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연속기획 3]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2, ‘부산,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제작기
김소미 2025-10-20

꿈처럼 그립고 아름다운 <폭싹 속았수다>

짧지만 꿈처럼 아름답다. <폭싹 속았수다>속 부산은 그런 곳이다. 2025년 3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애순(아이유)과 관식(박보검)으로부터 출발해 그들의 가족, 그리고 자녀 세대까지 아우르는 품 넓은 이야기를 펼친다. 다양한 인물 군상만큼 풍부한 정서를 축조하는 건 삶의 터전으로서 친밀한 이미지로 재현된 장소들이다. 부산은 작품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애순과 관식의 10대 시절에 청춘 남녀의 꿈을 실어나르는 짧은 모험의 도시로 모습을 드러낸다. 요망지게 사랑하고 반항했던 1960년대 섬마을 커플이 택한 사랑의 도피처, 부산 골목엔 흘러 넘치는 낭만과 각박한 세속의 원리가 공존했다. 한편 <폭싹 속았수다>프로덕션 과정에서 부산은 극 중 부산 배경이 아닌 제주 앞바다 위의 선박 촬영 장면 등에도 유용한 로케이션이 되어주었다. 류성희 미술감독, 최윤만 촬영감독, 그리고 홍수환 팬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에게 듣는 <폭싹 속았수다>부산 제작기를 전한다.

시대적 분위기를 살린항구와 여객선

관식이 서울로 유학 떠나는 길. 제주 앞바다 모습은 사실 부산에서 촬영된 것이다. “예산상의 한계로 배를 세트로 만들 수는 없었기에 적합한 규모의 여객선을 찾아야 했던”(최윤만 촬영감독) 촬영팀은 부경대학교 탐사선 나라호의 도움을 받았다. 나라호는 곧 극 중 1960년대 제주에서 서울로 출항하는 도라지호가 됐다. “배 장면은 부산에서, 관식을 배웅하는 애순과 가족들이 서 있다가 이내 연인이 애달프게 끌어안는 무대는 전라남도 장흥의 방파제에서, 관식이 헤엄치는 장면은 고양 세트장에서 촬영”(홍수환 프로듀서)해 완성된 장면이다. 특히 최윤만 촬영감독은 한 신으로 여러 공간을 묶어야 하는 작업에서 세심하게 톤을 맞추고 후반작업까지 색보정에 각별히 신경 썼다고 회고했다. “현대화된 항구의 느낌을 소거하고 갑판, 멀리 보이는 풍경 등에서 시대적 분위기를 살려야 했다. 배 주변으로 크레인을 설치해 블루, 그린 스크린 촬영을 진행했다.” 망망대해 위를 실제로 운행하는 배가 아니라 항구에 정박한 배 위에서 촬영했기에 상대적으로 장비 운영은 용이했지만, 작중 부슬비가 내리는 설정이 관건이었다. “계속해서 부슬비가 내리는 세팅을 유지하는 것은 특수효과로도 표현이 어려워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중간중간 비를 조금씩 뿌려가면서 콘티뉴이티를 맞췄다.”(홍수환 프로듀서)

모험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한편 한국해양대학교 실습선 한나라호 촬영 장면에서 돋보이는 건 관식과 애순의 의상이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가출하는 캐릭터들의 외양에 관해 의상팀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애순은 빨간색 두건에 노란색 원피스. 관식은 푸른색 넥타이가 포인트였다. 너무 현실적이거나 너무 세련되지 않게, 어딘가 다 크지 않은 사람들의 어설픔을 들키는 느낌으로 눈에 띄는 의상이길 바랐다. 그래서 의상감독님과 상의해서 원색 계열로 주조했다.”

부산 이기대공원 동생말전망대와 용호만유람선터미널 인근 앞바다. 제주에서 부산으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애순과 관식의 모험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이번엔 한국해양대학교 실습선 한나라호가 청춘 남녀를 실었다. 최윤만 촬영감독에 따르면 “좁은 갑판 복도에 인물이 서 있을 때는 앵글을 잡기 위한 기본적인 거리감을 확보하는 일이 굉장히 어렵고 또 배 안에는 여러 가지 장비와 계단 등이 설치돼 있어” 배 촬영은 기본적으로 난도가 높은 작업이다. 관계자들의 가이드를 따라 배의 내부 구조를 익히고 현대식 배에서 1960년대 배로의 탈바꿈이 필요한 곳들을 파악한 제작진은 정확한 고증을 위해 특정 부분은 미리 CG 작업을 염두에 두고 촬영했다. 나라호와 한나라호 위에서 진행된 촬영 모두 미술과 촬영의 컨셉은 적절한 단정함에 있었다. 최윤만 촬영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 모두 인물들의 터전이자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한 제주도, 그리고 이들이 모험을 떠나는 부산의 장소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 경로인 배 위의 장면들은 보편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실감나는 거리를 찾아서

