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30회(2025) > 2025 부산국제영화제
BIFF #4호 [스페셜] 동시대 시네마의 역설, 자파르 파나히

<그저 사고였을 뿐>

202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에게 수여됐다는 영화적 사건은, 단지 한 예술가가 이룬 미학적 성취를 조명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칸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베니스영화제에 이르는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의 영예를 안는 동안, 감독은 15년간 이란으로부터 법적 제제를 받아왔다. 그렇기에 감독의 영화는 치안적인 것을 분열시키는 정치적인 표현으로 간주되곤 했다. 영화감독을 향한 뼈아픈 박해는 역설적이게도 영화사에 찬란한 흔적을 남겨왔다. 대표적으로 나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프리츠 랑, 2차세계대전을 겪으며 멕시코로 망명한 루이스 부뉴엘을 언급할 수 있다. 동시대 감독으로는 태국 정권의 끊이지 않는 검열에 저항하기 위해, 검은 화면을 영사하거나 자국에서 장편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을 떠올릴 수 있다.

자파르 파나히의 여정은 이들과는 식별되는 것인데, 그는 영화를 찍을 수 없는 상황에도 이란에서 영화를 줄곧 만들어왔다. 그의 영화는 가혹한 현실 아래에서도, 동시대 시네마의 성립 가능성에 대해 멈추지 않고 증명해왔다. 다시 말해, 그의 영화는 이란을 한사코 떠나지 않으면서 이란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는 픽션이자 다큐멘터리이며, 갱신되는 역사이다. 자파르 파나히는 비교적 자유로운 창작여건 아래에서도 시네마의 종말을 부르짖는 우리에게, 새로운 형식의 시네마를 계속해서 발표해오고 있다. 영화가 도무지 성립할 수 없는 이란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동시대 영화의 미학적 최전선이 첨예하게 형성되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하게 억압받는 영화감독이자, 가장 자유롭고 창발적인 예술가, 그는 12번째 장편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을 연출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화제작 중 하나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되어 한국을 찾은 파나히 감독은 37시간째 깨어있을 정도로 강행군의 일정을 소화했다. 영화의 존재론에 대해 끊임없이 탐문해온 감독의 섬세한 고백을 들을 수 있었던 마스터 클래스 <자파르 파나히, 스토리텔링의 힘>의 내용을 축약해 전한다.

- 당신은 여전히 인류를 향한 공감을 느끼고 있는가.

나는 스스로를 ‘사회적 사상가’로 지칭한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로부터 영감을 받는다는 뜻이다. 나의 영화는 내가 사는 곳과 그곳의 역사, 그리고 내 삶에 영향을 받는다. 처음 만들었던 5분짜리 영화에서부터 지금까지, 내 상황이 바뀔 때마다 나의 영화들도 변화를 겪었다. 영화 제작을 금지당하면서,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보다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게 됐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 영화를 만들지 말해준다. 이것이 내가 항상 생각하는 섭리이다.

- 이란 영화와 이란 영화가 겪고 있는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나.

나는 이란 영화가 가지는 두 가지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관객을 따라가는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관객이 감독을 따라는 영화이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혁명 이후, 상업영화는 계속되어왔지만, 그와 별개로 독립영화는 늘 검열과 억압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들은 새로운 언어와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이란 영화의 독창적인 미학과 고유한 언어는 여기서 탄생했다. 지금 이란의 상황을 말해 보자면, 너무나 심각해서 비밀리에 만들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택시>

-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아시다시피, 나는 집안에서 처음 영화를 찍었고, 이후에는 보안 때문에 택시 안에 카메라를 설치해 영화를 찍었다(<택시>). 그런가 하면 내가 현장을 갈 수 없을 때는, 원격으로 완성하기도 했다(<노 베어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떤 독재자도 감독에게 ‘영화를 만들지 말라’는 명령을 할 수 없다. 감독은 ‘진실을 말하는 자’이다. 해답을 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거짓 없이 현실을 정직하게 재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권력과 충돌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영화를 막으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독립영화 감독의 삶이다.

-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해 여쭙고 싶다. 가령, 스토리와 플롯을 설계하는 방식과 각본을 쓸 때 특히 어려웠던 장면이나 부분이 있는지.

글을 쓰는 방식은 매번 달라진다. 하지만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좋은 시작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 좋은 결말에 대해 생각한다. 시작이 좋다면, 관객을 영화 끝까지 따라오게 할 수 있다. 또한, 좋은 결말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끔 한다. 이것이 좋은 영화였는지 말이다.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도 그 결말을 생각하고 있다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 <그저 사고였을 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

내가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당시만 해도, 그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7개월간 그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것이었다. 출소해서 문을 나선 직후, 뒤돌아 감옥을 보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점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몇 달 후 이 감정에 대해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니까, 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 영화는 수감자들이 겪었던 고문을 이야기한다.

보시다시피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가 시작된다.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저리다. 감옥 안에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겪었던 것은 바로 ‘심문’이었다. 모두가 심문을 받았다. 우리는 눈을 가린 채 벽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눈이 가려진 상태에서 아래로 겨우 보이는 작은 틈으로 질문을 보며 답을 써 내려갔다. 우리 모두가 겪은 일이다. 그 순간엔 오감이 다 사라지고, 청각만 남는다.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없었고, 소리로만 대상을 느껴야 했다. ‘그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밖에서 만나면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했었기에, 소리로 영화를 시작해야겠다 생각했다.

- 엔딩 시퀀스에 등장하는 삐걱대는 의족 소리는 어떻게 해서 넣게 되셨나. 그리고 가해자 에크발은 처음에는 죽지 않을 거라 확신하지만, 후반부에는 위협을 느끼고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런 질문들이 관객들로부터 생겨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관객은 혼란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사운드에 대해서는 실제와 상상의 구분선을 모호하게 만들고자 했다. 믹싱할 때도 테크니션에게 계속 강조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소리를 만들어 달라고. 예컨대, 에크발의 것과 비슷한 색의 차량이 프레임인 하도록 하면서, 사운드를 진짜처럼 느끼게 했다. 이런 작은 영화적 장치들로 인해, 관객은 바히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끝까지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 정치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사이의 균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예술적인 방식을 선택할 뿐이다. 어떤 주제를 이야기하든, 내 생각을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영화에 대해 법에 대한 것인지, 정의에 대한 것인지 묻는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명확하다. ‘이 폭력은 계속되어야만 하는가. 언젠가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