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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만나야 할 것들은 결국 만나진다, <만남의 집> 차정윤 감독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25-10-30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진다. 여자 교도관과 수감자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만남의 집>은 담담하게 사람의 온기를 전한다. 차정윤 감독은 장편 데뷔작에서 데뷔작이라고 믿기 힘든 사려 깊은 시선과 원숙한 태도로 이들을 관찰한다. <만남의 집>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사연 대신 사람을 전하는 영화다.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 상투적인 문구가 얼마나 쉽지 않은 경지인지 쉽게 넘겨짚기 어렵다. 교도관과 수감자라는 이색적인 사연에 끌려가지 않고 그들이 사는 모습, 하는 행동, 처한 상황을 차분히 묘사한 카메라는 관객들에게 기꺼이 만남의 장을 마련한다. 일상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옮기는 비범함의 뒷면에는 작품과 인물을 제한몸처럼 껴안고 고뇌한 창작자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차정윤 감독의 차분한 설명 속에서 인연의 힘을 느낀다.

- 개봉 후 GV를 통해 관객들과 직접 만나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여기까지 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 일정이 빡빡해도 이야기를 시작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모두 신이 나 한마디라도 더 전하고 싶어 한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관객들과 만날 때만 해도 이렇게 긴장되진 않았다. 정식 개봉이 가까워지면서 영화를 함께 만들고 여기까지 함께한 분들이 생각나 무게감이 다르다. 100을 축하받으면 100만큼 오롯이 기뻐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럼에도 다시 힘을 내서 관객들과 만나는 중이다.

- 2010년 단편 <상주>부터 첫 장편 <만남의 집>이 있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겠다.

‘제작 기간 10년’이란 표현을 쓰는 영화가 종종 있는데, <만남의 집>도 다르지 않다. <상주>를 제작하기 전부터 구상하던 이야기다. 여자 교도관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를 언젠간 꼭 해야지 하고 품고 있었다. 풀지 못한 숙제 같았던 이야기였는데,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다가 맨땅에 헤딩하듯 교도관을 직접 만나면서 어느 순간 여자 교도관과 수감자 사이의 사연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영상자료들부터 교도관 수험서까지 구할 수 있는 자료는 다 찾아봤던 것 같다.

- 이야기와 캐릭터를 오래 품고 다듬는 편인가.

처음 <만남의 집>을 구상했을 때 많은 프로듀서들이 다 좋은데 조금 마이너하거나 어둡다고들 하셨다. 그럴수록 내 안의 외골수적 기질 때문인지 반발심이 일었다. ‘왜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 ‘왜 궁금해하는 것만 해야 해?’ 교도관님들을 직접 만나면서 어떤 확신이 들었다. 실은 많은 교도관들이 이 일을 그저 직업적인 관성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일일이 마음으로 접근하면 지치고 상처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직업적 소명으로 사람을 보는 분들이 있다. 마음이 깎여나가도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을 보며 내가 하는 일도 틀리지 않다는 위로를 받았다. 그들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다면 충분히 교감의 통로를 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이야기나 캐릭터, 사람과 인연이 언젠가 나에게 찾아와준다고 믿는다. 다만 그걸 기다리는 데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기도 한다. 태저(송지효)가 와줄 것을 의심한 적은 없었지만 쉽진 않았다. 중간에 제작사와 프로듀서도 바뀌었는데 끝까지 믿고 함께해준 분들에게 깊은 동지애를 느낀다.

- <만남의 집>은 사연을 사건화하지 않는다. 배경이나 이유를 설명하거나 인물들의 사연을 수다스럽게 덧붙이지 않는 태도가 지금 현재, 눈앞에 보이는 그들의 진심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감사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서사를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지만 그걸 위해 과거를 설명하고 싶진 않았다.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으니 지금 이렇게 되었다는 인과관계로 엮으면 보이는 것도 가려질 때가 있다. 반대로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태저의 아이와 결혼 생활 등 과거 사연을 만들긴 했지만 그걸 영화에서 직접 설명하는 건 태저에게 미안해서 할 수 없었다. 어쩌면 태저가 잠깐의 일탈에 빠진 준영(도영서)에게 건네는 말, “네가 하는 모든 선택이 모여서 네가 돼”를 말 그대로 장면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창작자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인데, 태저에게는 내 모습들도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 다만 창작자의 감정을 캐릭터에게 떠맡기는 건 비겁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꽉 차 있는 것들을 덜어내는 작업이 이번 영화의 전반적인 방향이었다.

- 태저는 애틋한 관찰자이자 마음 따뜻한 조력자다. 하루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일상이 복원되는 감각을 전한다. 송지효 배우의 차분한 이미지와 잘 어울리면서도 그에게서 전에 보지 못했던 깊은 표정, 밝은 모습 이면의 고요한 우울을 마주할 수 있다.

송지효 배우의 다른 모습을 좀더 조명하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건네고 미팅을 했을 때 이제까지 받아왔던 시나리오들과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고 했다. 적절한 때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마침 송지효 배우도 당시의 자신과 태저의 모습이 너무 닮은 면이 있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태저에게서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해서 그랬던 건지 이 역할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게 싫었다고 하더라. (웃음) 그렇게 규모가 작은 영화임에도 기꺼이 함께해주었다. 나도 그렇고 송지효 배우에게도 이 작품의 현장은 육체적으론 힘들어도 심적으로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 내내 담담하다가 감정을 슬며시 드러내는 장면도 있다. 마지막 자물쇠를 잠글 때 태저가 자물쇠에 뜨개질한 커버를 씌워주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고민을 많이 했다. 전체적인 톤에서 벗어나는 장면이 될까 우려도 많았지만 그 순간 그 정도의 온기를 주는 건 허락될 수 있으리라 느꼈다. 교도관의 일은 늘 자물쇠로 무언가를 잠그고 제대로 잠겼는지 흔들어보는 일인데 문득 그 철컹철컹 소리가 너무 차갑다고 느껴졌다. 그걸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마음을 더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어떤 보탬도 되진 않지만 태저 스스로를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 싶다. 뜨개질은 우리 어머니가 직접 하셨다. (웃음)

- 이야기와 인물을 소중히, 오래 품는 편이다. 차기작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오래 품었던 <만남의 집>을 떠나보내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좀 쉬고. (웃음) 준비 중인 이야기와 아이템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머지않아 이것들이 무르익어 다시 내 방문을 두드릴 것이다. 다만 이번엔 가급적 빨리 만나보려 한다. 그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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