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미지의 생명체와 마주친 지수(문우진)는 그날을 계기로 천부적인 글쓰기 실력을 부여받는다. 소년은 거저 받은 재능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혹여 그 재능이 자신을 떠날까 두렵다. 수재와 범재. 아이와 어른. 두 경계가 확실히 구분되지 않은 청소년기의 혼돈을 닮은 손경수 감독의 첫 장편 <아코디언 도어>는 사회의 벽을 마주한 보편의 재능에게 아리지만 단단하게 다가올 이야기다.
- <아코디언 도어>는 어디서 시작된 이야기였나. 재능의 강박을 다룬 소재를 살펴볼 때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태도가 반영된 듯싶은데.
영화과 재학 당시 영화제에 두 차례 초청되는 성과가 있었다. 근데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정규 과정으로 입학한 뒤 호되게 당했다. 그때 만든 단편은 하나도 초청을 못 받았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 그만두는 게 자연스러운 시점도 지났을 때였다. 언젠가 옛 단편들을 보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기시감이 들더라. 사람 몸의 세포가 7년 주기로 다 바뀐다고 하더라.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말이다. 낭떠러지 끝자락에 있는 것 같은 마지막 영화를 찍어야 하는 상황과 맞물려 이 이야기가 탄생했다.
- 축구선수를 꿈꾸는 현주(이재인), 순수한 과학 소년 종윤(김건) 그리고 기억상실을 대가로 미지의 생물에게 글쓰기 재능을 얻은 지수. 세 인물은 각자의 관심 분야와 그를 향한 태도가 전부 다르다.
지수는 재능이 자신의 것이라고 온전히 믿기에 건방진 태도를 보인다. 반면 현주는 그 재능이 소중하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그 모습들은 다 내가 언젠가 스스로 영화에 대해서 건방졌던 때와 간절했을 때를 지나고 느꼈던 지점들을 한명 한명에게 투영시킨 것이다.
- 거대한 전환이 있기 전 종윤의 우주 풍선 영상이 난데없이 자리한다. 이외에도 발칙하고 도전적인 장면들이 영화 내내 자리한다.
단편 때는 이미지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리듬이 동떨어진 숏을 붙이면서 새로운 느낌이 자아내는 것을 탐구하고 실험하는 걸 즐겼다. 그런 장면들은 단편 시절에 지향한 나의 이미지 실험을 고스란히 활용한 것이다. 아무리 남고 싶어도 하염없이 올라가며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풍선의 장면이 마치 청소년기에 내가 느낀 불안감과 닮아 있었다. 다른 설명 없이도 청소년기의 한 인상을 담고자 고집이란 고집은 피워 만든 장면이다.
- 강박에 휩싸인 지수를 연기한 2009년생 문우진 배우와 활달하고 해사한 2004년생 이재인 배우의 조합도 <아코디언 도어>의 매력 포인트다.
김진형 촬영감독의 추천으로 <무인도의 디바>를 봤다. 우진이의 얼굴을 보고 매료됐다. 저 소년이라면 문체적이고 치기 어린 자기 연민의 말을 소화할 것 같았다. 재인이도 전형적이지 않은 통통 튀는 매력이 있어서 수소문을 해서 이 영화를 부탁했다. 개인적으로는 우진이의 소년 시절을 내 영화를 통해 반영구적으로 남길 수 있어서 참 좋았다.
- 영화를 보고 나면 재능을 포기하고 보편의 삶을 택한 이들을 예찬하는 성장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모든 성장이 밝지만은 않고, 슬픈 성장도 있다는 것을 알려줘서 좋았다는 한 문자를 편집 과정에서 받았다. 딱 그 표현이 맞는 것 같다. 20, 30대에 들어서면서 내가 도약하는 것이 날갯짓인 줄 알았는데 현실의 벽에 부딪혀보니 결국 점프였을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가 떨어진 것은 추락이 아닌 착지가 아닐까. 모든 것이 잘된다는 허울뿐인 위로보다 슬픔 그대로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