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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토록 사실적인 열정, <어쩌면 해피엔딩> 배우 신주협
이유채 사진 오계옥 2025-09-23

최근 뮤지컬 <니진스키> <데카브리>,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 <졸업> <노무사 노무진>, 영화 <검은 수녀들>까지 2017년 뮤지컬 <난쟁이들>로 데뷔한 이래 배우 신주협은 다매체에서 열의 있는 행보를 펼쳐왔다.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경계 없이 활동하고 싶었다”는 그는 그 꿈을 현실로 이어갈 수 있음에 감사함을 전했다. 영화 <어쩌면 해피엔딩>은 두 번째 올리버 도전기다. 2018년 재연된 동명 뮤지컬에서 처음 사람과 흡사한 ‘헬퍼 봇-5’ 올리버 역을 연기한 그는 스크린에 전보다 더 사실적이고 섬세한 로봇을 불러냈다.

- 영화 제안을 받았을 때를 어떻게 기억하나.

처음에는 거절했다. 큰 사랑을 받는 작품이니 욕심 내면 안된다고, 그러다가 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용기를 많이 줬다. 올리버라는 좋은 캐릭터를 영화로도 보여줄 기회이니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응원에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짧은 준비를 거쳐 14회차 정도 찍는 동안 영화로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했는데 완성본을 보니 안심이 됐다. 모두가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한 덕분이다.

- 올리버는 조금 따뜻해진 바람에 오늘 하루를 기대하는 긍정형이다. 그의 이런 성격은 떠나간 주인 제임스(유준상)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 싶었다.

올리버의 성격을 처음 파악할 때부터 생각한 건데, 로봇은 주인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을 세팅하지 않나. 주인이 어떻게 훈련하느냐에 따라 각 집안의 로봇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다정하고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가진 제임스에게 올리버가 큰 영향을 받았을 거다. 그래서 기계적인 느낌이 덜 나는 로봇을 올리버의 특징으로 잡았다.

- 찰리 채플린 같은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다움과 로봇스러움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그 지점이 정말 어려웠다. 더 로봇 같게 할지 아니면 사람처럼 할지를 놓고 이원회 감독님과 신마다 의논했다. 그래도 관객이 이 영화를 로봇들의 이야기라는 걸 감각하며 따라가도록 로봇의 뼈대는 늘 신경 써서 유지하려고 했다. 이를테면 미묘하게 분절적인 움직임과 대상을 정확히 타기팅한 시선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 반면 제임스를 찾아 다른 헬퍼 봇인 클레어(강혜인)와 제주도로 떠나는 <My Favorite Love Story> 시퀀스에선 작정하고 사람인 척하는 로봇을 연기해야 했다. 여행 중인 사람 커플로 위장한 올리버와 클레어가 둘의 첫 만남 스토리를 짓는 환상적인 순간이 이어진다.

한 카페를 빌려 새벽 동안 찍었는데 끝나니까 6시쯤이었다. 이 시퀀스는 비교적 수월하게 넘겼지만 <어쩌면 해피엔딩>이 참 어려운 작품이라는 걸 다시 한번 체감했다. ‘로봇이 사랑을 느낀다’라는 비현실적인 전제를 내가 먼저 받아들이고 관객도 설득해야 하니까 말이다. 공연할 때 나름의 구체적인 이유와 타당성을 만들어두어서 이번에 바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다시 또 예전만큼의 애씀이 필요했다. 또 뮤지컬에서는 노래의 힘을 크게 빌릴 수 있는데 영화에서는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다 보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면이 있었다.

- 제주에서 클레어가 염원하던 반딧불이를 함께 보면서 서로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확인한다.

식물이 가득한 수목원에 직접 들어가서 찍으니 확실히 몰입이 잘됐다. 혜인 배우와 나도 그만큼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따뜻한 실내라는 점이었다. (웃음) 겨울에 촬영해 야외 신들이 쉽지 않았다. 영하 십몇도까지 떨어진 날에 올리버가 고장난 차를 미는 신이 있었는데 눈물이 날 만큼 추웠다. 특히 올리버의 둥근 손가락을 표현하기 위해 씌워진 실리콘의 감촉! 떼면 굳어져버려 계속 끼고 있었는데 아찔하게 차가웠다.

- <나의 방 안에> 시퀀스에서는 고서적과 LP판, 앤티크한 가구 등으로 채워진 올리버의 방을 구석구석 비춘다. 올리버의 아날로그적인 취향을 단번에 알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세트를 보자마자 내가 생각해왔던 실제 올리버의 방과 흡사해 기분이 좋았다. 찍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무대에서의 <나의 방 안에>가 많이 떠올랐다. 그때의 것을 얼마만큼 가져오고 무엇을 뺄지를 고민했다. 사실 이러한 고민은 작품 내내 이어졌다. 한 공연을 몇십번 올리면 내 몸에 축적되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 느낌은 살리되 디테일한 부분들은 거의 바꿨다. 무대의 동선과 표현법이 영화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니까. 카메라 앞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위해 좀더 작게 움직이고 연기할 필요가 있었다.

- 이 시퀀스에서 “나의 방 안엔 날 즐겁게 하는 걸로 가득 차 있어”라고 말하는 올리버를 보면서 궁금해졌다. 실제 집은 어떻게 꾸몄나.

올리버의 방처럼 전체적으론 우디 톤인데 공간별로 분위기가 극과 극이다. 서재는 맥시멀하다. 그동안 했던 작품들의 대본, 취향인 소설과 인문학 책들로 꽉꽉 채웠고, 책상에는 컴퓨터와 프린터, 각종 필기용품이, 바닥에는 러그까지 깔았다. 내가 자주 쓰고 익숙한 것들이 손에 닿을 거리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공부도, 연습도 잘된다. 반면에 거실에는 북 선반 하나만 있다. 밥 먹고 쉬는 데는 뭐 하나 걸리는 것 없이 깔끔하길 원했다.

- 영화 취향도 궁금하다. 영화도 뮤지컬 장르를 즐겨 보는 편인가.

고어나 호러 빼고 다 잘 본다. 그런데 <서브스턴스> <미드소마> 다 재밌게 보긴 했다. (웃음) 쉴 땐 극장에 자주 가는 편인데 연희동의 라이카시네마를 좋아한다. 거기서 본 <애프터썬>이 기억에 남는다. 시간나는 대로 연상호 감독님의 신작 <얼굴>을 보러 가려 한다.

- 올해도 무대와 스크린을 부지런히 오갔다. 더 보여줄 작품이 있다면.

11월5일부터 플러스씨어터에서 열리는 뮤지컬 <난쟁이들>에 출연한다. 올해 이 작품이 10주년이 되었고 내 데뷔작이라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내년 초엔 앨범을 낼 계획도 있다. 뮤지션들과 함께 만드는 밴드 음악이고 작사와 작곡을 직접 해서 평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곡 안에 담았다. 그리고 이제 추워질 일만 남았는데, 12월에 내 생일(12월1일)이 있다. 그래서 겨울은 항상 내게 좋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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