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을 몸담은 직장에서 해고된 후 재취업을 이루기 위해 경쟁자들을 죽이는 남자를 ‘웃기게’ 그리는 일은 언뜻 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우린 그걸 블랙코미디라고 부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쩔수가없다>는 어떻게 ‘슬퍼지고야 마는’ 것일까. 선택의 여지가 없다(No other choice)는 위선적 주문 앞에서 박찬욱 감독은 자본주의의 거짓 논리를 희극적으로 증폭시키면서도, 그 속에 갇힌 개인의 절망을 놓치지 않는다. 기업 합병 후 만수(이병헌)를 해고한 미국인 주주들의 구호는 만수가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할 때 그대로 전염되고, 인간 사이에서 순환하는 도끼질이 그 허무의 절정을 드러내는 종국까지도 제지 공장의 파이프라인은 멈출 줄 모르고 돌아간다. 공감과 거부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주역을 소화한 이병헌은 우스꽝스럽지만 또한 처연하기도 한 풍자극에 인간적 물기와 매력을 더한다. 만수의 선택이 실은 선택이 아니며, 그의 안간힘마저 순응과 무감각함의 발로임을 잠시 잊게 하는 연기다. 배우 손예진은 한국영화사에 남을 여성 인물로 기억될 <비밀은 없다>(돈 매켈러, 이자혜 작가와 함께 <어쩔수가없다>의 각본을 함께 쓴 이경미 감독의 영화)에 이어 사회적 가장의 어리석음을 수습하는 정신적 가장의 수난 속에 뛰어들었다. 가족의 존속을 위해 영영 묻어두어야 할 비밀의 관찰자인 미리(손예진)로 인해 영화는 일종의 정서적 해설로 자리매김하는 시선 또한 얻는다. 베니스국제영화제와 토론토국제영화제를 거쳐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숨가쁜 주말에 박찬욱 감독, 두 배우 이병헌·손예진이 <씨네21>과 긴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말하는 <어쩔수가없다>를 전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손예진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