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이하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디아스포라영화제 등 개봉 전 국내외 다양한 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다녀왔다. 기억에 남는 순간을 들려준다면.
김현목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서의 상황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내게도 첫 관람이었는데, 해외 관객 사이에 앉아 주변의 리액션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다 같이 모여 함께 놀았던 시간도 정말 즐거웠다.
조유현 전주영화제가 한국 관객들에게 처음 영화를 선보이는 자리였는데 엄청 긴장이 됐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해외 관객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는데 한국 관객은 영화를 진중하게 보는 편이지 않나. 상대적으로 조용한 영화관에서 주눅이 들었고 사람들이 재밌게 봤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GV 때 인사를 하다 블랙아웃이 왔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선 몇초 정도 할 말을 잊었다가 긴장하지 않은 척 “죄송합니다!” 하고 말을 이어갔다.
김현목 GV 끝나고 바로 놀렸다. (조유현 배우의 어깨를 붙잡으며) “어? 죄송합니다~”, 같이 밥 먹다가도 “어! 죄송합니다” 하면서.
박준호 배우들이 말한 대로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전주영화제에서 국내외 관객이 상당히 좋게 봐주셔서 기뻤다. <3670>이 당사자성이 강한 영화다보니 퀴어 당사자의 반응이 궁금했다. 지난 7월에 열린 썸머프라이드시네마2025에서 운 좋게 영화를 좋아하는 퀴어 관객을 다수 만났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잘 가닿고 있구나 싶어 이후로는 영화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지낸다.
- <3670>은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가.
박준호 무척 오래된 아이템이다. 2017년에 쓴 <철준>(가제)이라는 단편영화의 초고에서 시작했다. 당시엔 탈북자에 관한 세편의 단편을 엮어서 옴니버스영화를 만들 계획이었다. 시나리오는 나왔지만 게이 커뮤니티를 직접적으로 가시화하는 작품이고, 등장인물도 많아 고생스러울 게 뻔했다. 그래서 묵혀뒀다 내 아이템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시점에 장편화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작품에는 예전에 3년 정도 탈북자를 상대로 자원봉사를 했던 경험이 반영됐다. 기존 매체에서 묘사한 탈북자는 대체로 천편일률적이다. 북한에서의 삶, 탈북하는 과정만 강조해 비극적으로 묘사하는 게 매번 아쉬웠다. 내가 만난 탈북자들은 저마다의 삶의 모습이 있고 당찬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유형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싶어 철준을 주인공으로 세웠고, 그가 남한에서 적응해가는 과정을 게이 커뮤니티와 엮어 보여주려고 했다. 한국은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성소수자를 환영하지 않지만 놀랍게도 그런 환경 속에서 게이 커뮤니티는 자신들의 문화를 역동적으로 만들어간다. 그게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서 영화로 기록해보고 싶었다.
- 조유현, 김현목 배우는 어떤 계기로 작품에 합류했나.
조유현 감독님이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의 ‘배우 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에서의 내 영상을 보고 연락을 주셨다. 대본을 미리 보내주셨는데 발췌 대본이 아니라 전체 대본이라 ‘혹시 내가 철준인가’ 싶었다. 다 읽고 나니 철준을 꼭 하고 싶었다. 철준의 이미지가 나와 부합했고, 서사에 공감이 됐다. 기회를 잘 잡겠다 결심하고 오디션장에 갔는데 정작 나오면서 든 생각은 ‘망했다’였다.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았고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찼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캐스팅 발표도 늦어서 떨어졌나보다 했는데 감독님이 직접 전화를 주셔서 “제가요?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웃음)
김현목 나도 감독님이 먼저 연락을 주셔서 미팅을 가졌다. 술에 취한 영준이가 철준이를 데려다주며 “다음에 또 놀자”라고 말하는 장면을 미팅 자리에서 몇 차례 리딩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영준이가 밝아 보여도 그리 밝지 않은 복합적인 캐릭터라는 점이었다. 배우로서 단편적이지 않은, 다양한 서사로 풀어낼 인물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아 어떻게든 잘해보고 싶었다. 난 유현이와 다르게 나오면서 ‘아, 됐다’ 싶었다. (웃음) 왠지 모르게 리딩 자리가 편했고 감독님의 표정을 보면서 이야기를 잘 끝냈다고 판단했다.
