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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그림 속 상징과 비밀들, 연여인 작가가 직접 말하는 포스터 비하인드
이유채 2025-10-02

연여인의 포스터는 늘 예리한 길잡이였다. 그는 상업 작업을 “합의된 틀 안에서 예술성을 시험하는 기회”로 여기며, 작품과 작가가 함께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왔다. 하나의 포스터가 완성되기까지 그가 거친 과정과 품은 생각을 정리한다.

<어쩔수가없다>

염소와 새, 어린이가 구름 같은 잎에 감싸인 거대한 나무 그림. 개인전에서 와 마주했다면 연여인과 <어쩔수가없다>의 만남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촘촘한 드로잉, 비밀을 간직한 인물과 소품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의 스타일은 박찬욱 감독의 연출과도 닿아 있다. 이번 포스터에서 연여인 작가는 삽화를 담당했다. “기획을 총괄한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스테디’가 보내온 전체 스케치 배치에 맞춰 펜 드로잉과 명암 작업” 등을 진행했다. 알아주지 않더라도 잉크 작업을 고집한 건 “물질성”을 원했기 때문이다. “종이에 펜이 닿았을 때의 거친 느낌이 좋다. 잉크는 자체적으로 무게감을 지녔는데, 잉크 라인 안을 밝은색으로 채웠을 때 생기는 이질감이 블랙코미디인 영화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에 들어갔으나 그게 걸림돌은 아니었다. “대신 그간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꾸준히 보면서 파악한 장르적 기조”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림처럼 보이는 것도 중요했다. “클라이언트가 그림을 선택했다면 사진과 구별되는 무언가를 원한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성이 아니라 그림만이 할 수 있는 왜곡과 강조, 생략이 있다. 이런 요소들을 잘 살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내가 상업 작업에서 얻고자 하는 중요한 점 중 하나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

엄마를 찾아가는 보(호아킨 피닉스)의 기묘한 여정을 따라간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보면서 연여인 작가도 대부분의 관객이 그랬듯 불쾌했다. “분위기가 어둡지는 않은데 어딘가 찝찝하고, 악몽 속에 갇힌 듯 도중에 나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감각을 그대로 포스터에 옮겼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영화를 보고 나오며 “자신처럼 혼란스러울 관객들에게 힌트를 건네고” 싶었다. 그래서 물과 같은 상징을 비롯해 보가 여정 중에 겪고 본 것들을 한데 모았다. 위치는 애초부터 보의 머리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의 머릿속을 그렇게라도 시각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동조자>

박찬욱 연출작의 포스터 작업은 시리즈 <동조자>가 시작점이었다. 제공된 재료는 “트레일러와 몇백장의 스틸”. 양적으로는 충분해 보였지만 본편을 확인하지 못한 채 흩어진 단서들만으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를 완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주어진 시간은 “대략 2주”로 빠듯했다. 그렇다고 마감일을 넘길 수는 없었다. “그간의 상업 작업을 통해 데드라인 엄수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마감은 무조건 지킨다는 일념으로 밤을 지새웠다.” 베트남전쟁 뒤 미국으로 건너간 북베트남 스파이의 서사를 한장의 이미지에 응축하기 위해 주인공 캡틴(호아 쉬안데)의 얼굴을 전면에 소환했다. 강렬한 바스트숏으로 압도감을 주고, “총과 술, 코카콜라 등 그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과 취향의 요소”를 프레임 안에 빼곡히 채워 은밀한 인물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나인 퍼즐>

대체 왜 나무에 빨간 풍선과 캐리어 가방이 걸려 있으며 우산 쓴 소녀는 무엇을 목격한 것일까. 연쇄살인범을 쫓는 프로파일러와 경찰의 추적 스릴러를 담은 디즈니+ 시리즈 <나인 퍼즐>에 연여인 작가는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다. 포스터는 물론 주요 소품들도 그의 손을 거쳤다. 포스터 작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흑백에, 추리소설 표지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라는 디즈니+의 제안이었다. 작업은 크랭크인 전부터 들어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홍보마케팅 회의도 여러 차례 거치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서서히 구체화”할 수 있었다. 복잡한 사건 현장을 압축한 듯한 포스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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