훨씬 낮은 앵글을 기본으로 설정하기에 ‘구조적 공감’을 이룬다. 서 있는 인물을 찍을 때도 카메라가 대상보다 항상 아래에 위치하며, 공포에 움츠려 앉아 있는 여성과 아이들을 찍을 때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선과 동일한 아이레벨로 쉽게 촬영된다. 리 밀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그들보다 더 낮은 위치에 카메라를 위치시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낮추었다. 그녀의 카메라는 구조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위에서 아래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리 밀러와 함께 전장을 누비던 <라이프>의 동료 남성 종군기자 데이비드 셔먼이 사용한 카메라는 라이카로 레인지파인더 방식이었다. 이 카메라는 뷰파인더가 인간의 눈높이와 같은 상단에 있다. 레인지파인더는 기동성이 좋아 빠른 스냅 촬영이 쉬웠고, 남성 중심의 종군기자들이 전투 상황 기록용으로 많이 사용했다. 이는 인간의 실제 눈높이와 같아 역설적으로 심리적 거리감과 약간의 부감 시선을 내포하기 쉽다. 리 밀러의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는 35mm 카메라 기준 40mm 내외의 단초점 렌즈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편하게 느끼는 화각과 비슷한 렌즈로 풀프레임 안에 대상을 채우려면 사진가가 직접 대상에게 다가서야 한다. 리 밀러는 강제수용소의 시신이나 생존자들에게 아주 가깝게 다가가 정면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사진을 남겼는데, 이는 다른 남성 종군기자들이 먼 거리에서 기록한 사진들과 확연히 대비된다. 리 밀러는 남성 중심의 전쟁 서사와 전투보다, 전쟁 피해자와 생존자를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인간의 눈높이보다 낮은 높이에서 전쟁 속 여성들을 피해자인 동시에 생존자, 그리고 사회적 압력의 희생자로서 입체적으로 바라보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피사체와 동일한 높이로 시작하는 카메라를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공감의 리얼리티를 성취했다. 그녀의 시선은 눈으로 본 바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대상을 이해하고 다가간 거리를 기록한 것이다.

<세계의 주인>

사진가로서의 태도를 통해 시점숏을 다르게 드러낸 리 밀러와 달리 영화 자체의 구조 속에서 시점숏을 다르게 표현한 한국영화가 있다. 최근 개봉한 <세계의 주인>속 주인공 주인은 친족 아동 성폭력 피해자다. 그녀는 본의 아니게 학교 안에서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히게 된다. 그 무렵 정체 모를 사람이 보낸 쪽지를 반복적으로 받는다. 이 쪽지는 영화적 긴장과 의문을 자아내며 영화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서사적 장치로 사용된다. 그것은 주인이 발견하고 바라보기에 시점숏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은 주인공과 같은 감정으로 쪽지로 읽을 수 있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시점숏은 먼저 대상을 바라보는 인물의 정면 얼굴을 제시하고, 이어서 인물의 시선 위치에서 촬영된 장면으로 대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다르다. 주인이 발견한 쪽지를 바라볼 때 카메라는 인물의 정면 클로즈업이나 바스트숏이 아닌, 측면 또는 후측면 넓은 미디엄숏이나 풀숏으로 쪽지를 보는 주인을 한참 비춘다. 등장인물의 시점숏이 곧장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프레임을 나간 뒤에야 쪽지가 다음 컷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이미지로 그 내용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시점숏처럼 등장인물과 관객들이 감정을 공유하거나 몰입시키는 장치로 보기에는 의심스럽다. 이때 이 쪽지는 주인이 바라본 대상이 맞지만, 그것은 한 인물의 시점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형식적으로는 시점숏의 외형을 띠지만, 감정의 동일시를 유도하기보다 시점의 경계를 확장한다. 주인공의 시선이 타자의 시선과 겹치며, 쪽지를 바라보는 눈은 개인의 것이 아닌 익명의 ‘우리’의 것이 된다. 쪽지의 목소리를 명확하게 각인시키며, 주인공의 감정보다는 무언가를 선언하거나 잊지 말라고 호소하는 선언적 시선의 장치처럼 기능한다. 이러한 방식은 시점숏을 한 개인의 감정이 아닌 집단적 증언의 장치로 전환하며, ‘연대의 시점숏’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리 밀러는 카메라의 물리적 기능을 자신의 태도와 연결하여 시점숏을 표현했고, <세계의 주인>은 등장인물의 시점숏이 들어올 자리에 주인공과 함께 타자들을 배치한다. 스스로 호명할 수 없는 피해자들을 사람의 눈높이가 아닌 마음의 눈높이로 바라보며 시점숏의 위치를 바꾸어놓는다. 리얼리티를 좇는 눈높이가 오히려 비현실적일 수 있다는 역설 속에서, 시점숏은 이제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 곧 마음의 높이로 확장된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