- 어떤 점에서 철준, 영준 역에 조유현, 김현목 배우가 어울릴 것이라 판단했나.
박준호 철준 역을 캐스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신은 첫째로 교회 간증 신이었다. 간증문을 읽을 때 설득이 되지 않는다면 이 캐릭터가 무너진다고 봤다. 둘째로 클럽 신에서 상의 탈의를 할 때 우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철준이 볼품없으면 이 영화는 제대로 성립하지 않는다. 조유현 배우가 간증 신을 워낙 잘해줬다. 내가 쓴 글임에도 귀 기울여 듣게 된 건 오디션에서 그때가 유일했다. 게다가 철준이가 쓰는 버건디 색 모자를 직접 가져와 착용한 모습을 보여주고, 영화의 중요한 요소인 <회전목마> 노래를 들으면서 왔다고 말하는 걸 보며 착실한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 김현목 배우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사실 미팅이 성사될 줄 몰랐다. 독립 장편은 더 이상 안 한다는 회신이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연락이 왔고, 리딩할 때도 캐릭터와 잘 어울렸다. 내가 느낀 만족스러움이 표정으로 티가 났었나보다. (웃음)
- 영준은 철준에 비해 삶의 배경이나 속내가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쉽게 진심을 꺼내 보이지 않는 영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연기했나.
김현목 대본을 처음 봤을 때 가장 와닿은 장면은 편의점에서 철준을 만났을 때 영준이 둘의 공통요소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구간이었다. 같은 동네고, 동갑이고, 피우는 담배도 같고, 둘 다 교회 다닌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 장면이 왜 마음에 남았을까, 영준이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생각해봤는데 사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외로움은 무서움에서 비롯되곤 하지 않나. 그래서 영준이는 커뮤니티에 잘 적응하고 있음에도 계속 어디엔가 속하고 싶어서 철준이와 동질감을 느낄 요소를 찾으려고 한 거라 여겼다. 배우로선 그런 영준이가 안타까웠다. 기준을 외부에 두면 사람이 피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는 게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영준이가 느끼는 감정들, 그의 과감한 선택까지 응원했다.
조유현 철준은 탈북한 뒤 문제없이 잘 지내는 인물이다. 그런데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소수자라는 프레임으로 인해 철준의 외로움에만 집중했다. 그러니 오히려 공감이 안 가더라. 그래서 나와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때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더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하지 않나.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철준에겐 그런 시도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영준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됐다고 받아들였다.
- 철준에겐 북한 사투리의 억양이 남아 있고 영준이는 상황에 따라 말투가 조금씩 달라진다. 준비 과정을 들려준다면.
조유현 전문 선생님에게 2~3번 레슨을 받았다. 철준은 남한으로 넘어온 지 7년 정도 됐다는 설정인데 그 정도로 오래 있었으면 북한 사투리를 최대한 고치려고 노력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뀐 와중에도 조금씩 사투리가 묻어나오는 말투를 고심했다. 그 밖에 지인을 통해 함경북도 청진에서 온 분을 소개받았다. 그분이 대사를 읽어주는 걸 녹음해서 들으며 연습했고 실제 북한에서의 성소수자와 관련된 이야기 등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김현목 영준이의 말투는 철준과 둘이 있을 때,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달라진다. 둘이 있을 땐 편하게 말하는 반면에 못 볼 꼴 다 본 친구들 앞에선 센 척을 한다. 나름대로 그룹을 대하고 구분하는 기준이었던 듯한데 그 차이를 잘 드러내고자 했다.
- 철준과 영준이 대화를 나눌 때 특히 롱테이크를 자주 사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박준호 클럽이나 술집 신에선 컷을 분절해 긴박하고 리드미컬한 분위기를 가져갔다. 반면 철준과 영준이 있을 때는 카메라를 고정한 채 롱테이크로 촬영하는데 이를 통해 둘의 안정되어가는 관계를 차분히 지켜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관객이 둘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하고 싶었다.
- 영화에 등장한 술집과 클럽은 전부 실제 로케이션이다. 섭외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됐다고.
