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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렇게나 소중했던 우리, <은중과 상연> 배우 김고은, 박지현
이자연 2025-09-25

- 영화 <인어 공주> <아내가 결혼했다>,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를 작업한 송혜진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대본 단계의 <은중과 상연>은 어땠나.

김고은 처음 대본으로 4부까지 받아봤다. 사실 당시에는 한창 강렬한 무드의 작품을 하고 싶을 때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다음 5부가 내 손에 없나 싶어 너무 답답했다. (웃음) 이렇게 호소하는 나를 보면서 ‘아, 이 작품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박지현 대본이 단숨에 후루룩 읽혔다. 그리고 내내 울면서 봤다. 상연의 감정이 너무 잘 느껴졌던 것 같다. 나도 고은 언니처럼 다음 화를 빨리 보기만을 기다렸다.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가기

- <은중과 상연>을 준비하는 동안, 두 인물을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김고은 은중과 상연의 관계에 쌓여가는 서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끝을 향해가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모든 과정이 착착 쌓여가야만 했다.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레이어가 있어야만 시청자도 납득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은중은 개인의 캐릭터성이 강하기보다는 현실에 발 붙이고 사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캐릭터의 표현, 캐릭터의 특징에 몰두하기보다는 다양한 관계 내에서 은중의 감정을 어떻게 하면 더 조심스럽고 촘촘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박지현 미래를 다 아는 상태로 연기를 하기 때문에 가끔은 다음 감정을 미리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상연이의 현재 상황과 지금의 감정을 중요하게 보여주고 싶았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사실을 최대한 배제하고 매 순간의 정서와 상황에 몰두했다. 그냥 상대방만 바라보면서 나아갔다.

- 은중과 상연이 10년 만에 만난 장면으로 돌아가보자. 암 말기라는 상연의 고백이 이어지면서 시청자는 이 이야기의 가장 큰 굴곡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박지현 촬영 때에는 행운이다 싶게 시간 순서대로 진행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순차적으로. 그래서 사건이나 관계에 집중하기가 오히려 편했다.

김고은 사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에는 40대를 먼저 찍게 되면 어떡하지, 나중에 연결이 될까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은중과 상연>은 시청자들도 함께 견뎌주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 둘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함께 견뎌주는 이야기랄까. 그런데 인물들이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은 채 무작정 10대부터 40대까지 보여주면 오히려 헐렁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서 40대의 한 장면, 상연이 은중을 찾아온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그 뒤에 순차적으로 사건을 보여주는 게 적합했던 것 같다.

- 초반에는 10대 아역인 도영서 배우가 은중을, 박서경 배우가 상연을 맡아 관계적 히스토리를 탄탄하게 이끌어간다. 성인이 된 은중과 상연이 어릴 적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도 작품의 중대한 미션이다. 실제로 아역과 성인 역이 나뉘는 경우, 아역의 연기를 미리 보거나 참고하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지만 또 미세하게 달라진 지점들을 어떤 식으로 상상하려 했나.

김고은 10대에는 초등학교 분량과 중학교 분량이 있는데 초등학교 신을 먼저 찍고 중학교 신은 오히려 모든 성인 분량을 마무리한 뒤 마지막에 찍었다. 이 나이대 성장 속도가 어제오늘 다르기 때문에 조금 더 자란 뒤의 모습을 담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아역배우의 촬영 분량을 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꼭 봐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모든 인물의 감정이 대본에 그대로 나와 있고 그 안에서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코어 감정을 맞추고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여백이 크게 우려되진 않았다.

박지현 사실 아역배우들은 촬영장에서는 잘 못 보고 뒤풀이에서 만났다. 아, 한번 본 적 있다. 박서경 배우가 현장에서 나를 기다려줘서. (웃음) 내가 봐도 진짜 상연이 같았다.

- 시리즈를 보다 보면 어느덧 은중도 상연도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있다. (웃음) 은중은 너무 해맑게 눈치 없고, 상연은 해야 하는 말마저 아낀다. 감정적으로 캐릭터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을 텐데.

박지현 오히려 두 인물이 다 이해돼서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작품에 악역이 없다. 돌이켜보면 세상살이가 그렇다. 사람들 모두 이타적일 때도 있지만 이기적인 순간도 있고, 오해가 쌓이면서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발생하는 당연한 일들이다. 은중과 상연을 두고 딱 누구 하나만 응원하게 되진 않는다. 상연이 되었을 때에는 그런 생각도 했다. 사실은 상연도 알고 있었구나. 본인의 행동이 그릇됐다는 것을. 미움받을 걸 알면서도 솔직해지지 못한 순간들이 상연에게도 온 것 같다.

김고은 이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은중과 상연, 둘 중 누구에게도 치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 다 이해할 수 없고 둘 다 이해되는 게 <은중과 상연>의 가장 이상적인 결과일 것 같다. 둘을 바꿔서 생각하면 은중은 상연도 될 수 있고, 상연도 은중이 될 수 있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하면서 나 자신을 정말 많이 돌아봤다. 은중이 아니라 김고은이었다면 은중이나 상연과 크게 달랐을까? 어떻게 하면 나의 마음을 더 잘 다스릴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건 넸다.

- 그런 질문 끝에 무엇을 느꼈나.

