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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클로징] ‘잠실의 찰리 커크 추모 집회’

이 제목에 따옴표를 친 이유는 사실 확인에 대한 일부의 의문 때문이다. 지난 9월13일 서울 잠실에서 찰리 커크 추모 집회가 열렸으며 5천명 규모의 참가자들이 운집했다는 소식이 우파 계열의 매체들에서 일제히 보도되었고 여러 사진과 동영상들이 SNS에 올라왔다. 하지만 이른바 ‘메이저’ 매체들에서는 보도된 바 없고 이를 접한 일부 누리꾼들은 그 사진과 동영상이 모두 AI로 합성된 가짜 뉴스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나도 판단할 방법은 없지만, 워낙 허를 찌르는 상상 밖의 집회였는지라 주요 매체가 취재하지 못했을 뿐 사실 자체를 부정할 근거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미국의 유력 정치인도 아닌, 그것도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했던 한 청년 인플루언서의 비극적 죽음에 멀리 한국에서 추모 집회가 열린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영국에서도 찰리 커크의 추모 집회에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니까. 이제 신우익 운동은 확연하게 국제주의적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의아해할 수 있다. 원래 국제주의는 좌파 운동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었다. 전쟁, 착취, 차별, 환경 파괴 등의 문제들은 자본과 지배계급의 소행이니 전 세계 민중들은 인종, 성별, 계층, 종교, 국적을 넘어서 연대하여 여기에 맞서자는 것이 200년 가까운 좌파의 전통이었으니까. 반면 극단적인 우익 운동은 인종이나 민족과 같은 ‘핏줄’에 호소하여 나라 단위로 뭉쳐서 국내외의 적들과 맞서자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보편주의에 입각한 국제적 운동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라. 우선 2차대전 이후 민주주의의 본산이라고 여겨져왔던 서방세계의 주요 국가들에서는 우익정당이 이미 대안적 집권 세력으로 성장해 있다. 미국과 이탈리아는 이미 그렇게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에서 모두 가장 유력한 차기 집권 정당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우익정당들이다. 이들이 이끄는 운동은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고 ‘동조화’(synchronized)되어 있다. 미국의 밴스 부통령이나 일론 머스크와 같은 유력 인사들이 다른 나라의 우익정당들에 강력한 지지를 보낼 뿐만 아니라 이 세력의 담론 또한 서로 국제적인 대화를 통해 연결되고 융합되는 흐름을 보여왔다. 찰리 커크 암살 사건은 이러한 우익 세력의 국제적 연대를 확인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고 있다. 잠실에서 5천명의 (대부분) 한국인들이 찰리 커크의 죽음을 추모하는 집회를 열었다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은 이른바 (서방식) 민주주의라는 것이 하나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 바뀔 수 있다. 어쩌면 20년 아니 10년 후에는 그러한 민주주의란 그러한 위치를 잃고 그저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는 여러 정치적 이념과 입장의 하나 정도로 격하될지도 모른다. 세상은 변화하고 끝없이 진화하는 것이니까. 덧붙이자면, 생물학적 의미의 진화는 더 이상적인 세계로 변화한다는 의미의 ‘진보’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구는 돌고’, 세상은 끝없이 ‘진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