박준호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염두에 둔 공간들인데 영화제작이 확정되자마자 연락을 돌렸다. 놀랍게도 모든 곳에서 단번에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게이 커뮤니티의 문화를 주제로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 사장님들이 거리낌이 없었고 이에 기여할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말씀하셨다. 클럽은 통통 튀고 신나는 곳이 아닌 어두운 테크노 클럽을 섭외했다. 처음이라 낯설 철준이의 모습과 잘 어울릴 것이라 판단했다.
- 클럽은 철준과 영준의 관계에 묘한 변화가 일어나며 서로의 감정을 깨닫는다는 점에서 중요한 장소다.
조유현 말한 대로 클럽에서 철준의 감정이 크게 요동친다. 영준에게 “난 네 옆에서 춤출 거야”라고 말할 때 과연 어떤 감정일지 고민이 컸다. 감독님, 동료 배우들과 미리 로케이션 답사를 갔던 게 큰 도움이 됐다.
김현목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서 철준이가 하네스를 착용하는 장면을 보면서 ‘유현이 장난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누군가 중저음으로 “워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동 웃음) 유현이가 아시안의 기개를 잘 보여줬다. 클럽 신에선 춤 때문에 큰일이다 싶었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춤출 때 손 하나를 들더라도 힙한 느낌을 주는 게 어려웠다.
조유현 근데 너 약간 엇박을 타더라. 대부분 다운 비트를 타는데.
김현목 그래 그랬더라. (멈칫하며) 알고 있었어? 그럼 알려줬어야지!
조유현 근데 원래 고수는 엇박을 타. 다 계산하고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웃음)
김현목 어디 가선 의도했다고 말해야겠다. (웃음) 춤 외에도 철준이에게 “넌 나만 따라 다니는 아기 오리 같다”고 말하는 대사를 읊는 게 중요했다. 어떻게 오글거리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클럽이라는 공간이 잘 상쇄해줬다. 왕가위 감독의 ‘스텝프린팅’ 기법의 논리를 좋아한다. 외부 요소를 흐려서 먼지처럼 만들어놓고 포커싱하고 싶은 요소를 느리게 움직여 오히려 그 부분에만 시선이 가게끔 하는 것이다. 클럽의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영준이가 소리치며 전하는 딥한 발라드 대사의 대비가 좋았다. 음악이 아기 오리 대사의 오글거림을 눌러줄 수 있는 요소가 되어주었다.
박준호 다른 작품에선 클럽 신에서 노래 볼륨을 한껏 낮추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현실적이지도 않고, 테크노음악도 따로 제작했기 때문에 좋은 음악을 묻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보통 클럽은 128BPM의 노래를 트는데 우리 음악은 150BPM이었다. 너무 빨라서 맞춰 춤추기가 쉽지 않을 듯해 배우들에게 미리 음악파일을 공유했다. 아기 오리 대사는 나로서도 고민이 많았지만 김현목 배우가 담백하게 잘 표현해줬다.
- 클럽 신 이후로 철준과 영준의 로맨스를 더 딥하게 그릴 법도 한데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철준과 영준의 로맨스 묘사보다 각자의 삶의 방향성 변화 묘사에 집중한 이유는.
박준호 많은 관객들이 아마 둘의 로맨스를 더 예상했을 것이다. <3670>은 두 사람이 손 한번 안 잡는 영화다. 둘 사이에 스킨십이 전혀 없다. 많은 퀴어영화들이 뽀뽀를 하거나 함께 밤을 보내는 모습을 연출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스킨십만이 사랑의 증명인가. 두 사람의 사랑과 스킨십은 다르게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 철준의 서사는 예상 가능하고 심플한 한편, 영준은 한국에서 평생을 산 사람으로서 이 사회의 단면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 단면엔 게이 커뮤니티도 속할 텐데, 게이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상황상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어렵다. 그런 환경에서 둘의 로맨스 라인을 예상해보니 쉽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철준은 자신이 느끼는 게 우정인지 사랑인지 헷갈렸을 것이고 자칫 고백했다 자신의 첫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영준도 철준을 친구로 옆에 두고 오래 보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여길 것 같았다.
- 철준과 영준에게 서로는 어떤 존재였을까.
