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 시장에서 여유롭게 완승을 거둔 <보스>는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수 200만명을 돌파하며 극장가를 채웠다. 보스 임대수(이성민)의 죽음으로 차기 보스를 뽑아야 하는 조직 식구파. 하지만 그 전개가 수월하지만은 않다. 가장 유력한 후보 순태(조우진)는 중식당 미미루를 프랜차이즈로 키우고 싶어 하고, 원로 위원들의 신임을 받는 강표(정경호)는 어느새 탱고에 매료되어 새로운 삶을 꿈꾼다. 이 와중에 모두가 떠름해하는 판호(박지환)는 판도를 바꾸어 보스의 자리를 노린다. 과거의 명성과 명예로부터 멀어진 허름한 조직폭력배의 모습은 새로운 갈래의 코미디를 완성하기 충분하고, 각 인물의 개성과 취향에 맞춰 뒤늦게 진로를 모색하는 모습은 무척 현대적이기까지 하다. 보스가 되길 거부하는 조직원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라희찬 감독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유독 길었던 추석 연휴 동안 의미 있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열흘 만에 누적 관객수 200만명을 기록했다.
시작이 괜찮아서 다행이다. 영화 성적은 계속 지켜보려 한다. 연휴에는 계속해서 무대인사를 돌았다. 극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코미디를 보며 웃는 경험이 드물어져서인지 이런 시간이 좋다는 관객들의 감사 인사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뭉클하다.
- <보스>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결국 ‘차기 보스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조직폭력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컨셉을 어떻게 구상하고 발전시켰나.
영화의 첫 컨셉은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님의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조직원들이 보스를 서로 안 하려고 싸우면 어떨까? 그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렇게 정형성을 비틀어나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에서도 보스가 되는 게 낭만이고 꿈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요 컨셉은 보스가 되고 싶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과거로부터 어떻게 변했는지, 지금의 바람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다뤄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인물마다 상황과 생각이 달라야 차이가 커진다고 판단했고 그게 꿈이었다. 순태는 어릴 적부터 가업으로 내려온 중국집을 확장하고 싶어 하고, 강표는 원래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설정이었다. 그러다 배우 캐스팅 단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정경호 배우가 섭외되었는데 그의 성향과 장기를 조명하고 액션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춤으로 변동했다.
- 영화는 주인공 순태의 비중과 의존도가 크다. 순태 역할에 조우진 배우를 점찍은 계기가 궁금하다. 조우진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생각할 때 코미디 장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편은 아니고, 또 그동안 조연의 자리에서 활약을 펼쳤기에 이 시도가 새롭고 낯설게 다가온다.
조우진 배우가 지금까지는 묵직하고 진중한 작품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코미디 경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외계+인>에서 활약하기도 했고. 하지만 필모그래피보다 그의 역량에 대한 믿음이 컸다. 나는 정극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배우들이 희극에서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순태는 자신이 스스로 만든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 심각하게 분투하면서도 그 진지한 무게에서 경쾌한 웃음이 빚어진다. 그런 지점을 조우진 배우가 잘 녹여내리라 생각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드렸을 때가 <하얼빈>촬영 직전이었는데 무척 좋아해주셨다. 아무래도 그때 힘들었나보다. (웃음)
- 보스 자리를 둘러싼 혈투가 예상되는 만큼 액션도 중요한 요소다. 특히 캐릭터의 성격에 맞춘 액션들이 눈에 띈다. 커튼을 활용하거나 무대에서 뻗어나오는 방식의 순태의 액션이 있다면 허술한 언더커버 태규(이규형)는 난장을 만드는 식이다.
액션에도 코미디적 요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순태, 강표, 판호는 한때 한식구였기 때문에 더더욱 각기 다른 면모가 부각되길 바랐다. 그래서 아이템을 하나씩 쥐어줬다. 순태는 원초적으로 싸우지만 요리하는 손을 보호하기 위해 장갑을 씌우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판호에게는 가스를 줬다. 강표는 춤선을 위해 목검을 주었고. <보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확한 합만큼이나 약간의 ‘삑사리’다. 정돈되고 멋진 것보다는 엉성한 빈틈을 주는 게 웃음을 만들기 좋았다. 그런 식의 유연한 유머를 심고 싶었다. 실제로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줘서 현장에서 접목하기도 했다. 순태의 커튼 장면이나 책으로 다리를 찍는 액션은 모두 조우진 배우가 현장의 미술 소품을 보고 의견을 내준 것이다.
- 모든 인물이 집결하여 단체 싸움을 벌이는 공간은 조직이 시작된 곳, 낙원호텔이다. 처음과 끝이 이곳에서 소생한다.
원래는 낙원호텔 대신 바닷가로 설정돼 있었다. 그런데 태규가 마지막에 힘 있게 휘저어주기를 바라서 공간을 실내로 변경했다. 문제를 해결하고 각자의 꿈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선 다른 곳이 아닌 낙원호텔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식구파와 낙원호텔을 위해 몸담고 있지만 모두 무능하다. 임대수도 따뜻하지만 시대를 못 읽어 무능했기에 회사가 무너졌고, 인술(오달수) 또한 마약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무능하다. 사람들은 낙원호텔에서 식구파 조직원들이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파라다이스를 꿈꿨겠지만 결국 각자의 꿈으로 돌아서는 현실적인 방법만이 이들을 일깨운다.
-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대로 짜장면이 먹고 싶어진다. (웃음)
그걸 바랐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음식으로 약간의 여운이 남길 바랐다. 처음에는 조폭 이야기니까 고깃집을 하자, 칼국수를 하자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나는 짜장면을 원했다. 순태처럼 인간적이고 친근한 음식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한다. 영화에서도 짬짜면을 선택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보스>는 결국 선택에 관한 영화다. 이 딜레마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음식을 통해 살짝 묻어나길 바랐다.
- 코미디 장르에 자기만의 규칙이나 기준이 생긴 게 있다면.
이 작품을 하면서 코미디가 더욱 어려워졌다. 웃긴다는 것은 결국 놀라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음 장면이 예측되는 순간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웃음 또한 그렇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중요하다. 다만 인물들이 억지로 웃기려 과장해서는 안된다. 순태와 강표의 경우도 조폭이 다른 직업을 가지려 하는 설정 자체가 웃긴 것이지, 이들은 모두 자신의 문제에 진지하고 진중하다. 결국 이야기와 인물은 절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