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옥 감독의 <미망인>이 전시 <무관한 당신들에게>로 이어지기까지 전시를 기획한 문주화 영화평론가와 전시에 참여한 김태양, 손구용, 이미랑, 이종수 네 감독은 더없이 치열하게 작업에 임했다. 김태양 감독은 <미망>과 <미망인>을 교차편집해 1950년대와 현대의 교집합을 탐구하고, 손구용 감독은 박남옥 감독과 그가 함께 작업하길 꿈꿨던 김신재 배우를 두개의 스크린에 각각 소환한다. 이미랑, 이종수 감독은 유실된 <미망인>의 결말부를 각자의 방식으로 복원했다. 이들의 고민은 박남옥 감독이 그토록 열망했던 영화작업을 놓지 않고 계속 해나가기 위한 논의로 자연스레 확장했다. 가변적인 영화산업의 현실 속에서 창작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박남옥 감독과 <미망인>, 전시와 새 작업들에 관해 폭넓게 나눈 대화를 전한다.
손구용, 이미랑, 문주화, 김태양, 이종수(왼쪽부터).
- 김태양, 손구용, 이미랑, 이종수 감독에게 참여를 제안하게 된 계기는.
문주화 올해 3월 말 즈음 성북문화재단으로부터 박남옥 감독에 관한 전시를 꾸려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박남옥 감독을 전시 형태로 다룬다고 했을 때 무조건 감독들이 참여했으면 싶었다. 두 가지 욕망이 바탕이 된 결과인데 첫 번째 욕망은 유실된 <미망인>의 결말을 보고 싶다는 것, 두 번째는 차기작이 궁금한 감독들의 다음 작품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박남옥 감독이 하나의 장편만 만들고 영화계를 떠난 만큼 지금까지 첫 장편을 세상에 내놨거나 <미망인>을 다양하게 해석해줄 신인감독을 섭외하고자 했다. 마침 김태양 감독의 <미망>에 관한 글을 쓰던 차였고 김태양 감독에게 소식을 전하니 본인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국의 고전영화라는 주제를 자기 식대로 다뤄줄 이종수 감독, 전시 형식에도 작품이 잘 어울릴 손구용 감독과 단편부터 꾸준히 여성 서사를 다뤄온 이미랑 감독을 차례로 섭외했다.
김태양 <미망인>과 내 첫 장편 <미망>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전시 홍보 트레일러 형식의 작업을 떠올렸는데 문주화 평론가가 단순한 트레일러가 아닌 작품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줬다. <미망>의 두 번째 파트인 <서울극장>에서 인물들이 <미망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터라 그 둘을 적절히 섞는 완성했다.
이미랑 이렇게 다른 스타일의 감독들과 협업할 기회가 흔치 않다. 여기에 주황, 방정아 작가의 작품까지 더해지니 전시장의 풍경이 더 다채로워졌다. 작품을 설치하면서 이 작품들이 개별로 존재했다면 매력적으로 느껴졌을까 싶었다. 고전영화에 대한 애착이 깊고 도전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하진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작품을 징검다리 삼아 관객들이 다른 작품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뜻깊겠다.
이종수 제안을 받고 참여하겠다고 빠르게 답변을 보냈다. 박남옥 감독이 1923년생이니 32~33살 때 <미망인>을 촬영한 거다. 당시 서른살은 지금의 서른살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젊은 나이에 아이를 업고 <미망인>과 같은 영화를 찍을 정도면 보통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그릇의 감독이 연출한 작품을 어떤 식으로 끝내면 좋을지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60년대 장르영화처럼 풀어나가면 괜찮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손구용 섭외 제안을 주신 것 자체가 감사했고, 참여하는 다른 감독들에 관해 들었을 때 기대가 됐다. 전시장에 작업을 설치하며 다른 감독님들의 작품을 봤을 때 너무 놀라워서 나도 모르게 작아지더라. (웃음)
- 서로 작업 과정을 공유하진 않았나보다.
문주화 어떤 작업을 하는지는 서로 대략 알고 있었지만 세세하게 공유하진 않았다. 감독님들이 가편집본을 전부 내게 보내주셨기 때문에 1호 관객으로서 개별 작업의 재미를 접할 수 있었다.
상상과 가능성 사이에서
- 작업 과정에 관해 묻고 싶다. 앞서 말했듯 김태양 감독은 <미망>과 <미망인>을 교차편집하고 제목도 <무관한 당신들에게>로 새롭게 표기했는데.