류성희, 최지혜 미술감독은 “부산시에 연락해 시대 고증을 위한 자료들을 지원”받거나 류성희 미술감독이 과거 “<국제시장>을 작업할 때부터 찬찬히 수집해온 자료들, 잡지책, 고전영화 등을 망라하며” 실감나는 거리 구현을 위해 애썼다. 그러나 이미 화제가 된 바 있는 부산 남포장 여관 내부 벽지(류성희 미술감독이 김환기 화백의 작품 <은하수>에 영감을 받아 작업했다.-편집자)가 잘 보여주듯이, 매축지마을 촬영 장면에선 건물 내외부를 막론하고 “두 사람을 둘러싼 하나의 작은 우주”처럼 유달리 환상적인 터치가 묻어난다. “작품 전반적으로 미술적 표현에 있어 시대상과 부합하자는 기조였는데, 부산 장면만큼은 과감하게 진행했다. 남포장 여관 내부 미술에선 더더욱 벽지를 비롯한 인테리어에 컬러감을 주고자 했다. 수많은 별들이 애순과 관식을 은하수처럼 감싸도록 만들고 싶었다. 당대를 힘겹게 살아갔던 모든 청춘들, 우리의 부모 세대를 향한 감사와 찬사의 의미를 담아 작업했다.”(류성희 미술감독)

미술의 마술

“사랑하는 여자와 가출을 하긴 했는데 돈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고…. 아마 관식은 네온사인이 가장 휘황찬란한 곳보다는 번화가에서 살짝 비껴난, 이면도로 안쪽의 좁고 긴 골목으로 접어들지 않았을까.” 최윤만 촬영감독이 대본을 읽으며 떠올린 매축지마을 장면의 골목 풍경은 이랬다. 여기에 류성희 미술감독은 여인숙뿐 아니라 옛날식 다방, 작은 바 등이 곳곳에 늘어선 거리라는 설정을 더해 늦은 밤까지 조용히 불을 밝힌 가게들의 간판이 자연스럽게 조명의 기능을 하도록 미술로서 화면 내의 논리를 축조했다. 매축지마을에 미술팀이 직접 디자인해서 건 간판 ‘바-사바나’가 대표적이다.

한편 매축지마을은 밤 신에서 특유의 지형적 이점을 발휘했다. “남포장에서 뛰쳐나와 도망가고 소동극이 있는 등 인물들이 이동하는 사이에 골목 너머의 풍경도 저절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신”(홍수환 프로듀서)이었기에 향후 CG 작업과의 시너지 역시 로케이션의 중요한 요건이었다. “남루한 골목 끝에 그보다 번화한 도시의 불빛이 공존하는 부산의 특성”(류성희 미술감독)이 빛을 발한 지점이다. <폭싹 속았수다>초반의 하이라이트 장면이기도 한 매축지마을의 밤 장면을 위해 미술팀은 전봇대에 나무 질감의 외피를 둘러 나무 전신주를 표현했고, 촬영팀은 화면 내 광원으로 그 위에 가로등을 달았다. “당대의 현실을 생각하면 골목은 훨씬 더 어둡고 삭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술이 그랬듯 촬영에 있어서도 그 시절 부산에서 애순과 관식이 누렸던 부산에서의 판타지를 관객에게 충실히 전하고자 했다.”(최윤만 촬영감독)

애순과 관식이 하룻밤을 묵는 남포장 여관 골목 장면에서 부산은 우리가 ‘잘 아는’ 곳 이상으로 꿈결 같은 분위기를 내뿜는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애순과 관식이 너무 달아나고 싶었던 자신들의 오랜 터전의 바깥이 지니는 판타지적 의미를 섬세하게 살려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연인이 다시 제주로 돌아온 이후엔 일정 부분 현실에 적응하고 젊은 부모가 되며, 자식과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고되게 살아가는 날들이 펼쳐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산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부산 장면이 짧지만 중요한 이유다. 같은 이유에서 홍수환 프로듀서 역시 로케이션 헌팅 과정에 공을 들였고, “1960~70년대 분위기를 간직한, 한국에 얼마 남지 않은 실제 로케이션”으로 부산 동구 좌천동에 위치한 매축지마을을 낙점했다. 최윤만 촬영감독은 “인물들의 동선이 살아야 하는 꽤 긴 구간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골목의 정감 어린 특색이 남아 있어 마치 시간 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작품 내적으로는 “돈 없는 고등학생 두명이 가출한 거라 부산의 번화한 거리보다는 거기서 조금 더 안쪽으로 비껴난, 이면도로의 좁고 긴 골목”이어야 했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