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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영화는 경험이고, 극장은 습관이다
송경원 2025-09-26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문자 그대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올해가 마지막인 거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역대급 게스트가 부산에 모여 다채로운 행사를 치렀고, 이에 호응하듯 많은 관객들이 영화의 바다에 흠뻑 빠졌다. 흥하면 흥하는 대로 우려의 목소리가 섞여 나오기 마련이다. ‘극장에는 사람이 없는데 영화제에는 사람이 넘쳐난다’는 자조 섞인 지적은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지만 축제에는 인파가 몰리는 걸보며 올해 도서전의 풍경과 연결하는 세평도 있다. 확실히 책과 영화 모두 대중적, 상업적인 규모의 영향력은 줄어드는 반면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오프라인으로 응집하며 전과 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반드시 북적거리는 소란이 있어야 한다. 다만 큰 목소리에 묻혀, 이 다채로웠던 소란을 축약된 몇 단어로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술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짧게 축약하지 않는 것이라 답하겠다. 가령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는 정보를 한없이 길게 풀어서 고유한 형상을 찾아나가는 행위야말로, 우리가 예술로 일컫는 잉여로운 작업의 요체다. 영화와 영화제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제에는 그야말로 수백 가지 종류의 영화가 모인다. 수백편이 아니다. 거대하고 느슨하게 영화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 뿐, 애초에 목적과 방향, 본질이 다른 것들이 한데 모여 있다. 따로 볼 땐 티가 나지 않던 것들이 장소와 기간이 특정된 영화제라는 용광로 안에서는 명확하게 구분되기 시작한다. 그제야 깨닫는다. 그저 ‘영화’라고 통칭했던 말이, 그 압축된 단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우고 눈을 가리는지를. 영화제를 축제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저 즐겁게 모여 있기 때문이 아니다. 차라리 ‘극장을 가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거대한 제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구태여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그저 즐거운 경험들의 총합으로도 충분하다. 오히려 개개의 영화를 만나는 방식과 그 주변의 시간들, 그러니까 극장 바깥의 경험까지 또렷하게 기억된다는 점이야말로 영화제가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이건 비단 영화제뿐 아니라 거의 모든 예술 매체의 축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인파 중 한 사람과 수백 종류의 영화 중 한편이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대체할 수 없는 기억들이 유일한 형태로 쌓여간다. 구태여 그 총합을 모아 이름표를 붙이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떠드는 가운데 각자의 대화로. 따로 또 같이. 극장의 속성이자 특권이다. 대체로 기억이란 녀석은 메아리처럼 뒤늦게 따라와 다시 속삭인다. 매일 새벽 2시까지 이어진 데일리 마감 강행군 땐 미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부산의 장면들이 있다. 피곤에 절어, 프로그래밍된 관성대로 움직이던 내 머리를 후려친 건 <난 폭풍 속에 쉬어가>의 페드루 피뉴 감독의 한마디였다. “시네마는 경험과 습관입니다. 극장이, 그리고 영화제가 그 길을 열어줍니다.” 오늘도 어딘가의 극장에선 누군가를 향해 별빛 같은 경험들이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14편의 경쟁작 여정을 따라가다 장률 감독의 신작 <루오무의 황혼>의 엔딩을 보며 올해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이했지만, 며칠이 지나니 눈 감을 때마다 영화 속장면들이 떠올랐다가 거품처럼 사라지길 반복한다. 아쉬움과 반가움, 미안함과 뿌듯함, 끝내 자괴감의 숲을 지나 10일간의 소란스러웠던 축제 끝에 남은 건 그 꿈결 같은 잔상뿐이다. 생각해보니 그거면 이미 충분, 아니 과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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