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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창의적인 인공지능 르네상스를 꿈꾸며, 2025 경상북도 국제 AI·메타버스 영상제 현장 기록
이자연 사진 최성열 2025-09-26

구미, 포항, 경산, 청송 등 4개 시군이 함께하는 ‘2025 경상북도 국제 AI·메타버스 영상제’(이하 경북AI영상제)는 지난 9월12일부터 14일까지 따뜻한 관심 속에 사흘 동안 이어졌다. 이번 영상제는 AI가 영상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최첨단 기술에서 출발하는 영화제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예술과 인간, 기술과 인공지능을 분리해 구별하기보다 서로 달라 보이는 가치가 융합될 때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명확한 사례와 연구, 논문을 토대로 공유되었다. 국제콘퍼런스, 마스터클래스, 미디어아트 전시 등 AI 영화의 다음 챕터를 모색한 현장 분위기를 전한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AI의 발전 앞에서 많은 이들이 무력감을 느낀다. AI는 정말 인간의 존재가치를 위협하는 대상일까. 기술적으로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무너뜨리고 모든 의미를 대체할까. 경북AI영상제 국제콘퍼런스 ‘AI, 산업 창조의 엔진이 되다’에서는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다스릴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미국, 중국 등 다국적 패널의 참여로 실시간 AI 통역 기능이라는 독특한 풍경이 눈에 띄었다. 연사가 모국어로 연설하면 양쪽에 설치된 화면에 자동으로 자막이 나타났다. 먼저 에드워드 정 인텔렉추얼 벤처스 CTO(최고기술책임자)의 기조 강연이 포문을 열었다. 그는 AI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지금, 더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는가? 수치들을 보면 그렇다. 더 건강해지고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우리는 자신을 더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해졌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자기 안의 불안과 우울을 마주한다. 모든 연령대에서 역사상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한다. 그 이유는 너무 많은 혁신과 혼란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창의적 지능을 키워야만 한다.”

이어 손재권 더 밀크 대표는 오픈 에이전트 웹(Open Agent Web)이 창의적 르네상스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설명했다. “‘오픈 웹’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이다. 장벽 없이 돈을 내지 않고 클릭 하나만으로도 전세계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한 버전을 ‘오픈 에이전트 웹’이라 한다. 에이전트는 개별 개체로 대신 판단하고 행하는 에이전시를 생각하면 쉽다. 이를테면 ‘GPT야, 스타벅스 커피 배달해줘’라고 주문하면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츠 등 앱을 자동 확인하여 주문을 실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기능을 내년에 오픈AI에서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르게는 올해 12월까지도 본다.”

마지막으로 유철균 경북연구원 원장은 AI 영화에 필요한 가치관을 새로 정비했다. “현재 AI 영화는 기존 극영화를 차용한다. 일찍이 사진의 픽토리얼리즘이 사진보다 앞서 존재했던 회화 형식을 모방하면서 자기만의 예술성을 확립했던 것처럼, AI 또한 모방을 통해 고유한 예술성을 쌓는다. 그리고 그 과정엔 인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AI가 고도화되면 기술이 모든 과정을 자동으로 처리할 거라 믿는다. 카메라가 처음 나온 시절을 떠올려보면 어떤가. 모든 영상을 카메라가 알아서 찍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믿음인지 지금의 우리는 모두 안다. 결국 인간과 AI 영화의 관계는 보다 노동집약적이고 분투하는 방식으로 변모할 것이다.”

영상제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는 이주원 덱스터 스튜디오 시각효과 감독과 김준형 M83 스튜디오 부사장이 단상에 올라 AI가 접목된 VFX의 현황을 현실적으로 정리했다. 이주원 감독은 ‘AI 기술 발전에 따른 VFX 산업의 변화’를, 김준형 부사장은 ‘VFX에 적용되는 AI 기술’의 사례를 설명했다. 두 강연은 공통적으로 현재 영화가 제작되는 모든 단계에 AI가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VFX 기술 중에서 AI의 접목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단연 로토스코핑이다. 로토스코핑이란 이미지의 일부를 바꾸거나 합성을 할 때 레이어를 일일이 분리하는 작업을 말한다. 가장 노동집약적인 프로세스로로 유명하지만 AI 덕분에 자동적인 레이어 분리가 가능해졌다. 마블 스튜디오의 <만달로리안>의 경우 복잡한 배경 합성이 필요하지만 AI 로토스코핑을 통해 기존 대비 90%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이주원 감독은 “이로써 인간들은 창의적인 작업에 몰두하고, AI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 노동에 투입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급변하는 상황에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VFX 아티스트의 노동시간이 대폭 줄면서 임금이 하락하고 VFX 단가도 떨어질 수 있다. 또 기술 활용도에 따른 스튜디오간 양극화 또한 심화될 수 있다. AI는 막을 수 없다. 따라서 AI의 역할을 VFX 아티스트의 역량을 강화하는 도구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데이터 중심인 AI와 감성 중심인 인간의 감정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성장이 필요하다.”

사흘간에 걸쳐 진행된 경북AI영상제에서 많은 이의 주목을 끈 것은 바로 서양화가 소피 오의 체험형 미디어아트 전시다. 전시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작은 방 하나가 나온다. 그리고 눈을 사로잡는 안내 문구 하나. ‘빛과 움직임으로 다시 태어난 작품을 만나보세요.’ 정지된 상태의 그림을 관찰하던 시야 안으로 이내 움직이고, 확장하고, 존재하는 이미지가 채워진다. 이 영상은 AI, AI 소규모 언어 모델, 블록체인 기반 등 융합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니스트’에 의해 제작되었다. 보통 미디어아트라고 하면 미디어 기반의 예술 활동을 이어온 창작자가 미디어 작품을 창조할 것이라 예상하지만 소피 오 작가는 지금까지 해온 방식 그대로 자기만의 회화 활동을 계속해나가고, 시니스트는 그의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재해석하면서 혁신적인 컬래버레이션을 이룬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가 개개인의 기술적 역량을 강조하기보다 기술의 보편화를 촉구하니 창작자가 개성을 잃지 않는 동시에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제공할 기회가 생겨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