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번잡한 시부야역 앞에 가면 자그마한 작은 개 동상이 하나 있다. 1925년에 숨진 주인을 10년 동안 변함없이 시부야역 앞에서 기다린 개 ‘하치’다. 일본 영화 <하치 이야기>는 바로 이 ‘효성스런’ 개의 이야기를 그린 1987년도 작품이다.일본의 전통견인 아키다견인 하치는 눈이 하얗고 소담스럽게 내리는 날 태어났다. 하치는 태어난 지 석달 만에 당시 도쿄제국대학 교수였던 우에노 박사의 집으로 보내진다. 하치라는 이름은 우에노 교수가 그의 다리가 팔(八)자로 벌어진 걸 보고 붙여줬다. 하치는 교수를 아버지처럼 따른다. 함께 목욕하고 비오는 날 함께 자는 모습은 아내의 밉지 않은 질투심을 자극할 정도다. 출퇴근하는 교수를 매일 시부야역까지 배웅 나가기를 1년반. 교수는 어느날 갑자기 강의 도중 죽는다. 그러나 하치는 교수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다른 집으로 보내도 아사쿠사에서 시부야까지 하치는 달려온다. 그렇게 10여년 동안 하치는 숨질 때까지 교수를 기다리며 역앞을 지켰다. <하치 이야기>엔 극적인 드라마나 갈등은 없다. 하지만 외동딸을 갑작스레 시집보내고 쓸쓸해하는 노부부의 대화나, 사람들이 무심히 곁을 지나가는 눈덮인 거리에서 조용히 쓰러져 잠들어 버리는 하치의 모습을 보다보면 잔잔한 파문이 가슴속에 인다. “안 돌아올 사람을 왜 기다리지?” “하치는 기다리고 싶은 거예요.” 개든 사람이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치 이야기>는 이렇게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마음을 그린다. 28일 개봉.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