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근처의 중앙동 거리 일대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뿐 아니라 한국 근현대를 다룬 다수의 작품들이 꾸준히 사랑해온 촬영지다. 특별한 건축물이나 눈에 확 띄는 요소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별생각 없이 지나칠 정도로 평범하고 친숙한 거리의 정경이 가장 큰 매력이다. 자연스럽게 시대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곳이다. 무수한 전봇대와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 골목골목 수십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들이 영화의 친숙하고도 살가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헌트><승부>등의 촬영지가 된 중앙동 4가 주변과 화국반점, 부산데파트 등의 촬영 명소를 소개한다.
일본도, 과거도 가능한 곳
부산역 바로 뒤편, 영동빌딩이 있는 부산 동구 중앙대로 인근은 <헌트><승부>등이 촬영된 곳이다. 특히 <헌트>촬영 시 인근 거리를 모두 통제한 뒤 거리 일대를 도쿄로 꾸민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촬영 지원에 나섰던 부산영상위원회 손일성 촬영지원팀 대리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해외 로케이션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결국 중앙동 거리를 세트로 꾸며 작업”했다고 회상했다. VFX 작업 없이 아날로그 작업을 통해 생생한 도쿄의 모습을 되살릴 수 있었던 셈이다.
잠시 도쿄로 꾸며진 중앙대로 일대에서 <헌트>의 주인공인 박평호(이정재)는 북한 간부 표동호(정재성)를 구출하기 위해 북한 요원들과 시가지 곳곳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그외에도 <헌트>는 중앙동 곳곳에서 도쿄의 모습을 재현했다. 대체로 낮은 건물과 붉은 벽과 바닥, 무수한 전봇대 등은 1980년대 초반 도쿄의 거리를 표현하기에 최적의 배경지가 되었다. 중앙동 인근 거리는 좁고 복잡한 골목들로 이뤄져 있어 어디가 어디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이 영주고가교다. 영주고가교를 기준으로 북쪽은 부산역이 있는 동구이고, 남쪽은 중앙역이 가까운 중구와 중앙동 4가 거리다.
영주고가교와 중앙역 사이에 있는 중앙로 4가는 낮은 사무실 건물과 식당 가게들이 빼곡하게 밀집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촬영됐다. 주인공 최익현(최민식)이 최형배(하정우)와 본격적으로 손을 잡은 뒤 조직폭력배를 거느리고 활개를 쳤던 바로 그곳이다. 십수년이 지났음에도 중앙동 거리는 여전히 과거의 풍취를 가득 머금은 채 유지되고 있었다.
중구 광복로에 있는 부산관광호텔 인근 역시 <헌트>등 시대극의 촬영 장소로 쓰인 곳이다.
부산 중구와 동구를 가로지르는 영주고가교 전경.
모략의 중심이 되는 ‘화국반점’
영화 <신세계>속 정청(황정민)이 이자성(이정재)에게 “부라더!”를 외치며 우애를 다졌던 장소가 바로 부산 중앙역 인근에 있는 ‘화국반점’이다. <신세계>뿐 아니라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최익현(최민식)과 김판호(조진웅)의 암약이 이루어진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범상치 않은 금빛 판화와 화려한 장식물들, 벽에 즐비한 중국풍의 그림은 왜 많은 영화가 이곳을 무시무시한 모략의 장소로 택했는지 설명해줬다.
영화 <공조>에서 림철령(현빈)이 액션을 펼친 곳도 화국반점 1~2층과 인근 골목이었다. 화국반점 2층은 얕은 해가 들어 비밀스러운 누아르의 분위기를 풍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어느새 촬영 명소가 된 화국반점의 왕애국 사장은 “촬영 기간이 되면 제작진이 우르르 몰려와서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라며 화국반점이 촬영 명소뿐 아니라 촬영 맛집이란 사실도 알려줬다.
‘예니콜’을 기억하나요? <도둑들>의 부산데파트
2012년에 개봉한 <도둑들>의 풍경은 부산데파트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1968년 부산데파트가 건설된 이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다. 2020년부터 재건축이 논의돼 온 부산데파트는 최근 시공사와 설계사를 확정하며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들어갔다. 부산데파트를 촬영지로 삼고 싶다면 서두르는 게 좋을 듯하다.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서 마카오박(김윤석)의 유년 시절 집이자 문제의 다이아몬드가 숨겨져 있던 곳은 부산의 중앙역, 남포역 사이에 있는 부산데파트 건물이다. 마카오박이 건물 외벽을 타고 탈출을 감행한 장소이기도 하다. 부산 최초의 현대식 쇼핑센터로 건립된 부산데파트는 지하 1층, 지상 7층에 이르는 주상복합맨션으로 복잡한 내부 구조를 띠고 있어 추격전 장면을 찍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