김태양 처음에는 <미망인>을 조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문주화 평론가와 대화를 나누며 방향성을 바꿨다. <미망>에서 <미망인>의 유실된 장면에 관해 대화하거나 명하(이명하)가 <미망인> 속 삶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과 같이 <미망>으로 시작하되 <미망인>으로 연결되는 지점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 들리는 사운드를 뒤에 반복해 내적으로 순화하는 느낌을 주고, 수십년의 시간차를 두고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걷고 대화하는 것처럼 편집했다. <미망>도, <미망인>도 평범한 인물의 삶과 사랑 또한 영화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 내용이 잘 전달되길 바랐다. 이 작업이 전시장 초입에 놓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무관한 당신들에게>라는 전시 타이틀을 넣어 이 작품이 전시의 마중물 역을 겸할 수 있도록 했다.
문주화 <무관한 당신들에게>는 초반부터 서신 교환하듯 영화에 관해 김태양 감독과 여러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감독 고유의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에 관한 최종 결정은 모두 감독이 내렸다. 이야기를 나누며 <미망> 또한 이러한 단계를 거쳐 완성됐을 거라 자연스레 연상됐다.
- 손구용 감독의 <보이지 않는 얼굴(들)>은 박남옥 감독이 연모했던 김신재 배우와 <미망인>의 이민자 배우의 관계를 탐색한다.
손구용 <보이지 않는 얼굴(들)은 김신재 배우가 <미망인>에 캐스팅되지 못한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형식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나의 다음 신작의 일부를 재편집한 버전이기도 하다. 작은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배회하는 일을 두 남녀가 각각 같은 방식으로 수행한다. 처음엔 두 배우를 한곳에 두고. 반대편에 또 다른 배우 후보들이 스크린 테스트를 하는 장면을 배치하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찍어보니 무게감이 크게 차이나더라. 그래서 과감히 버리고 다시 남녀를 나눠 촬영했다. 20평 정도의 작은 공원에서 회차당 5~6시간 정도를 들여 10번가량 촬영했다. 나와 촬영감독은 따로 촬영하지 않겠다고 한 뒤 배우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을 지켜봤다. 시나리오도 없었고, 처음엔 배우들에게 촬영본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판엔 배우들이 커닝하듯 몰래 보고 참고해 연기하더라. (웃음) 이번에 처음으로 2채널 작업에 도전해봤는데 새롭고 재밌었다. 두 영상이 서로 투명하게 비쳐 자연스레 겹쳐지는 방식도 고려했지만 구현하는 데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미랑 5시간과 10회차의 기준은 무엇인가.
손구용 빛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사이의 빛을 담으려고 했다.
-이종수 감독의 <이신자(異晨者)>의 경우 신(황현빈)이 택(윤혁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대장간에 칼을 구하러 가는 장면이 원작과 달리 새롭게 추가됐다.
이종수당시 한 기자가 쓴 <미망인> 리뷰에 따르면 결말부에 칼이 등장한다. 그래서 신이 택을 찌르는지 아닌지에 관한 고민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찌른 것 같지만, 실은 아니었다‘는 결말을 내 식대로 구현한 셈이다. 과거에는 상대에게 해코지를 하고 싶을 때 지금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아마 많이들 대장간으로 가지 않았을까. 그래서 대장장이는 정신이 쇠약해진 사람이 왔을 때 그가 어떤 생각인지 꿰뚫어보는 자라는 설정을 넣었다. 신이 찾아왔을 때도 단순히 요리에 쓸 칼을 사러온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그렇게 대응한 것이다.
- 대장간은 실제 로케이션인가.
이종수 광화문 바로 옆에 있는 전통적인 대장간이다. 내가 자주 다니는 길에 있는데 언젠가 한번은 촬영 로케이션으로 쓰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번에 기회가 닿았다. 그 밖에 신이 걸어오기 시작하는 장소는 광희문인데, 조선시대 때 산 자는 동대문, 남대문으로 나가되 시체는 굉희문으로 나갔다는 사실을 반영했다. 다른 촬영차 해남에 갔다가 <미망인>에서 이 선생(신동훈)과 신이 만나는 곳과 똑같은 정자도 발견했다. 그곳을 찍고 올라오는 길에 남원의 유명한 대장간에 들렀다. 작고 날카로운 칼이 있길래 무슨 칼이냐고 여쭤봤더니 사장님이 “짱어(장어) 칼”이라고 말하셨다. “짱어 칼이 뭐예요?” “(짱어가) 미끌미끌하잖아. 머리를 콱 잡아서 이렇게 쓰는 거야.” 모든 건 그런 순간에 나온다. (웃음) (‘짱어 칼’ 등의 용어는 영화에 그대로 사용됐다.–편집자) 칼과 장소가 준비되니 그때부터 글이 써지더라.
