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결혼할 연인을 카페에서 기다리던 도영(이학주) 앞에 중년 남성(임호준)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잠깐의 대화로 대학교 선후배임을 알게 되고, 점차 사적인 이야기까지 사이좋게 주고받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화는 피 말리는 첩보 스릴러 장르로 변한다. 도영의 연인이 산업스파이이며 본인이 이 사건을 조사하러 온 담당자라고 밝힌 중년 남자의 언술 때문이다. 도영은 연인을 믿을지, 믿지 않을지의 고뇌에 빠진다. 김건우 감독은 “원래 좋아하던 첩보물 중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작품을 만들되, 정보기관 요원이 휴민트를 포섭하는 대화의 현장을 집중해서 그리고 싶었다”라며 “다만 이 긴 대화를 일반적인 촬영 방법으로 찍으면 아무런 개성과 특징이 없을 것 같았다”라는 기획 배경을 밝혔다. 이에 <포섭>은 24분의 러닝타임 중 6~7분의 롱테이크숏들이 이어지며 강력한 밀도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거듭났다. “포섭당하는 도영을 롱테이크로 담으며 그의 감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판단”한 것이다. 자칫하면 늘어질 수 있는 이 롱테이크 장면들은 로케이션 선정과 촬영 전략을 통해 지루하지 않은 호흡을 지니게 됐다. 로케이션 선정 기준은 확고했다. “첫째는 무드, 둘째는 이런 대화가 나눠질 법한 장소일 것, 셋째는 창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후경의 창문을 배경으로 이중 프레임을 구성하고, 세로줄이 있는 창문을 택하여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대화가 한창 긴장감을 고조할 무렵, 인물들의 측면숏이 번갈아 등장한다. 여기서 “포섭하는 인물이 공세를 취할 땐 몸이 앞으로, 여유를 부릴 땐 몸이 뒤로, 포섭당하는 인물이 압박감을 느낄 땐 몸이 앞뒤로 움직이는 등 인물들의 감정이 이중 프레임의 세로줄을 오고 간다.” 이 장면에서 두 인물의 얼굴에 묻는 희미한 자연광이 신비한 분위기를 더하는데, 이는 하늘의 도움이 컸다. “원래는 바깥이 다 보이는 투명 창문이었는데, 촬영 당일에 눈이 온 터라 컷의 콘티뉴이티를 맞추기 위해 창문에 반투명 시트지를 발랐다. 그랬더니 빛이 부드럽게 퍼져 인물에게 닿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포섭>은 아주 교묘하고 철저한 전략들로 가득하다. 세번에 걸쳐 하루 종일 진행했던 주연배우들의 사전 리딩, 무거운 하드보일드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배경음악의 활용, 포섭의 클라이맥스 때 30~40초간 음악을 멈춘 영리한 선택 등이다. 더하여 감독은 연출자의 진정성을 지키고 싶음을 강조했다. “도영과 같은 지금의 20~30대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에 영합하거나 순응한다는 사회 이론 수업을 들은 적 있는데, 지난해 12월 광장의 모습은 달랐다. 그래서 도영의 최종 선택도 수정하게 됐다”라며 “영화의 소재나 인물의 생각을 진심으로 고민하고,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에 정확히 닿도록 하는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가치관을 밝혔다. 영화 투자배급사 직원을 거쳐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인 김건우 감독은 범죄드라마, 소프트 SF 장르의 두 상업영화 제작을 준비 중이다. “한 작품이 SF긴 하지만 두편 모두 중소 규모의 예산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기획이다. 이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웃음)”
[인터뷰] 교묘하고 철저한 전략, 그리고 진정성, <포섭> 김건우 감독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최우수작품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