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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3]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2, ‘부산,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 제작기
남선우 2025-10-20

처음 만난 연인을 위한 부산 <박하경 여행기>

고등학교 국어 교사 하경(이나영)은 주말마다 집을 나선다. 반복된 일상에 갇힌 그가 추구하는 건 “사라져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의 여행”. 그곳이 어디든 “걷고 먹고 멍때릴 수 있다면” 잠시 길을 잃어도 좋다. 그렇게 쓰인 여덟편의 유랑기가 2023년 5월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를 구성한다.

부산은 하경이 세 번째로 몸을 맡기는 지역이다. 옛 제자나 동료 교사, 오랜 친구와 조우하는 여타 에피소드들과 달리 3화에서 하경이 맞닥뜨리는 이는 낯선 남자 창진(구교환). 각자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두 사람의 동선은 자꾸만 겹친다. 같은 밀면집에서 식사하고,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마주친 뒤 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에서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연달은 우연에 미소를 감추지 못한 하경과 창진은 나란히 발을 맞춘다. 복천동고분군의 야외극장, 남포동건어물도매시장에서 그들만의 <비포 선라이즈>를 찍는다. 확실한 다음을 기약하기보다 또 한번 인연을 믿어보기로 한다. 3화의 제목이기도 한 ‘메타 멜로’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박하경 여행기>를 함께한 이종필 감독, 조영천 촬영감독, 김보미 미술감독은 그 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처음 만난 연인이 충분히 설렐 수 있도록 부산의 빛과 색을 매만진 그들에게 촬영 후일담을 들었다.

밀면은 물? 비빔?

부산에는 수많은 밀면집이 있다. 그중 박하경이라는 인물이 들를 법한 곳은 어딜까? “프랜차이즈 식당처럼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를 갖춘 곳은 가지 않았을 것 같다. 노포 분위기가 나는, 맛으로 승부하는 밀면집을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 조영천 촬영감독은 제작팀이 물색한 로케이션 중 대성밀냉면을 고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경에 이어 창진도 그곳을 찾는데, 두 사람은 시간차를 두고 같은 고민을 한다. 물과 비빔 중 무엇을 시킬 것인가! 이종필 감독이 구교환 배우의 재치로 탄생한 장면의 비화를 전했다. “촬영 중 컷을 외치지 않고 밀면집에 들어온 창진 역의 구교환 배우를 좀더 지켜보았더니 그가 ‘뭐가 더 맛있어요?’라고 종업원에게 물었고, 실제로 그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저는 물 밀면을 추천합니다’라고 즉흥적으로 답했다. 그러자 구교환 배우가 ‘그럼, 비빔으로 주세요’라고 받아쳤다.”

책이 쌓이듯 감정이 쌓이게

김보미 미술감독은 보수동 책방골목을 “밀도 높은 공간”이라 칭했다. 책들이 촘촘히 쌓여 있어 미술팀이 하나씩 옮겨가며 세팅을 바꿔야 했고, 곳곳에 붙은 광고물들을 가리되 장소의 분위기에 맞게 색감을 디자인해야 했기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날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제작진이 택한 반석서점 내부로는 빛이 잘 들어와 다행이었지만 조명팀을 비롯한 기술팀들의 고생도 상당했다고.

이명세 감독의 굉장한 팬이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날리는 장면이 많은 그의 영화에서처럼 자연의 변화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영화 <러브레터>를 오마주한 이 장면에서는 밖에서 안으로 파고드는 빛으로 인해 인물의 마음이 동요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빛이 아른거리듯 감정도 아른거릴 수 있도록.”(조영천 촬영감독)

사람을 보듬는 극장에서

이종필 감독은 <박하경 여행기>의 부산을 ‘영화제 공간’과 ‘여행자 공간’으로 나눠서 접근했다. 그는 야외 상영장 로케이션으로 영화의전당도 고려했지만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산을 여행한다는 컨셉”을 살리고 싶어 고민하던 중 영화제의 주요 행사인 동네방네비프(BIFF)를 위한 장소로도 사용되어온 복천동고분군 노천극장에 반했다고 한다. 조영천 촬영감독도 “공간이 사람들을 보듬고 있는 원형, 스크린이 산동네쪽을 비추고 있는 형태”가 마음에 들었다고. 부산국제영화제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고, 결국 하경과 창진은 이곳에서 단편영화 <달세계여행>을 함께 볼 수 있었다. 다른 관객들과 달리 엔딩크레딧이 끝나기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말이다.

김보미 미술감독에 따르면 그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복천동고분군 야외 상영 회차를 운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만의 정서가 <박하경 여행 기>와 잘 어울렸기에 과거 영화제 사진들을 찾아보며 당시 행사와 똑같이 현장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때 창진과 하경 뒤로 붙은 <달세계여행>포스터를 비롯해 3화 곳곳에서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팸플릿, 배너 등을 볼 수 있다. 미술팀이 영화제로부터 그래픽 파일들을 넘겨받아 활용한 결과다.

보름달 아래 보랏빛 밤

<박하경 여행기> 3화의 한 장면은 <헤어질 결심>덕분에 가능했다. 조영천 촬영감독이 기억하기로 <박하경 여행기>제작팀에 <헤어질 결심>에 참여했던 스태프가 있었는데, 그가 <헤어질 결심>에 등장한 부산 야경이 잘 보이는 일동빌라를 소개해준 덕분에 하경과 창진이 야경을 바라보는 신을 그곳에서 찍을 수 있었다.

김보미 미술감독은 그날 부산항대교를 보랏빛으로 물들여준 조대연 조명감독과 부산시에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매회 캐릭터들에게 컬러를 부여해 조합하는 식으로 영상미를 만들었다. 3화에서는 하경에게 블루, 창진에게 레드를 부여해 드라마 중간 지점에서 이 두색이 서로에게 스며들기를 바랐다. 하지만 로케이션 촬영 중에는 이를 구현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조명감독님이 부산시와 협력해 만들어준 보랏빛에 정말 감동받았다.”

비 온 뒤 공기까지 자연스럽게

“대한슈퍼를 세팅하는 동안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모두가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다가 밤늦게 남포동건어물도매시장 골목 신을 촬영했다. 걱정이 많았는데 비로 인해 촉촉해진 땅이 그 장면의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더라. 비가 왔는데 오히려 좋은 케이스, 그것마저 부산의 매력으로 느껴졌다.” 김보미 미술감독이 회고하듯 자연스러움을 살려 얻은 아름다움이 <박하경 여행기>에 묻어 있다. 조영천 촬영감독도 덧붙였다. “무서울 수 있는 뒷골목에 엠버와 그린 톤 조명을 같이 써서 빛이 많아 보이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러나 인공적인 월광이나 인위적으로 강한 조명은 피하고자 했다. 하경과 창진이 빛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대한슈퍼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부산의 정서가 살도록

“부산이 가진 특유의 정서가 있다. 미술감독으로서 그것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미술팀이 준비한 소품들이 실제 공간에 이질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게끔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세팅하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 대한슈퍼도 마찬가지였다. 시청자는 미술팀이 뭘 했는지 눈치채기 어려울 거다. 내부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고 외부의 과일 좌판만 생활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가다듬었다.”(김보미 미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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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웨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