-이미랑 감독도 <미망인>의 결말을 새롭게 완성했다. 과거 사랑했던 여자에게로 떠난 택(정동근)에게 칼을 들고 찾아갔을 때 신(하윤경)이 처음으로 칼을 겨눈 상대는 택이 아닌 자기 자신이다.
이미랑 그런 부분에서 감독의 기질이 드러나는 것 같다. 신이 택을 위협하러 찾아가긴 하지만 택을 찌를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그럼에도 실랑이를 벌이다 한번은 찔리는 장면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신과 택의 관계가 비로소 끝날 것 같았다. 문제는 딸 주(이다니)였다. 원작의 오프닝부터 인장을 새기고 시작하는 중요한 캐릭터이고 문주화 평론가도 깊게 다뤄지지 않았던 주에 관한 서사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준 차였다. 원작에선 신이 주를 데리고 이사를 가지만 그걸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신이 주를 잠시 남에게 맡긴 뒤, 마음을 다스리고 경제적 여유도 갖춘 후에 주아를 데리러 갈 것이라는 설정을 넣었다.
- 신이 떠나기 전, 항구에서 마주치는 대만인(하성국)의 존재는 어떻게 떠올렸나.
이미랑 동료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첫 장편 <딸에 대하여>를 연출하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로는 그 과정을 잘 견디기 위해 동료들과의 협업을 중시한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무조건 동료들과 함께하는데, 대만인은 처음엔 없던 캐릭터였다. 회의 도중 한 스태프가 조심스럽게 신이 ‘남자가 계속 접근할 상’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 의견이 흥미로웠고, 그중에서도 어떤 남자가 오게 할 것인지가 화두였는데 달시 항구에 무역 상인들이 꽤 있었을 거란 생각에 대만인을 떠올렸다.
-흑백이던 이전과 달리 항구 신에선 컬러로 전환된다.
이미랑 신과 택이 마주한 저녁 신은 흑백이 잘 어울릴 것이라 판단해 현장에서도 흑백으로 모니터를 했는데 항구 신에선 특유의 푸른빛이 좋았다. 촬영감독이 한 사진가가 한국전쟁 때 촬영한 사진첩을 참고해 색보정을 한 스틸컷을 보내줬는데 꽤나 느낌이 좋았고 결국 항구 신은 컬러로 가기로 결정했다. 스태프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물이다. 개봉 등에 관한 부담이 적으니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고, 지금까지 내가 한 작업 중 가장 즐거웠다.
우리의 영화는 계속된다
- 이번 작업을 진행하며 박남옥 감독과 <미망인>에 관해 새롭게 떠올린 부분이 있다면.
이종수 <미망인>이 제작된 시대에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지 배우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었다. 배우 혹은 성우로 뽑힌 뒤 양측의 업을 겸하는 경우가 많을 시기라 연기 톤에 관한 조율이 필요했다. 연기 톤을 포함해 현재의 시선이 아니라 전쟁 직후 혼란했던 당시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자고 했다. 그때 크게 와닿은 건 박남옥 감독은 당대가 지닌 관념과 잣대에 저항하는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요즘엔 조금이라도 도덕적 기준을 넘거나 특정 관념에 저항을 했다간 손가락질받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래서 감독 중에서도 시대에 맞서는 악동 같은 사람이 나오기 어렵고 그 점이 아쉽다.
김태양 이종수 감독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부분,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말한 것처럼 현대인들은 갖가지 가치관을 앞세워 다툰다. 그런데 <미망인>이 만들어진 1950년대는 전쟁 직후라 어떤 면에선 이념 싸움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라 볼 수 있다. 그 시절의 영화는 정부 지원을 받은 프로파간다 작품이 많았고 그와 달리 예술을 지향하는 감독들도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전래동화를 영화화하거나 해외영화를 따라하는 시도를 자주 했다. 말하자면 당대 현실보다는 우리가 바라봐야 한다고 여기는 것들을 영화에 담아낸 것이다. 그런 와중에 <미망인>이 지닌 고유의 위치는 상당히 모던하다. <미망인>을 보며 놀랐던 건 신(이민자)의 옆집 여자가 건네는 솔직한 날것의 대사들이었다.
