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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선 중기 마포 나루터의 하층민 삶을 새롭게 흥미롭게, <탁류> 추창민 감독

<마파도>로 시작해 <그대를 사랑합니다><광해, 왕이 된 남자><행복의 나라>등 한곳에 정박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장르를 바꿔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온 추창민 감독이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인 <탁류>를 통해 다시 한번 사극으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추창민 감독 본인도 잘 알고 있던 바였다. 그러나 그에게 익숙한 무언가를 반복한다는 것은 옵션에 없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천만 관객 동원 이후 들어온 수많은 사극 제의를 전부 거절했던 그는 자신의 성향을 “음식도 한번 먹은 건 잘 먹지 않는다”라며 에둘러 표현했다. 시류에 쉽게 편승하지 않는 그가 마침내 두 번째 사극을, 그것도 첫 OTT 시리즈 작업을 통해 연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선택의 결과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추창민 감독에게, 그간의 선택 과정에서 느꼈을 심경에 관해 물었다.

- 오랫동안 영화 작업을 해왔지만 OTT에 공개되는 시리즈 연출은 처음이다. 그동안 받은 제안이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행복의 나라>촬영을 하고, 또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개봉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고 나니 산업과 현장에 많은 변화가 생겼더라. 처음엔 거부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OTT에서 볼 작품을 만드는 작업 방식이 그 결과물에 문제가 없을 만큼 환경이 좋아졌다고 느꼈고, 또 천성일 작가에 대한 신뢰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 그렇게 시리즈 연출에 처음 도전한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관객들을 만나게 되어 기분이 남달랐겠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큰 스크린에서 상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 기분이 좋을 따름이다. 무엇보다 <탁류>는 스크린이 아닌 TV 상영을 기준으로 작업한 작품이라 그 그림이 다시 스크린에 펼쳐졌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상당했다.

- 영화제 상영 후 관객 반응을 어떻게 느꼈나.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대부분 잘 봐주신 것 같다. 한국 드라마는 보통 주인공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우리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이번에 공개한 1, 2부에도 주인공이 상당히 늦게 등장하고, 대신 시리즈의 세계관인 나루터에 대한 소개가 초반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탁류>를 한편의 영화라고 봤을 때, 초반부엔 다소 생소한 세계관인 마포 나루터에 시청자들을 유입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봤다. 영화만이 가진 고유한 문법을 되도록이면 포기하지 않고 지키고 싶었다.

- 앞서 얘기한 한강의 나루터들과 그곳을 관리하는 왈패 무리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느껴져 신선하게 다가왔다.

천성일 작가의 각본을 봤을 때부터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지점이었다. 사실 사극 제의를 받는 동안 특별한 이끌림을 느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것보단 완전히 새로운 장르,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기준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탁류>는 분명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층민에 관한 이야기다.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상류층 사람들을 다뤘으니 이번엔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특색 있는 캐릭터만큼 돋보이는 게 시대상을 반영한 공간들이다.

맞다. 강조하고 싶은 게 바로 나루터라는 공간이었다. 공간은 개인적으로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욕심내는 부분이다. <마파도>의 섬이나 <7년의 밤>의 숲 등 작품의 공간이 나의 인장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궁 역시 비슷한 배경의 이야기를 만드는 다른 창작자들이 내 영화의 공간을 참고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이번 작품의 나루터 또한 비슷하다. 사료가 없어서 모든 부분을 창작해야만 했지만 오히려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기에 더 신났던 것 같다.

- <탁류>의 세계관에 대해 좀더 소개해준다면.

한강을 따라 생성된 나루터 지역마다 그곳을 관리하는 집단인 왈패들이 있다는 세계관이다. 그중 가장 많은 식량과 물자가 오가는 마포 지역의 나루터를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왈패 무리는 쉽게 말해 관청 공무원들과 일꾼 사이에서 이윤을 챙기는 중간 관리자 집단이다. 그 어떤 시기에도 인간 사회엔 강자와 약자 관계에서 착취 같은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작중 배경인 조선 중기는 그 착취로 인한 피해가 직접적으로 생존과 연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보다 더 극적이고 처절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기대해도 좋다.

-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이번 <탁류>에서도 작품에 담긴 현실 반영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발견하기를 기대할 것 같다.

아무래도 사회 밑바닥의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그런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비껴갈 수 없는 이야기라면 그냥 그대로 솔직하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의 역할은 그걸 세련되게 잘 숨겨놓는 것이다. 가끔은 그게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웃음)

- 주요 캐스팅을 보면 젊은 배우들이 눈에 띈다.

나로서도 도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새로웠다. 생각해보면 데뷔작 <마파도>때부터 엄청난 내공을 지닌 배우들과 작업했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경력이 많은 배우들과 함께했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이번 작업을 통해 만난 로운, 신예은, 박서함 등 젊은 배우들로부터 엄청난 매력과 기운을 느꼈다. 무엇보다 OTT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시청 연령층이 젊기 때문에 이렇게 소중한 기회가 아니었다면 젊은 배우들과 영영 함께하지 못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닫혀 있었는지 반성했다. 작품의 주요 인물을 연기하는 세 배우는 일단 멋진 마스크를 가졌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연기에 대한 열정과 열린 마음이었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앞으로도 젊은 배우들과의 협업을 적극 고려할 생각이다. 내게 있어 <탁류>는 여러 가지 의미로 새로운 가능성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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