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세계를 만든다. 해외 생활 중 뜻밖에도 절친한 삶의 동료를 얻게 된 김수현 감독은 그가 모국어로 엄마와 통화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낯섦을 느꼈고 이후 “쓰는 말이 달라 서로 발 디딘 세계가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 그려보고 싶어졌다.” 그 관찰은 코다(CODA) 자매의 등산이라는 약 18분짜리 단편으로 결실을 맺었다. 여기엔 “후천적 청각장애가 있는 이모와 함께 지내며 느꼈던 여러 감정과 배움들”도 계기로 작용했다. “장애를 드러내되 너무 무겁게 가라앉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유쾌한 톤 앤드 매너를 꿈꾼 데에는 이 영화가 공동체 상영이 가능한 작품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 이야기의 표면은 사랑스럽다. 농인 동생 은지(심해인)가 부추겨 코다인 언니 미정(강진아)과 한 사찰로 향하는 중인데, 사연인즉 미정에게 파혼 통보 후 사라진 연인이 출가 수련 중임을 알아낸 은지가 미정이 어떻게든 그를 만나 원망을 토해내도록 산행을 도모한 것이다. 제발 ‘말 좀 하라’는 농인 동생과 ‘말하고 싶지 않다’는 코다 언니의 애증 가득한 실랑이는 스님들 앞에서 육탄전으로까지 이어진다. 결국 미정은 헤어진 연인과 못다 한 대화를 나누고 은지는 언니에게 축가를 들려준다.
<자매의 등산>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언니를 속 깊게 헤아리며 그에게서 말을 이끌어내는 동생의 이야기다. “동생 은지는 구화를 쓰지 않더라도 말해야 할 때 확실히 말하는 인물이고 반대로 언니 미정은 구화를 함에도 말을 해야 하는 순간에 말을 참는 데 익숙한” 대조를 보인다. 김수현 감독은 “부모의 문제가 자신을 통과해 전달되는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책임감을 내면화한 코다의 일면”을 반영하고자 했다. 감독과 함께 수어 수업을 받으며 작품을 준비한 강진아, 심해인 배우는 수어뿐 아니라 비언어적 표정연기를 세공했다. 이 작품으로 신인 심해인 배우는 배우상도 수상했다. 자매 둘 사이의 축가가 완성되는 장면은 코다코리아 운영위원인 김주민 촉수어(시각장애인의 의사소통 방법) 통역사의 자문을 받아 “은지가 노래방 자막처럼 박자가 가사 위로 색칠되는 영상을 보는 설정”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준비한 노래를 언니에게 처음 전하는 떨림과 부끄러움”을 이끌어내기 위해 감독은 모니터가 아닌 카메라 바로 뒤편에서 심해인 배우를 올려다봤다. “품행제로 부문에 출품하긴 했지만 깔깔 웃게 되는 영화도 아닌 데다 오히려 울었다는 피드백이 많은 영화라 수상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는 김수현 감독을 향한 이경미 감독의 전언이 훌륭한 희극에 관한 해설이 되어준다. “우리가 마지막에 울 수 있었던 건 앞에서 진심으로 웃었기 때문이다.”(이경미) 숭실대 영화예술학과 1기로 졸업한 김수현 감독은 졸업 후 드라마 제작사에서 일하던 중 <자매의 등산>을 만들었다. 얼마 전 단막극 작업을 마치고 이제 첫 장편 시나리오를 준비 중인 그에게 여전히 가장 소중한 영화의 요소는 웃음이다. “내가 삶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웃음으로 너그러워진 마음 안에 전달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