이종수 나도 그 장면을 무척 좋아한다.
김태양 그 밖에도 영화의 내러티브와 관계없이 등장인물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거나 수영복을 입고 해수욕을 즐기는 신들이 등장한다. 그 시대에 정말 그랬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예상컨대 실제로 그러했을 것이다. 당시엔 전쟁으로 인해 남자 품귀 현상이 있어 여성들에게 유부남의 둘째 부인이 되길 권장했다고 한다. 나라에서 장려할 일이 전혀 아닌데도 말이다. 요즘도 출산율이 낮다고 정부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지 않나.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히 비슷하다고 느낀다. 당대 현실에 반감을 갖고 박남옥 감독이 만든 영화가 <미망인>인데, 그 뒤로 힘들어서 차기작을 제작하지 못한 것 또한 지금의 우리와 닮아 있다. 영화 만드는 게 정말 너무 힘들지 않나. 제작 지원 따기도 어렵고. (모두 동조한다) 이미랑 감독이 순수하게 영화에만 집중해 동료들과 작업하는 게 너무 재밌다고 하셨는데, 영화 만들기라는 게 사실은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순수함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래야 논쟁에서 벗어나 영화를 제대로 보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미망인>에서 유실된 지점을 감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재현한 이번 작업들이 상당히 좋았다. 정답을 찾기보다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의지가 그대로 전달됐다.
이미랑 이번 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박남옥 감독이 왜 영화를 한편밖에 찍지 않았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유복한 집의 자녀였는데도 말이다. 볼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찾아본 뒤 내린 결론은 박남옥 감독에게 영화란 존재의 무게감이 너무 거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어 했던 욕망을 끝내 실현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실은 우리에게도 비슷한 두려움이 있다. 영화 시장은 사장되고 있고 영화 만들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그럼 어떻게 영화 작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우리는 박남옥 감독과 반대로 영화가 지닌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 영화가 예술가의 자기 투영의 대상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영화의 방향을 밖으로 돌려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 되어야 한다.
김태양내가 박남옥 감독에 관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느낀 점도 개인의 작품에 대한 열망이 상당히 큰 분이라는 것이었다. 여성감독으로서 숱한 핍박을 받았지만 버텨내고 영화를 완성하면, 사람들이 많이들 봐주고 나름의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망인>이란 제목의 영화는 아무도 안 본다며 극장에서 <과부의 눈물>로 제목을 바꿔버리거나 영화를 무단 편집하는 일이 벌어지자 크게 상처를 받았다. ‘내 영화는 사라졌다’, ‘다음 영화를 만들어도 또 사라지겠구나’ 싶은 생각에 박남옥 감독은 결국 다음 영화를 만들기를 포기했다.
손구용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 관한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영화를 제작할 때 고려해야 하는 현실적인 제약과 조건이 많기 마련인데, 사실 만들고 싶은 게 있고 그것을 제작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않겠나.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에 그러한 열망이 잘 드러나 있다. 개인적으로는 김신재 배우에 관해 계속 생각하게 됐다. 박남옥 감독이 처음 영화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김신재 배우 때문인 것으로 안다. 굉장히 의미가 큰 존재였을 텐데 결국 함께하지 못해 상심이 컸을 것이다. 결국 그가 캐스팅이 되지 않은 이유에 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고. 만약 김신재 배우가 <미망인>에 출연했다면 박남옥 감독이 더욱 만족스러운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작업 첫 단계에서부터 영화가 지닌 무게감에 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이라 다른 감독들의 말들이 더 와닿는다.
문주화 전시를 준비하며 박남옥 감독의 자서전을 여러 차례 읽었다. 자서전 앞부분은 무척 재밌게 읽다가도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 항상 오열했다. “<미망인> 제작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예술을 논했었다. 그러나 그날, 완성된 <미망인>을 다 같이 보던 그날, 그런 것들은 더 이상 나에게 의미 없었다. 나는 그저 속으로 울고만 있었다”는 구절이 오래 남았다. 이미랑, 이종수 감독의 현장에 찾아갔을 때 영화가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는지 몸소 체험했다. 영화산업도, 감독도 힘들지만 그 와중에도 이렇게 심혈을 기울인 영화들이 제작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영화를 보는 관점이 바뀌었고, 비평도 더 똑바로 정신 차리고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지는 영화를 많이들 봐주고, 감독님들도 재밌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