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성장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울려라! 유포니엄>시리즈는 주인공 오마에 쿠미코가 고등학교 취주악부에 들어가 유포니엄을 담당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학원물이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학교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면서도 친구들과의 들쑥날쑥한 우정, 목표를 향한 뜨거운 열의, 이유 없이 삐거덕거리는 마음, 합주의 아름다움 등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오마에 쿠미코가 고등학교에 갓 입학해 3학년이 되기까지 장장 10여년의 시간 동안 그의 곁엔 구로사와 도모요가 있었다. 2000년 아역배우로 시작해 이제 데뷔 25주년을 맞이한 그는 여전히 새로운 일에 설레하면서도 이야기가 간직한 사건과 정서, 인물의 굴곡을 노련하게 이해한다. <울려라! 유포니엄>이 걸어온 시간만큼 구로사와 도모요의 시간도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에서 오마에 쿠미코를 연기한 시간이 장장 10년이다. 이젠 구로사와 도모요에게 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는데.
<울려라! 유포니엄>은 같은 학년을 반복하지 않고, 시즌이 거듭될 때마다 캐릭터들도 나이를 먹는다. 그래서 쿠미코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과 내밀하게 연결되는 느낌이다. 실제로 일본의 부활동에서는 1학년, 2학년, 3학년마다 각각 맡은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그 자리에 맞춰 감정과 태도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야기 안에서는 3년으로 집약되지만 실제 나의 시간은 10년이 흘렀다. 내 삶에 축적된 감정을 열심히 농축해서 쿠미코에게 불어넣었다.
- 쿠미코의 성장을 강조했다. 그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10년을 돌아보자면.
두 장면이 떠오른다. 먼저 3학년 때에서는 반복을 가미한 연출이 많았다. 과거와 유사한 상황 속에서도 다른 드라마가 펼쳐졌는데, 그런 장면에서 시간의 흐름과 쿠미코의 성장을 느꼈다. 또 두 번째로는 학년마다 쿠미코의 성향이 조금씩 바뀐다. 1학년 때에는 부활동에 지리멸렬하게 적응하려 했다면 2학년 때는 조금 더 내향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그리고 3학년이 되어서는 쿠미코가 지닌 진짜 리더십을 드러낸다. 자신의 이야기보다 자리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에서 대사들이 질적으로 달라진다. 쿠미코의 하는 말들에서 그의 변화를 많이 체감했다.
- 쿠미코와 레이나의 관계를 이야기해보자. 언젠가 이들의 관계를 두고 ‘완만한 이별’에 이르렀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원작 소설에서는 둘이 헤어졌어도 더 농밀해지는 관계로 그려지는데 나는 대본을 읽고 쿠미코가 이별로 받아들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여성으로서 쿠미코와 비슷한 삶을 밟아왔다. 제작진 남성들이 고등학교 여자아이에게 환상을 담으려 했던 것과 반대로 진솔하고 진정한 마음을 그리려고 했다. 복잡한 감정이 부딪히면서 오히려 더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런 나의 접근을 팬들이 잘 이해해주고 수용해줘서 더 특별한 관계로 안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솔리스트 선발에서 쿠미코가 마유에게 지는 장면이 있다. 이때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부장으로서의 성숙함을 드러내는데. 결과를 수용하며 부원을 격려하는 목소리 톤과 감정 표현은 어떻게 그렸나.
나는 괴로울 때 보여주는 미소가 가장 빛난다고 생각한다. 참고 견디는 모습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에 어둠 속 희망을 목소리 연기에 담고자 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감정을 딛고 일어선 쿠미코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 실제로 쿠미코의 행보와 구로사와 도모요의 경험이 겹친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
쿠미코는 장래가 불투명한 입장에서 점차 리더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나 또한 쿠미코의 1학년 때를 연기할 때에는 똑같이 학생이었고, 2학년 때에는 쉬지 않고 일하면서 주변을 잘 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주인공을 연기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주도적으로 작품을 이끌어갔다. 쿠미코의 성장과 내 삶의 결이 조금 비슷하게 흘러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벌어지든, 누가 뭐라고 하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오늘을 돌아봤을 때 최대한 후회 없는 날들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는 실제 관악 콘서트와 연계된 이벤트가 많다. 기억에 남는 무대 경험과 행사가 있다면.
애니메이션은 그룹별로 진행하는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성우는 성우들끼리, 그림 작가들은 그림 작가들끼리 소통하는 일이 흔하다.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은데 이런 연주회를 통해 쿠미코 역할을 담당한 실제 연주자를 만나 이야기하고 그 연주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뭐랄까, 큰 울림이 있었다. 쿠미코와 보낸 시간이 다양한 각도로 축적되면서 뭉클함을 느꼈다. 또 낭독 이벤트가 열린 적도 있다. 성우들의 대사에 맞춰 실제 연주가 흘러나오는 <울려라! 유포니엄>10주년 이벤트였는데, 작품 속에서 쿠미코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연주를 시작하는 약간의 시차를 진짜 이 무대에서 느껴볼 수 있었다. 작품이 현실에 연결되면서 하나의 세계관이 완성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올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는 역대 극장판 상영이 진행됐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한국 관객들이 이 작품에서 가장 깊이 느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역시 츠카모토 슈이치와의 관계성을 들여다보면 좋겠다. 슈이치와의 관계는 사람을 대할 때 어려움과 연결된다. 현대사회는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교감이 어려운 시대다. 따라서 이 친구들의 조용하고도 다정한 교감을 잘 봐주면 좋겠다. 무엇보다 여자 고등학생들이 실제로 어떤 마음으로 경쟁에 임하는지,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정을 키워나가는지 등 현실적인 모습을 바라봐주면 좋겠다. <울려라! 유포니엄> 애니메이션에서는 음향 담당팀이 교복이 스치는 소리, 복도를 뛰어가는 소리, 문을 살짝 여는 소리 등을 생생하게 덧댔다. 이런 섬세한 사운드를 통해 학생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