조유현 감독님 말씀대로 철준은 영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우정인지 사랑인지 쉽게 정의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게 됐을 때 예전에 자신이 느꼈던 마음이 사랑이었고, 자신을 향한 영준의 마음 역시 사랑이었다고 돌이켜보게 되지 않을까. 영화에선 철준이 뒤돌아 있거나 플래시백으로만 처리돼 전달되지 못한 영준의 행동과 마음이 있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감상할 때 그 감정이 내게 전해졌고, 마음이 아 렸다.
김현목 신 순서대로 촬영을 하지 않다보니 나는 텍스트 내에서의 감정의 볼륨을 미리 정확하게 써두는 편이다. 그런데 영준이 철준에게 갖는 마음은 따로 적어두지 못한 채 계속 회차별로 진행했다. 나 역시 나중에 영화를 보며 느낀 건데 교회에서 간증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철준이와 장난치며 이야기할 때, 철준이를 쳐다보는 영준의 눈빛에서 사랑을 느꼈다. 따로 감정을 준비한 건 아니지만 관객의 시선으로 볼 때 ‘저때부터였구나’ 싶었다.
- 최종적으로 제목을 <3670>으로 결정한 이유는.
박준호 종로 3가와 이태원은 실제로 게이 커뮤니티의 주요 공간이다. 종로 3가에서 약속을 잡는 ‘3670’ 문화는 특정 그룹에서 실제로 쓰는 것인데, 영화를 준비하며 알게 된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빌려왔다. ‘3670’은 약속 장소에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는데 그 쓸쓸함이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린다고 느꼈다. 한편으론 관객들이 이 제목을 두고 장난치며 노는 것도 가능하겠다 싶었고.
-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대사를 각각 골라준다면.
박준호 철준이 친구들과 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노는 신. 초고에는 훨씬 다양한 버전이 있었다. 그런데 철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을 때 누군가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도, 육체적 관계를 갖는 것도 아닐 것 같았다. 그저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듯 친구들과 바글바글 모여 노는 상황이 가장 행복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오프닝 시퀀스와 연결지어 철준이 친구들과 같이 중국 음식을 시켜 먹는 장면을 넣었다. 그걸 볼 때마다 철준이가 행복해 보여 뿌듯하다.
조유현 후반부에 철준이가 학민(전두식), 정학(하승우)과 집에서 게임하는 장면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려다 망설이자 학민이 “알고 있다”며 “우리 다 행복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겠니. 니가 행복하면 됐다”고 말한다. 그 신이 잔상처럼 내게 남아 있다. 그 대사를 배우 조유현에게 대입해 ‘그래, 행복하려고 이 세상에 온 거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김현목 극 중 학민이가 몇살이지? 새삼 정말 어른스럽다.
조유현 실제로 학민이가 언제 눈치를 챘을지 전두식 배우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답을 내리진 못했다.
김현목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영준이 철준이 노트북을 빼앗아 그의 자기소개를 대신 읽을 때다. 영준의 목소리는 내레이션으로 들려오고 내레이션의 내용에 해당하는 이미지가 몽타주컷으로 들어간다. 철준이 살아온 삶이 묘하게 영준의 자기소개처럼 겹치는 그 순간이 뭉클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과정에서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한다.
박준호 유머로 하나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대사가 있다. 후반부에서 철준이 새로운 모임에 나갔을 때 새 방장이 와서 “보드게임 모임의 정모에 세번 이상 나오시면 정회원이 되니까 자주 나오세요”라고 말한다. 철준이가 보드게임 모임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너무 넣고 싶어서 공들여 쓴 대사다. 그 대사를 하는 배우에게도 발음을 정확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심지어 처음엔 영어 번역에서 보드게임이란 단어가 빠져 있어서 넣어달라는 부탁도 했다. 그런데 아무도 안 웃더라. 다들 귀여워서 피식할 줄 알았는데.
김현목 귀엽긴 해. 잘 생각하면 귀엽긴 해.
박준호 그치. 철준이가 모임에 가서 할리갈리를 하는 거야. 상상하면 너무 재밌잖아.
조유현 과연 어떤 관객이 그걸 가장 먼저 발견할까. 언제쯤 “감독님, 그 대사가 너무 좋았어요, 너무 웃겼어요!”라는 반응이 나올지 내기 한번 해볼까. (웃음)
박준호 그 질문 나오면 너무 감동받을 것 같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