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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열의 촬영 미학] < F1 더 무비 >, 1.90:1의 미학
박홍열(촬영감독) 2025-08-21

디지털시네마 시대에도 영화의 화면비는 전통적인 필름 규격 안에서 선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극장 상영용 DCP 표준 규격이 필름의 1.85:1과 2.35:1을 중심으로 이뤄지기에, 다른 화면비들은 대부분 이 규격 안에서 보인다. 아이맥스(IMAX)의 전통적인 화면비 역시 필름 기반의 1.43:1이다. 영사 시스템의 디지털화가 카메라보다 먼저 진행되면서 필름의 화면비 규격들이 자연스럽게 디지털 영사 규격이 되었고, 이는 다시 디지털시네마 카메라의 화면비 규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디지털시네마에서만 출발한 화면비는 없을까?

디지털시네마에서 새롭게 등장한 화면비가 바로 1.90:1이다. 카메라 센서 크기가 풀프레임으로 구현되고, ‘오픈 게이트’ (open gate) 명칭으로 전체 센서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디지털시네마 카메라로도 아이맥스 해상도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디지털시네마 카메라로 촬영된 아이맥스 영화들은 극장에서 1.90:1 화면비로 상영된다. 하지만 이 화면비를 제대로 구사한 영화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그동안 디지털 아이맥스 영화들은 대부분 필름 아이맥스처럼 1.43:1 아이맥스 상영을 전제로 촬영되기보다 일반 디지털시네마 카메라의 향상된 해상도를 활용해 아이맥스 상영으로 확장하는 개념이 강했다. 카메라 해상도는 아이맥스 구현이 가능했지만 화면비에 맞는 프레이밍이나 화면구성은 일반 극장의 화면비인 1.85:1이나 2.35:1의 기본 규격에 맞춰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1.90:1 화면비는 1.43:1 필름 아이맥스 화면비보다 위아래가 작지만 1.85:1보다는 가로가 더 넓고, 2.35:1보다는 세로가 더 길다. 아이맥스처럼 큰 스크린의 임장감으로 압도하기에는 좋은 화면비지만 자칫 잘못 표현하면 가로 또는 세로 화면구성 중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해 애매한 화면비가 될 수도 있다. 감독의 의도나 화면구성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수직적 확장감과 수평적 확장감 중 어느 한쪽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시각적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1.90:1은 아이맥스 상영을 제외하고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F1 더 무비>(이하 <F1>)는 일반 상영관을 기준으로 했을 땐 다른 디지털 아이맥스 영화들과 같이 2.35:1 프레이밍으로 촬영되었으면서도 1.90:1 화면비의 미학을 아름답게 확장했다. 아이맥스 1.90:1 화면비로 봐야만 이 영화의 진가를 만날 수 있다.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화면

<F1>은 소니 베니스 2 카메라의 모듈 리알토와 아이폰 15 프로로 촬영되었다. 둘 다 디지털시네마의 높은 해상도를 구사하면서도 작고 경량화된 크기로, 인간의 눈이 놓일 수 없거나 일반 영화용 카메라가 설치될 수 없는 곳에 놓인다. 경주용 차량의 좁은 실내, 액셀 페달 밑에서 가속하는 주인공 소니(브래드 피트)의 발바닥과 브레이크를 밟는 발등, 1억5천만달러 경주용 F1 차가 펜스에 부딪히기 직전 타이어 바로 앞, 차량 후미 윙 바로 앞, 좁은 운전석 핸들 뒤, 차 측면 아래 지면과 가장 가까운 곳 등. 인간의 시선이 설 수 없는 곳에 카메라가 서서 관객들을 차와 동일화시키며 영화의 물질적 체험을 극대화한다. 이 작은 카메라들은 차량 곳곳에 거치되어 관객이 마치 차에 탑승한 채 달리는 듯한 시각적 체험을 제공한다.

달리는 차량에 리깅된 아이폰 15 프로 카메라가 포착하는 앵글들은 차와 경기장 트랙을 수평적으로 보여준다. 운전하는 소니와 조슈아(댐슨 이드리스)의 얼굴 클로즈업과 그 너머로 보이는 차 프레임, 그리고 경기장 트랙은 수평적으로 구성된다. 반면에 이 장면들의 리액션 컷인 경기 진행을 돕는 기술 스태프들과 객석에서 응원하는 관객들은 수직적으로 구성된다. 공간 구조인 경기장 차양을 받치는 기둥들의 수직적 구조까지 1.90:1 화면비 안에 적극 활용한다. <F1>의 1.90:1 화면비가 만들어내는 수직(Y축)과 수평(X축)은 2차원의 평면적 구성을 입체화시키며, 카메라는 스크린 안 Z축을 향해 달린다.

차에 리깅된 카메라는 차와 동일한 축에 놓인다. 그래서 경기 중이지만 수평적 이미지인 차는 고정되어 있고, 수직적 경기장은 달리는 차 밖 풍경으로 계속 변화한다. 수평적 이미지인 트랙 또한 Z축으로 빨려 들어가며 매 순간 수평의 이미지를 재배치한다. 자동차의 운동성 안에서 수평과 수직이 계속 충돌하고, 차체의 고정된 수평과 변하는 트랙의 수평 또한 수평과 수평끼리 충돌하며 극장 체험을 극대화한다.

<F1>은 프레임 안에 수직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인물 숏들이 많다. 아이맥스 1.90:1 화면비에서 인물들은 일반 영화보다 헤드룸이 많고, 무릎까지 보여주는 니 숏의 사용이 빈번하다. 기본적으로 2.35:1 프레이밍으로 촬영되었지만 1.90:1 아이맥스 상영용으로 영화가 패킹되면서 자연스럽게 아래위 화면이 더 들어와 만들어진 독특한 인물 숏들이다. 그런데 이 독특한 인물 숏들이 영화에서 수직적 화면비를 구성하고, 경주 장면의 수평적 화면비와 충돌하며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F1>에서 실내 공간은 1.90:1 화면비의 수직을 강조하며 경기장의 수평 트랙과 대비를 이룬다. 소니와 조슈아가 첫 경기 후 대기실 앞에 서서 서로를 견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장면에서 1.90:1 화면비는 부진한 성적을 두고 서로를 탓하며 신경질적으로 대립하는 두 인물의 모습을,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두 인물과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을 수직적으로 양분하여 심리적 대립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수직적 공간을 수평적으로 나누고 양옆에 두 사람을 마주 보게 세워 수직적 화면비를 활용하여 인물들간 감정의 대비를 강조하는 데도 적극 활용한다.

시점과 렌즈 또한 <F1>의 1.90:1 화면비를 새롭게 구성하는 데 기여한다. 경주용 차와 경주 중인 트랙은 차와 드라이버의 1인칭 주관적 시점으로 보여주고, 관람객과 F1팀 스태프들은 3인칭 객관적 시점으로 보여준다. 차 안 인물은 광각렌즈로 대상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수평적 화면비로 담아내고, 관객과 기술 지원팀은 망원렌즈로 대상과 멀리 떨어져 수직적으로 담아낸다. 1.90:1의 수직과 수평이 공존하는 화면비 안에 서로 다른 시점과 광각, 망원 렌즈의 대비가 더욱 잘 드러나며 경주의 속도감과 체험의 속도감을 동시에 증가시킨다. 이는 우리가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던, 수직과 수평이 서로를 강조하는 1.90:1 화면비를 구현해낸 사례다. <F1>이 보여주는 1.90:1 화면비의 미학은 단순히 기술적 혁신을 넘어 영화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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