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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저 이상한 행성에 이렇게나 유쾌한 사건이!, <스포일리아> 이세형 감독
이자연 사진 백종헌 2025-10-31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 ‘기담’ 최우수작품상

당신이 평생에 걸쳐 스스로 알아내고 싶던 이야기를 누군가가 대신 알려준다면 그 정답을 들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니까 <스포일리아>는 말 그대로 ‘스포일러’에 관한 이야기다. 이세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2019년, 그는 다소 기이한 풍경을 목격했다. 그해 개봉한 <기생충>과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두고 스포를 주의하라는 강경한 분위기가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간 것이다. 대중교통이나 식당에서도 두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였다. 어쩌다 스포를 듣게 된 사람은 차라리 영화를 안 보겠다는 생떼를 부리기도 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그 결말이 궁금한 사람일 텐데, 그러한 풍경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너무나 좋아해서 우주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작품 속 두 주인공은 정체도 모르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그때 문득 상상이 떠올랐다. 진짜로 고도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아마도 거부하지 않을까? 계속 기다려왔고, 앞으로도 기다리고 싶을 테니까.” 우주의 비밀을 알기 위해 광활한 우주로 떠난 김과 박은 스포일리아 행성에 불시착한다. 그리고 괴물 같기도 하고 신 같기도 한 ‘입술’이 나타나서는 꼬드긴다. 자신이 그 진실을 알려줄 수 있다고. 김과 박은 예상대로, 진실을 청취하기를 거부한다.

공포, 미스터리 등 장르적 상상력을 더한 ‘기담’ 섹션에서 <스포일리아>는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스포일리아 행성 디자인. 모든 땅바닥을 채운 구불구불한 핑크색 주름은 뇌 모양을 연상시킨다. “프로덕션디자인이 보통 시각 영역이라면 이 행성만큼은 촉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가로 180cm, 세로 100cm 크기의 나무판자를 클레이 주름으로 모두 채운 뒤 촬영하고 다시 벗겨내 또 새로운 주름으로 채웠다. 영화 속 장면에 비슷한 뇌 주름 패턴이 없는 이유다.” 이세형 감독은 우주 배경을 연출하기 위해 촬영장 벽면은 그린스크린으로, 바닥은 레드스크린으로 채웠다. 그린스크린을 활용하는 게 보편적이지만 우주복에 남아 있는 붉은빛 반사를 자연스레 담아내기 위해 레드스크린으로 조정한 것이다. 본래 뇌 주름으로 가득한 땅바닥이 붉은빛을 반사할 거라 예상했기에 문제는 없었다.

<스포일리아>의 또 다른 특징은 스톱모션이다. 낯선 행성에 도착한 우주인 김과 박은 마치 스톱모션 세계관에 존재하는 것처럼 스타카토로 움직인다. “그건 촬영감독과 정말 오랜 시간 논의하고 여러 번의 실험을 거듭하며 완성한 연출이다. 초당 30프레임으로 촬영한 후 후반작업에서 초당 9프레임으로 조절했다. 행성에 들어서는 순간 딱딱 끊기는 것. 그게 그 세계의 규칙인 것처럼 보이길 바랐다.” 영화제가 막을 올린 뒤 많은 기성 감독들로부터 잊을 수 없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많은 말이 오갔지만 공통된 메시지는 이것. “조급한 마음으로 빨리 다음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라.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진짜 오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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