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맞아 천국은 거의 개점휴업 상태인 반면 지옥은 난민수용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붐빈다. 따분한 천국에 모처럼 한 건의 기도가 올라온다. 어미를 등지고 권투선수가 된 아들의 영혼을 구해달라는 기도다. 천국은 이 어린 양을 구하기 위해 당장 천국 최고의 인기가수인 천사 롤라(빅토리아 아브릴)를 파견한다. 그러나 이걸 그냥 내버려둔다면 지옥이란 있을 필요가 없다. 지옥은 이를 방해하기 위해 가장 섹시한 요원 카르멘(페넬로페 크루즈)을 급파한다. 천국과 지옥이 지상의 존재를 두고 경쟁한다는 설정이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천국을 약간 고급스런 클럽으로, 지옥을 좀 지저분한 대중 술집 정도로 묘사한 것도 독특한 발상이다.선한 의도의 화신인 천사와 악한 의도의 결정체인 악마가 선악의 이분법에 따라 갈리는 대신 자유의지에 따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결말 또한 경쾌하다. 한 여성의 처절한 인생역정을 담은 〈글로리아 두케〉(1995)로 데뷔해 이목을 끌었던 스페인 감독 어거스틴 디아즈 야네스의 두 번째 작품. 28일 개봉. 이상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