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시 한번 정리할게요.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오고 있어요. 에베레스트만 한 혜성이 지구로 오는 일이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우리끼리 최소한 합의도 못하고 있으면 대체 정신이 어떻게 된 거예요? 아니, 지금 서로 대화가 되기는 해요? 어디가 망가진 거예요? 어떻게 고치죠?… (중략)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두렵고, 똑같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발, 제발 정부가 생각이 있고, 국민을 생각하는 거면 정말 좋겠는데, 진실은 이 빌어먹을 정부는 완전히 미친 것들 같아요! 그리고 우린! 전부 다! 죽을 거예요!!”
갑자기 유튜브 알고리즘에 <돈 룩 업>(2021)이 계속 떠서 다시 보는 중이다. 확실히 이 영화는 과소평가됐다. 지금 와서 보니 이건 거의 예언서에 가깝다. 랜들 박사(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핏대를 올리며 인류 멸망의 경고를 하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혜성 충돌을 며칠 앞두고 토크쇼 카메라 앞에서 절규하는 랜들 박사, 아니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표정에 어린 혼란과 절박함은 나의 모자란 필설로는 전달하지 못하겠다. 꼭 직접 보시라.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 종종 있다면, 이 장면 역시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사익 추구에 혈안이 된 정치인과 기업의 제한 없는 욕망, 갈라치기에 길들여진 대중의 종교적 맹신은 클래식한 조합이다. 여기에 양산된 가짜 뉴스가 피로를 더하고 해소되지 않는 불안이 증오를 키운다. 지구촌 시대는 진즉 끝이 난 걸까. <돈 룩 업>은 기본적으론 기후변화에 관한 안일한 대처를 풍자한 영화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각 집단의 어리석음은 4년이 지난 후에 정확히 현실 행성에 도착했다. 이 영화 속 여러 풍자 장면들이 요즘 알고리즘에 자주 걸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혐오와 불안의 시대 한가운데, 거의 모든 사안에 적용되는 그때의 상상력을 지금 다시 본다. 당시엔 웃음의 함량이 더 컸던 것 같은데, 지금은 서글픔과 불안감의 비중이 더 크게 다가온다. 마치 더 가까워진 멸망의 혜성처럼.
엄밀히 말하자면 <돈 룩 업>은 바이든 정부 때 개봉했지만 제작 단계는 트럼프 정부였으니 트럼프 1기를 향한 비판이라 봐도 무방하다. 반면 올해 개봉한 북미 영화들은 대체로 바이든 정부 때 기획되었지만 마치 예언서라도 되는 양 2025년 오늘 트럼프 2기의 파국을 비춘다. 예정된 파국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면서도 멈출 수 없을 때 무력감이 엄습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야말로 웃음이 필요하다. 최근 호러와 코미디가 강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히어로물부터 호러, 블랙코미디까지 올해 유달리 인상적이었던 할리우드 장르영화(정확히는 워너 영화)들에는 어렴풋한 혁명의 기운이 어려 있다.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나왔던 2008년의 미국영화가 시간을 건너 다음 파도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세상을 뒤집는 것만이 혁명이 아니다. 버티고 저항하여 파장을 만들어내는 것도 혁명이고, 망각에 저항하여 과거를 오늘로 소환하는 것도 혁명이다. <돈 룩 업>에서 하나 틀린 게 있다. 랜들 박사는 “제발 즐거운 척 좀 그만해요!”라고 일갈했지만 지금은 웃음이 필요하다. 현실의 시름을 넘겨줄 가벼운 웃음도 좋고, 현실의 문제를 더 파고들어 직시하는 쓴웃음도 좋다. 웃으면서, 웃음으로 화를 내야 한다. 어떤 식이든 오늘을 버티고 내일로 이어가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