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특집] 와이즈먼, 예술, 지역사회 - 그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몬로비아, 인디애나>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장구하고도 일관된 다큐멘터리 제작 실천이 낳은 45편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티티컷 풍자극> (1967), <고등학교>(1968), <법과 질서>(1969), <병원>(1970)과 같은 초기작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이 작품들이 ‘디렉트 시네마’라는 1960년대 미국 다큐멘터리영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시하는 것으로 수용되었고, 교육, 치안, 치료, 교정을 실행하는 제도의 역학과 그 속에서 훈육되는 개인에 대한 관심이 와이즈먼의 논픽션 작업에 대한 작가적 일관성을 보증했기 때문이다.

제도에 대한 와이즈먼의 다큐멘터리영화는 ‘장치(dispositif)에 대한 영화장치(cinematic apparatus)의 작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 앞에서의 장치는 미셸 푸코와 질 들뢰즈, 조르조 아감벤의 사유를 경유하자면 “생명체의 몸짓, 행동, 의견 또는 담론을 포획, 지도하고, 규정하고, 차단하고, 만들고, 제어하고, 보장하는 능력을 가진 모든 것”(조르조 아감벤, <장치란 무엇인가>)이다. 장치는 언어, 글쓰기, 문학, 철학과 같은 담론의 실천뿐 아니라 컴퓨터와 스마트폰,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 공장, 감옥, 사법 체계 등의 제도를 포함한다. 감옥과 사법 체계가 그렇듯 하나의 장치는 다른 하위 장치를 포함한다. 초기 작품들을 포함한 와이즈먼의 많은 다큐멘터리영화가 바로 이 맞물리는 장치와 이를 구성하는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단위, 그리고 그 장치가 개인을 주체화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와이즈먼의 카메라와 사운드 녹음 장치는 장치의 역학에 동기화되어 체계적으로 배치되고, 장치의 작동 과정과 그 장치가 개인에게 미치는 물리적, 심리적 영향력을 스크린의 표면에 현실화하는 방식으로 편집된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6~8주간의 촬영 기간 중 현장에서의 경험과 6개월~1년 동안의 편집 기간 중 촬영본 검토에서 탄생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와이즈먼의 영화장치가 접근하는 장치는 특정한 국가적, 교육적, 행정적 제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신의 작업을 해마다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 성인 교육 과정에 비유한 바 있는 와이즈먼의 렌즈는 1980년대부터 예술과 지역사회라는 두 영역에 눈에 띄게 초점을 맞추어왔다.

와이즈먼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둔 예술은 무용과 연극, 즉 신체의 훈련과 수행을 포함하는 예술이다. 이같은 관심은 와이즈먼의 잘 알려진 초기 작품에서 파생했다. 와이즈먼의 영화를 포괄적으로 연구한 배리 키스 그랜트가 말하듯 “퍼포먼스라는 이슈는 와이즈먼의 모든 영화에서 부상한다”. <티티컷 풍자극>의 도입부에서 재소자로 구성된 합창단의 노래와 춤 공연을 멀리서 프레이밍하여 개별 단원들의 얼굴로 연속하여 근접하는 카메라는 브리지워터 주립병원 정신질환 범죄자 수용소를 신체의 발작과 통제, 억압과 방치가 전개되는 하나의 사회적 무대처럼 다룬다. 예술을 문학, 음악 등 규범화된 장르가 아니라 신체의 퍼포먼스로 간주한다면, 와이즈먼의 영화는 제도로서의 특정 장치 내에서 기예로서의 몸짓과 동작을 연마하는 신체, 그리고 그 신체에 적용되는 훈련의 반복과 변주 과정 자체를 체화한 영화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기초 군사 훈련>(1971)에서 교관의 구령에 따라 사격과 제식훈련을 수행하는 군인들의 신체를 다양한 거리에서 포착하는 와이즈먼의 카메라는 링 위에서의 연습과 웨이트트레이닝을 신체의 신장을 고려하여 기록하면서도 주먹과 발의 디테일을 추적하는 <복싱 체육관>(2010)의 카메라로 변주된다.

