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명히 무언가 해냈다. 그러나 성취란 언제나 조건부로 남는 법. 국가와 이념을 건 사투일수록 그러하다.” 1970년 어느 날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은 <굿뉴스>는 납치된 비행기를 착륙시켜야 하는 두 남자를 경유해 달의 뒷면을 가리킨다. 한 사람은 신원조차 불분명한 아무개(설경구). 다른 한 사람은 ‘높을 고’를 쓴다지만 어쩐지 메인 요리 위에 얹히는 신세를 못 면하는 재료와 발음이 같은 이름의 공군 중위 고명(홍경)이다. 오래된 비사를 놀랍도록 동시대적인 블랙코미디로 재해석한 변성현 감독과 네 번째로 협업한 배우 설경구, 그런 선배를 ‘무비 스타’로 우러러봤다는 배우 홍경이 부산영화제 첫 상영 이후 마주 앉았다. 그들의 대담에 덧붙인다. <굿뉴스>는 10월17일부터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을!
- 오늘이 <굿뉴스>와 국내 관객의 첫 만남이었다. 두 배우는 서로의 첫인상을 어떻게 기억하나.
설경구 경이의 이름만 알고, 학교 후배인지도 몰랐다. 허연 놈이 착~ 하게 생겼더라. 술을 못 마신대서 좀 서운했지만. (웃음) 경이에게 나는 노출이 많이 된 사람이었겠지?
홍경 말씀대로 선배님 출연작을 거의 다 보며 자랐다. 설경구 배우는 내게 무비 스타라 설레는 첫 대면이었다. 얼어붙은 한국영화계에서, 나 같은 놈에게도 이런 황금 같은 기회가 오는구나 싶어서.
- 변성현 감독과는 어떤 대화를 나눴나.
홍경 내게 <굿뉴스>는 고명이라는 젊은이가 달리다가 넘어졌을 때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시나리오만 읽고 이렇게 큰 매혹을 느끼기는 처음이다. 감독님과도 젊은 시절의 열망에 관한 생각을 나눴는데, 우리 둘이 맞닿은 지점이 굉장히 많았다. 촬영 초반에 경구 선배님이 내게 변성현 감독과 잘 맞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신 기억도 난다.
- 홍경 배우에게 그렇게 말한 까닭은.
설경구 그냥 느낌이 왔다. 변성현 감독은 영화 바깥의 일에는 의욕이 별로 없는데, 술 마실 때와 일할 때만큼은 열심이다. 경이의 집중력을 봤을 때 둘이 잘 맞을 것 같더라. 경이가 얼마나 적극적인지 오케이가 떨어져도 한번 더 해보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럼 내가 뒤에서 그랬다. “아까 한 게 오케이야~.”
홍경 선배님 말이 항상 맞았다. (웃음)
설경구 한번 더 해보겠다고 하는 순간 긴장이 확 올라오기 마련이거든.
홍경 이런 부분에서 감사한 것이, 선배님처럼 경험 많은 배우는 나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의심할 만도 한데 촬영이 끝날 때까지 나를 믿어주셨다. 첫 리딩 때부터 그 믿음 아래서 연기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설경구 나는 나를 의심하기도 바빠!
- 이 영화에는 “필요한 건 약간의 창의력과 그걸 믿으려는 의지”라는 대사가 반복된다. 배우로서 <굿 뉴스>를 만들어가는 동안 가장 믿어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설경구 아무개라는 역할 그 자체.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이라 그런지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전히 의심스럽다. 변성현 감독은 이 인물이 다른 인물들과 섞이지 않는, 연기하듯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했다. 감독의 디렉션에 따라 행동과 표정을 모두 크게 했는데 이래도 되는지 계속해서 자문했다. 게다가 고명이의 내레이션이 많지 않나. 변성현 감독 왈, 아무개에게는 고명이가 머리 굴리는 소리가 다 들린다더라. 그래서 더욱 어려웠다. 아무개의 능력은 어디까지인 건가! 그 질문만 하다가 촬영이 끝났다. (웃음)
홍경 나는 고명이가 품은 야심에 끌렸고, 그게 뭔지는 알겠는데 그걸 내가 잘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했다.
- 그 끌림은 공감과 인간적 호기심 중 어디에 가깝나.
홍경 완전히 공감했다. 옆에 있는 선배님처럼 무비 스타가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 현장에서도 선배님이 겪어온 서사를 지겨울 정도로 자주 물었다. 그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설경구 나는 운 좋게 한국영화의 제일 좋은 시기를 지나온 배우 아닌가. 경이는 그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 좋았다니 요즘 영화계 상황에 대한 아쉬움도 느껴진다.
홍경 그만큼 <굿뉴스>는 내게 의미가 큰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품고 있던 20대의 열망과 맞닿은 캐릭터를 만나 동경해온 선배들과 한 프레임에서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귀한지 알고 있다.
- 앞선 GV에서 변성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전작들과 달리 브로맨스 컨셉을 배제하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아무개와 고명만이 존재하는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만큼은 묘한 버디물의 향기를 풍긴다. 두 배우의 의견은.
설경구 내 눈에는 브로맨스다. 아무개와 고명은 티격태격하지만 마지막에는 분명히 교감한다. 서로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홍경 동의한다. 고명은 끊임없이, 특히 일이 잘못될 때마다 아무개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다. 그래서 마지막 신을 찍던 때를 잊지 못한다. 아무개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고명에게 자기 마음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던 순간, 선배님의 날카로운 직구를 시속 160km로 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연기해온 모든 시간을 통틀어서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설경구 그 마지막 장면을 아무개로서 연기하는 동안, 내게는 쓴맛이 났다.
홍경 나도 고명이의 마지막 행동에 대해 감독님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결국 어떤 씁쓸함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설경구 이렇게 정성 들인 영화이니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다. 변성현 감독도 이번만큼은 진짜 원 없이 했다고 하더라. 그와 여러 작품을 함께한 내게도 그 만족감이 보였으니 관객에게도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