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화 차이와 갈등은 영화로 해소될 수 있을까. 현재 홍콩 사회가 맞닥뜨린 세대 갈등과 가족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끌어안은 <네 번째 손가락>은 공령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네 번째 손가락>은 ‘메이킹 웨이브즈: 홍콩영화의 새로운 물결’(이하 홍콩영화제)에 선보이며 많은 관객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올해 씨네큐브에서 개최된 홍콩영화제는 현재 태동 중인 홍콩영화의 맥락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홍콩과 미국에서 자란 공령정 감독은 LA에서 영화 후반작업 실무자로서 경력을 쌓았고, <그레이 아나토미><어글리 베티>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때 잘나가는 스쿼시 챔피언이었지만 지금은 단기 코치 업무를 전전하는 탕숙인(곽부성)은 척추 희귀병이 있는 딸 치(나탈리 쉬)를 오랫동안 외면해왔다. 도저히 좁히기 어려운 이들의 갈등과 충돌은 무엇으로 용해될 수 있을까. 공령정 감독이 축조한 세계가 은유하는 것들을 함께 이야기했다.
- 홍콩영화제를 통해 한국을 방문한 소감은 어떤가.
개막식에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특히 한국의 제작 프로듀서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홍콩·한국의 공동제작이나 각국의 스태프 배우를 교차하여 협업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둘러 논의할 수 있었다. 언젠가 이러한 이야기가 진짜로 실현되어 신선한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시나리오를 작업하던 때로 돌아가보자. <네 번째 손가락>의 첫 아이디어는 어떻게 출발했나.
우리 가족에도 환자가 있었다. 만성질환을 겪는 환자를 20년 넘게 돌보았기 때문에 <네 번째 손가락>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나의 경험과 내밀하게 맞닿아 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만성질환을 겪는 환자, 그들을 돌보는 가족 사이의 관계를 깊이 다뤄보고 싶었다. 이런 주제는 홍콩영화계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치는 태어난 지 두달 만에 척추질환을 판정받고 부모는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과 부담이 지속되자 어머니는 떠나고 아버지는 제 삶조차 안정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한다. 홍콩은 도시가 복잡하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야만 사회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든 게 쉽지 않다. 그 과정에서 가족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최선을 다하더라도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한다. 제도적 차원에서도 보살핌이 필요하지만 개별 가족 내에도 정서적 안정이 어떻게 요구되는지를 현실적으로 그려보고자 했다.
- 그 현실성을 반영하기 위해 개인의 경험 외에 더 조사하거나 연구한 바가 있다면.
이 영화는 ‘사회적 공감’이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그런데 가족 내부의 사정일수록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관객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도, 영화적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관련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직접 환자들을 찾아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인터뷰하면서 다양한 삶을 들여다봤다. 홍콩에서 영화가 개봉했을 때 함께 보러 오기도 했는데 너무 고마워하더라. 그 순간이 나에겐 영영 잊을 수 없는 보람이었다.
- <네 번째 손가락>은 궁극적으로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긴다.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핵가족화 보편화와 1인 가구 증가, 결혼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족주의적 메시지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홍콩은 어떠한가.
홍콩도 비슷하다. 전반적으로 가족과 연대에 대한 관심이 부쩍 줄어들었다. 저출생과 고령화 또한 큰 문제이기도 하고. 실제로 <네 번째 손가락>에 등장하는 3대는 가족문제에 대한 각기 다른 세대적 반응을 보인다. 먼저 할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그를 통해 가족을 회생하고 복원하는 데 오랜 시간을 썼다. 게다가 홍콩 경제는 80년대와 90년대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며 가족을 꾸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들 탕숙인은 베이비붐세대로서 이제 막 도약하기 시작한 경제 호황기의 중심에 서 있다.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고 자기중심적인 커리어를 추구하면서 세대 차가 크게 드러난다. 개인마다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 가족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족을 원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린 세대인 치는 딸과 아버지 사이의 갈등이 무척 뚜렷하지만 가족이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 그 의미를 이해하는 깊이가 부족하다. 더구나 척추질환이 있는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에 대한 기억은 가족의 전통적인 이해를 더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치의 정체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가족 구성원으로 자신의 위치를 해석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다. 홍콩의 사회적 변혁이 빨랐던 만큼 가족구성원마다 역사적·경제적으로 각기 다른 정체성을 안고 있다.
- 할머니가 지병으로 쓰러졌을 때, 휠체어에서 차마 일어나지 못한 치는 절망적인 몸부림을 친다. 이때 나탈리 쉬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데, 감정연기와 신체연기에 어떤 디렉션을 주었나.
우선 영화를 찍기 전부터 척추성근위축증(SMA)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나탈리 또한 이 질환을 가진 환자를 직접 방문하고 그들의 가족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홍콩 적십자 센터에서는 이러한 질병을 더 자세히 알도록 도와주는 정보교육기관이 있는데 그곳의 물리치료사들에게 척추성근위축증 환자들의 신체적 반응에 대해 현실적으로 묻고 이해했다. 그런 경험이 배우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 영화는 이국 문화를 가장 친근하게 알려주는 매개다. 이번 홍콩영화제와 <네 번째 손가락>을 통해 한국 관객은 홍콩의 어떤 정서와 문화를 접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고 익숙해 문화적·지역적 경계가 없다. <네 번째 손가락>또한 그렇다. 나의 개인적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문화장벽 없이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