대학 시절부터 무용과 연극에 관심을 가졌고, 2006년 사뮈엘 베케트의 <오 행복한 날들>(1961)의 파리 공연을 비롯한 몇편의 연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춤영화(dance film)라 불릴 만한 와이즈먼의 첫 작품인 <발레>(1995)는 1994년 유럽 순회 방문을 준비하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연습 및 리허설 과정과 실제 공연을 기록한다. 와이즈먼의 촬영과 편집은 무용수의 몸짓과 동작을 단편화하지 않고 관객의 반응숏을 삽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극영화에서 퍼포먼스를 다루는 방식과는 분명히 거리를 둔다. 충분한 지속 시간을 투여하는 거리를 둔 롱테이크는 연습 장면에서는 안무가의 지도와 무용수의 반복적 실행이 이루어지는 연습실의 공간을, 실제 공연 장면에서는 객석에서는 불가능한 무대 위에서의 시점을 프레이밍한다. 연습과 실제 공연 사이에는 연출의 방향에 대한 토론, 순회 공연에 소요되는 비용과 물류에 대한 논의 등 제도로서의 공연예술에 대한 와이즈먼 특유의 세심한 관찰이 삽입된다. 이처럼 인접 예술의 형식적, 미적, 기술적 요소를 포용하면서도 그에 동화되지 않고 영화적으로 접근하는 와이즈먼의 철학은 연극을 다룬 <마지막 편지>(2002)와 <부부>(2022)에서도 적용되었다. 바실리 세메노비치 그로스만의 소설 <삶과 운명>에 수록된 한장을 각색한 <마지막 편지>는 코메디 프랑세즈의 배우 카트린 사미의 독백과 몸짓뿐 아니라 그의 그림자에 주목한다. 사미의 클로즈업과 교차하는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는 연극의 기록으로 환원될 수 없는 표현주의 영화의 전통을 재생한다. 또 다른 독백극으로 레프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의 일기와 편지를 각색한 <부부>에서도 브르타뉴 남쪽 해안의 섬 벨일앙메르의 자연 풍경을 기록한 숏은 영화적 독특성을 인증한다.

특정 기관과 장소에 대한 와이즈먼의 인류학적 고찰은 지역사회라는 커다란 범주에 속하는 일련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2017)와 <시티 홀>(2020)이 뉴욕과 보스턴이라는 메트로폴리스의 시민들과 밀접히 연결된 문화적, 행정적 기관의 하위 조직과 구성원들의 역할에 대한 시청각적 다이어그램이라면, 이번에 처음 한국에서 상영되는 <센트럴 파크>(1990)는 어느 여름날 대규모의 공원을 각자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시민들과 이 공원의 관리 및 유지 보수, 미래 정책에 관여하는 인력에 대한 역동적 지도다. 이 다이어그램과 지도는 미국 지역사회의 문화적, 정치적 근간인 다양성을 표현하는 몽타주로 펼쳐진다. 뉴욕 퀸스의 다인종적 지역에 거주하는 무슬림 및 유대인 등 이민자 공동체와 LGBTQ 구성원들을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면서 이들의 시민운동과 조직에 대한 교차적인 조감도를 제시하는 <잭슨 하이츠에서>(2015)가 입증하듯 말이다. 다양성의 다이어그램과 지도를 조립하는 몽타주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와 <시티 홀>에서 하나의 건축물을 구성하는 많은 사무실과 공공 공간의 디테일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수준을 넘어선다.

다양성은 대도시 공동체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갈등을 소거한 포용주의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19세기 은 채굴의 중심지였고 현재는 스키와 절경으로 알려진 콜로라도 로키산맥의 한 휴양 도시를 기록한 <애스펀>(1991)은 교회의 종소리로 시작하여 긴 예배 시퀀스로 마무리함으로써 물질주의와 종교간의 오랜 긴장을 암시한다. 와이즈먼의 영화 중 표면상 가장 관조적인 <몬로비아, 인디애나>(2018)는 밀 농사와 가축 사육 및 육가공 등 일상적 활동에 종사하며 차분한 톤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시민들이 주도하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초상화만을 그리지 않는다. 미국 미드웨스트 지역사회의 전형과도 같은 전원적인 시골 마을의 표면에는 유색인종의 부재, 자연스러운 총기 소지, 토지 개발과 전통간의 어색한 공존 등이 현상된다. 와이즈먼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65%의 유권자가 트럼프를 지지한 이 마을에 대한 시청각적 탐구가 “명시적으로 정치적이지는 않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 마을이 “미국적 삶의 근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암시적으로 정치적”임을 밝힌 바 있다. 와이즈먼 스스로가 수동성의 함의를 이유로 사용하기를 꺼려하는 용어인 ‘관찰’의 다큐멘터리로 보통 수용되는 그의 논픽션 실천에 내재된 정치적 역량은 부분과 전체, 다양성과 이질성간의 협상 과정에서 그가 영화장치에 적용하는 선택과 배열을 통해 발현된다. 공동체는 그 역량이 잘 적용되어온 주제다. 그 역량은 영화에 고유한 발견과 종합의 역량이기도 하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