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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로 걸어 들어가 캐릭터되기, <라스트 송 포 유><네 번째 손가락> 배우 나탈리 쉬
이자연 사진 최성열 2025-10-30

2025년 9월26일부터 10월25일까지 한달 동안 서울에서 개최된 ‘홍콩위크’는 홍콩특별행정구 정부 여가문화서비스부의 주최로 홍콩 고유의 문화와 예술의 다양성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그중 홍콩영화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메이킹 웨이브즈: 홍콩영화의 새로운 물결’(이하 홍콩영화제)은 영화제 안에서 관객들이 아름다운 도시를 마음껏 탐험하도록 했다. 이번 영화제의 상영작은 총 10편. 그중 두 작품에서 지금 한창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배우가 등장한다. 바로 개막작 <라스트 송 포 유>와 공령정 감독 연출작인 <네 번째 손가락>의 배우 나탈리 쉬다. 영화 속 세계관을 자유롭게 상상하며, 섬세한 디테일을 챙기는 어린 배우를 보면서 홍콩영화의 유려한 가능성도 함께 점칠 수 있었다.

- 올해 홍콩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 10편 중 2편이 나탈리 쉬 배우가 출연한 작품이다. 그중 한 작품은 개막작이기도 하고. 이 지점이 뜻깊게 다가올 것 같다.

너무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다. 나는 일상과 먼 곳에서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촬영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이 작품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어떤 관객까지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모든 영화가 내게 다른 삶을 경험시켜주는 것처럼 다른 국가, 다른 도시의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나를 계속해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준다.

- 척추질환을 앓는 치를 연기했던 <네 번째 손가락>이 다소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라면 타임 리프를 그린 <라스트 송 포 유>는 보다 명랑하고 쾌활한 썸머를 연기한다. 이렇게 필모그래피 사이에 캐릭터 무드 차이가 있을 때 어떻게 반영하고 표현하는 편인가.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하기 전, 다른 배우들과 대본을 리딩하고 스타일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에 녹아드는 편이다.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까지 모두 정하고 나면 캐릭터의 어떤 성향을 어떻게 드러낼지 정보가 적립되는 것 같다. 또 로케이션도 큰 도움이 된다. <라스트 송 포 유>는 굉장히 먼 지역에서 촬영했는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페리를 타고 들어갔다. 원래는 관광지라 사람이 북적이는 곳인데 워낙 이른 아침이다 보니 운동하는 어르신들밖에 없었다. 고요한 일출을 즐기거나 아침 산책을 나온 사람들. 그 평화로운 고요 속에서 명상하듯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또 일본이라는 해외 로케이션도 도움이 된다. 일상에서 동떨어지게 되면 나의 평소 습관을 버릴 수 있다. 반면 <네 번째 손가락>은 좁은 집에서 대부분의 촬영을 진행했다. 척추질환으로 집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치의 상황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서 스태프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치가 겪는 제약이 더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공간적 접근이 큰 도움이 된다.

- <라스트 송 포 유>는 초반에 썸머의 비밀을 감춘다. 오직 만훤(세실리아 최)의 딸이라는 정체성만 보여주지만 둘은 같은 역사를 지니고 있어 비슷한 듯 다른 연기를 보여줘야만 한다.

1인2역을 수행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상대 배우에 따라 나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어린 성화를 그린 진탁현 배우는 워낙 말수가 적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와 촬영하면서 내가 더 외향적이고 발랄해졌다. 어른 성화의 정이건 배우는 굉장히 텐션이 높고 장난기가 많아서 내가 상대적으로 더 성숙하게 나왔다. 배우간 조화와 자연스러운 균형이 왜 중요한지 이번 작품을 통해 깨달았다. 또 스타일링도 한몫했다. 만훤이 포니테일에 파란색 백팩을 멨다면 썸머일 때는 머리를 내리고 청바지를 입었다. 가방도 무채색. 그런 요소가 낙차를 만들기 충분했다.

- <네 번째 손가락>의 치와 <라스트 송 포 유>의 썸머는 모두 희망을 품는다. 각 인물이 희망을 드러내는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

만훤의 경우 희망을 체감하고 표현하는 데 훨씬 더 성숙하다. 곁에 있는 동반자로서 희망을 찾고 자신을 변화시키려 노력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힘들다면 고통스러워도 끝끝내 수용하고 만다. 량례언 감독님도 썸머가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반면 치는 긍정적인 고집스러움이 느껴진다. 소망하는 것이 생겼을 때 그것을 끝까지 놓지 않고 불가능을 넘어서려 한다. 강한 의지가 있달까. 때론 살면서 그런 욕심을 내려놓는 게 답일 때도 있지만 제약에 쉽게 주눅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생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 <네 번째 손가락>에서는 아버지 탕숙인(곽부성)과의 감정적 균열이 폭발하기도 한다. 감정을 숨기기보다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

대사의 행간을 읽는 데 공들였다. 대사가 없는 순간에 그 인물은 어떤 생각을 할지, 손짓이나 눈빛 등 비언어적 표현을 어떻게 드러낼지 고민했다. 우리도 평소에 그렇지 않나. 화가 난다고 계속 소리 지르는 게 아니라 호흡이 커지거나 손이 떨린다. 아버지와의 언쟁에서 긴장감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법을 생각했다. 감정을 내면으로 체화할 때 표정이 현실적으로 자연스러워진다. 그래서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는 꼭 그 캐릭터의 입장으로 일기를 쓴다. 유독 반복되는 단어, 감정, 문장을 발견할 수도 있고 어떤 표정이나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생각할 수도 있다.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갈 때 이 일기가 큰 자산이 된다.

- 좋아하는 한국영화가 있나.

<벌새>를 무척 좋아한다. 나는 역사나 사회 이슈처럼 현실적인 이야기에 발 디딘 영화가 관객의 생생한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벌새>는 눈을 뗄 수 없었다.

- 이번 홍콩영화제를 통해 한국 관객들은 홍콩 내 사회 풍경, 새로 떠오르는 이슈 등을 접할 수 있게 됐다. 타 문화를 이해하는 관점에서 영화는 어떤 힘을 지녔다고 생각하나.

요즘은 스마트폰 안에 있는 세상이 내가 접하는 세상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보여준다. 나의 선택과 취향에 따라 알고리즘이 좁은 식견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내가 소속되지 않은 갈등과 어려움을 보여주고, 고통을 뛰어넘는 위로와 용기까지 제시한다. 영화가 주는 문화적 가르침과 울림은 이해의 증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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