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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웃다가 울게 만드는 바보들의 여행, <퍼스트 라이드>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는 친구 넷이 모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뮤지션을 꿈꾸는 연민(차은우), 싸움을 잘하고 공부는 더 잘하는 태정(강하늘), 부모의 뜻을 거스르며 자란 말썽꾸러기 금복(강영석), 그리고 운동선수의 꿈을 일찌감치 포기한 도진(김영광)은 한 동네에서 자란 죽마고우다. 삼총사를 만난 달타냥의 관계처럼 어릴 때부터 뭉쳐다니며 우정을 쌓아나간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수능시험을 치르게 된다. 우등생 태정이 만점을 받아 동네잔치가 벌어지던 날, 이들 넷은 각자의 부모님에게 태국으로의 첫 우정 여행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다. 이민을 떠나게 된 연민의 부모님이 앞장서서 승낙한다. 그러나 준비성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몰랐던 이들은 공항에 가기도 전에 버스를 놓쳐 여행이 불발되고 만다.

남대중 감독의 <퍼스트 라이드>는 네명의 청년들이 수십년 우정을 유지하다 문득 해결하지 못한 과거를 들추어내어 해소에 이르는 성장 과정을 시종일관 코믹한 터치로 묘사한다. 배우들이 고교 시절부터 성인 시절을 동시에 연기하며 가발과 의상이 다소 어색해도 굴하지 않고 코미디를 밀어붙인다. 이들의 과장된 연기가 적재적소에 쓰인 고교 시절 시퀀스는 연민의 극 중 내레이션에서도 언급되는 것처럼 “언제나 처음처럼 함께”할 정도로 끈끈하게만 묘사된다. 짝사랑 대상에게 고백했다가 차일 때도, 뒷골목에서 양아치들에게 돈을 뜯길 때도, 세계적인 DJ가 되겠다며 꿈을 좇는 연민의 목표를 응원할 때도 이들 사이엔 별다른 갈등이 없다. 그런데도 영화의 화자인 연민의 내레이션은 몇번이고 “슬픈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그러다가 영화가 갑자기 분위기를 재정비하여 20여년이 흐른 현재 시점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새로 쓰기 시작한다.

성인이 되다 못해 사회생활에 찌들어버린 보좌관 태정, 출가 직전의 상황에 놓여 머리를 빡빡 깎은 예비 스님 금복, 오랜 세월 정신병원에서 지내다 갓 퇴원한 도진, 그리고 오랫동안 태정을 짝사랑해온, 동생 친구 옥심(한선화)은 19살 어린 나이에 실패했던 우정 여행에 재도전한다.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내면은 여전히 뒤틀리고 망가져 있는 이들의 태국 여행이 안전하게 끝날 리 없다. 이들의 첫 우정 여행은 안하무인 여행 가이드(고규필), 바에서 만난 미스터리한 여성(강지영)과 엮이며 점점 망가져간다. 일상의 작은 일탈을 꿈꾸던 청춘의 여행길에서 생길 법한 끔찍한 일을 모두 겪는다. 심지어 이들 앞에 범죄 상황의 위기가 닥친다.

남대중 감독의 코미디 전략은 캐릭터의 설득력에 방점을 찍는다. 이혼 위기의 부부에게 기억상실이란 두 번째 기회를 주고 지켜보는 <30일>, 죽음을 앞둔 친구에게 성적 경험을 선사하려 10대 친구들이 무슨 일까지 벌일지 지켜보는 <위대한 소원>모두 전형성을 띤 장르 클리셰에 기대어 흘러가지만, 결말에 도달한 인물의 변화에 끝내 설득당하고 만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영화계에서 씨가 말라 죽어가는 청춘 코미디의 외길을 걷는 감독의 뚝심이 느껴진다. 영화 내내 반복 개그의 타율이 의외로 높고, 과거의 아픔은 잊고 현재에 충실하며 살자는 잔잔한 울림도 전한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청춘의 비밀’이란 키워드가 숨겨져 있다. 차은우의 목소리로 영화 내내 이것은 “슬픈 이야기”라고 외친 이유가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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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연민 역의 배우 차은우의 클로즈업을 대놓고 강조하며 관객의 웃음과 호응을 유발한다. 인물을 차근차근 소개하다가 느닷없이 차은우에게 카메라가 다가가며 “드디어 나왔다, 내 얼굴”이란 대사를 직접 읊게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배우 차은우가 모든 장면에 직접 출연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AI가 쓰인 것도 아니다. 개그는 반복이 생명이듯, 영화 후반부에 그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웃음을 유발한다. 특별 출연이 아닌, 엄연한 주연으로서 올해 가장 특별한 출연상 같은 걸 만들어줘야 할 정도로 특이한 출연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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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감독 이병헌, 2015

청춘의 억압된 욕망을 코미디 장르 안에서 쏟아내는 영화가 사라져간다. 특히 남자들의 성적 욕구에 관한 소재는 트렌드에도 어긋나 보인다. 그럼에도 남대중 감독의 인물과 이병헌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흡사 하나의 유니버스 안에서 존재하는 것마냥 닮아 있다. 배우 강하늘이 교복을 입고 능청스럽게 고교 시절을 연기한다는 설정도 <퍼스트 라이드>와 겹친다. SBS 드라마 <상속자들>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점도 강하늘 유니버스로 묶이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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