김고은 관계의 갈등은 결국 나의 기대치에서 비롯한다는 것. 내가 타인의 감정이나 반응을 바랐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갈등이 발생하는 듯하다. 그래서 관계란 무엇인가를 정말 많이 생각하게 됐다. 내 기준에 상대방이 응해주면 그건 좋은 관계일까. 합해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뒤틀릴 일일까. <은중과 상연>은 한 사람을 온전히 받아주는 이야기로 향해간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삶에서 흔하게 겪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어려운 것을 한번이라도 해보는 것도 기적이고. 건강한 관계를 계속 고민했다.

그렇게나 소중했던 우리

- 1화에서부터 조력 사망이라는 소재를 언급하기 때문에 이 작품이 언젠가 죽음으로 인한 감정적 폭발, 확장을 다룰 거란 걸 알게 된다. 실제로 <은중과 상연>의 감정선은 어떤 방식으로 넓혀졌다고 생각하나.

박지현 내가 상연이 되어 연기를 할 때 상연을 자꾸만 제3자로서 바라보았다. 상연이 너무 안타깝고 슬퍼서 계속 눈물이 나더라. 그게 연기적으로 많이 어려웠다. 상연은 자신의 상황 속에서 차분하고 담담해야 하는데… 덜어냄의 미학이랄까. 슬픔을 절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크게 배웠다. 그때 나의 부족함을 많이 느 꼈다.

김고은 상연이 존엄사의 당사자라면 은중은 남겨진 사람이다. 그러니 <은중과 상연>은 남아 있는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실 속 은중 같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 그것을 계속 상상했다. 동행한 후 혼자 돌아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렇지만 이건 아마도 은중에게 정말 소중한 기회였을 것 같다. 상연이 원하는 모습으로 작별할 수 있는 기회. 상연이 처음으로 이 제안을 말할 때 “여행 가자”고 표현한다. 그래서일까. 둘이 여행 가듯 향한 스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울고불고 쏟아내면 쉽다. 감정대로 하면 되니까. 그런데 상연을 위해 은중은 계속 견뎌준다. 그것들이 마음속에서 너무 무거웠다.

-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의 이해> 등 감정과 서사를 유려하게 엮어온 조영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어떤 유형의 디렉터였나.

박지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후 두 번째 작품을 함께했다. 조영민 감독님은 감정선이나 인간관계를 다룰 때 찰나의 눈빛, 짧은 호흡까지도 섬세하게 반응하고 담아낸다. 그런데 내가 그런 지점을 무척 좋아한다. 알고보니 MBTI가 나와 같은 INFP였다. (웃음) 또 지금까지 한번도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다.

김고은 맞다. 조영민 감독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부드러움’이다. 성향이 부드러우면서 현장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현이 말처럼 그 안에 냉철한 카리스마가 있는데 절대 권위의식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감독님이 필요한 것을 판단하고 하나하나 헤쳐나가는 힘이 대단하다.

- 힘들수록 힘든 티를 내지 않는 상연은 일부러 자신의 감정의 반대쪽으로 향하는 사람이다. 그런 상연이 오빠의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죄책감을 고백하는 순간은 엄마와 오랫동안 묵인하고 회피했던 것을 들추는 시간이기도 하다. 엄마 역을 맡은 서정연 배우와 감정적으로 내밀하게 맞닿는 장면이었다.

박지현 정연 선배님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후 두 번째 인연이다. 이제는 내 얼굴이나 표정만 보고도 나의 상태를 알아주신다. 진심 죄책감을 품어왔다. 그래서 엄마에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소리친다. 엄마의 진심을 듣고 난 후에야 그간 왜 말을 안 해주었냐고 묻는데, “나도 살아야지! 그래야 나도 살 거 아니야!”라고 하는 말이 상연의 서글픈 고백 같았다. 화를 내고 소리를 치지만 오히려 엄마에게 손을 내미는 느낌이랄까. 꾹꾹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는 순간 상연도 나도 깨달았다. 왜 이렇게까지 닫고 지냈을까. 이렇게 열릴 수도 있는 것인데.

- 최근 2~3년 내 시리즈 시장은 보통 6~8부, 길어야 12부인데 <은중과 상연>은 넉넉한 15부다. 질투인데 사실은 기다림 같고, 분노인데 사랑 같은 복잡다단한 감정을 건드리기에 15부는 충분한 이해의 시간을 준다.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들을 깊이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생략되는 것들이 많았던 점과 비교하면 긴 호흡의 분량이 배우에겐 반가울 것 같은데.

김고은 에이~ 오히려 힘들지. (푸하하! 옆을 보며) 반가웠어?

박지현 (웃음) 같은 15부작이어도 짧은 기간의 이야기를 담는 작품이 있는 반면 <은중과 상 연>은 10대부터 40대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터라 그게 어렵게 느껴졌다. 근데 그게 또 그렇게 설렜다. 20대부터 40대까지의 얼굴과 표정을 그려보는 게. 뿌듯함도 컸다.

김고은 맞다.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다는 게 배우로서 매우 중요한 기회다.

- 마지막으로 <은중과 상연> 안으로 들어가 상상해보자. 내 오랜 친구가 상연과 같은 부탁을 한다면 들어주고 싶은지.

김고은 아우~ 너무 슬프게 왜 그런 상상을 해! 그래도 가야지 어떡해. 그렇게 소중한데….

박지현 나도 꼭 동행할 것 같다. 그 뒤가 너무 슬플 것 같지만 그 슬픔도 내가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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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