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덴지는 전기톱의 악마와 계약한 후, 모든 것을 썰어버리는 막강한 힘의 ‘체인소 맨’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일본 공안 소속의 데블 헌터가 되어 각종 악마와 맞서 싸우고 있다. 한편 상사 마키마를 흠모하는 덴지는 자신에게 진정한 마음이랄 게 있는지 고민하는 중이기도 하다. 여기엔 제대로 된 사회의 보살핌 없이 자란 덴지의 성장배경이 뒷받침되어 있다. 그런 덴지에게 불현듯 찾아온 또 한명의 소녀, 보랏빛 머리칼과 신묘한 눈망울을 지닌 레제. 덴지는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레제와 함께 설레는 시간을 보내지만, 뜻밖의 악마와 마주치며 잠깐의 사랑을 멈추고 결투를 시작한다. 동명의 인기 만화 중 한 에피소드를 극장판으로 만든 작품이다. TVA에서 명확히 살아나지 못했던 원작의 허무하고 충동적인 정서가 훨씬 더 잘 어우러지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일반적이지 않고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덴지의 성격이 비약 없이 자연스레 드러나면서 <체인소 맨>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덴지와 레제의 관계 변화다. 고요한 물의 움직임으로 멜랑콜리에 젖은 로맨스를 구현하던 이들의 감정은 후반부에 쉴 새 없이 폭발하는 불꽃의 열망으로 가시화된다. 작품의 서정성을 유려하게 매만지며 선사하는 물과 불의 시각적 완급 조절에 홀린 듯 빠져들 수밖에 없다. 영화 <태풍클럽>속 물의 뉘앙스가 주는 적막함과 긴장감을 오마주했다는 원작자 후지모토 다쓰키의 의중이 적절히 구현된 대목이다. <체인소 맨>시리즈의 다른 이야기와 세세한 연관성이 적고, 극장판만의 기승전결도 뚜렷한 터라 시리즈에 입문하기로도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