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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같은 자연인이라 아는데 분명 모두 웃는다, (어이없어) 하하하!, < THE 자연인 >
이자연 2025-08-20

드라마적 웃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엔딩크레딧에 똑같은 이름이 빼곡히 채워진 노고 가득한 이 영화가 근원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에 적합한 답변이 될 것이다. 구독자 10만명을 이제 막 달성한 귀신 찾는 유튜버 귀식커(귀신+Seeker) 인공(변재신)은 숲속에서 귀신이 출몰한다는 제보를 받고 친구 병진(정용훈)과 한달음에 달려간다. 딱 한방만 더 있으면 채널이 안정적으로 안착할 거라는 욕망이 그를 자꾸만 공포의 선단으로 몰아세운다. 그렇게 도착한 산골짜기.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촛불로 연명하는 이곳에는 도인 같은 차림의 자칭 타칭 자연인이 거주 중이다. 여벌의 수저도 없어 맨손으로 밥을 먹어야 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소금잼(이라고 하는데 비주얼적으로는 쌈장 같은)만이 유일한 밑반찬이다. 볼일 보고서도 뒤처리는 꼭 계곡에서 해야 하는 게 원칙. 따라서 자연인의 생활양식은 전원적이기보다 원시적이고, 목가적이기보다 생존적이다. 한편 인공은 자연인에게 어딘가 찜찜함을 느낀다. 문명과 떨어진 염세적 생활에 가깝다고 하기엔 그의 언행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된 하루를 보내고 맞이한 첫날밤, 인공은 목격하고 만다. 슥슥슥. 슥슥슥. 무언가 비벼지는 마찰음을 따라가보니 웬걸. 자연인이 촛불 아래서 짜장면을 먹기 위해 래핑 가장자리를 나무젓가락으로 문대고 있다.

<THE 자연인>은 예측 가능한 클리셰적 상황 속에서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을 나열하며 불가항력적 실소를 자아낸다. 음산하고 어두운 숲속에서 이상한 물체를 맞닥뜨리거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을 때 관객은 곧 공포스러운 장면이 이어질 거라 예감하지만 영화는 자연인의 방정맞음을 빌려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이끌어낸다. 인적 드문 산길에서 사망한 등산객이 인간인가 귀신인가 의심하던 와중에는 자연인의 과장된 빙의가 툭 튀어나오고, 숲속 한가운데에서 웅성거림을 감지했을 때에는 뜬금없는 박쥐 떼가 동굴에서 솟아오른다(이 와중에 자연인은 반찬을 위해 박쥐를 잡으라고 한다). 좀처럼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거리가 먼 기묘고 수상쩍은 중년의 남자. 도인 같지만 PC방을 찾아 유튜브 채널에 귀신 목격을 제보하고, 마냥 야메 같지만 자기만의 신념과 삶의 기준을 보수적으로 고수하는 외골수. 고차원적으로 분리된 모순이 거듭될수록 저항력 없는 웃음이 계속 새어나온다. 심지어 그가 그리워 십리 길을 넘어 산속으로 찾아들었다는 여자는 황당무계한 장기를 뽐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치 여자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막이 열린 듯 영화는 모든 코믹적 요소를 과감히 쏟아낸다. 극적인 가지치기가 엉성하여 길을 길게 돌아가는 듯한 구간이 종종 있지만 영화는 본래 가고자 하는 목적지만큼은 잊지 않는다. 삼산과 토끼탕, 호랑이와 비밀. 어두운 산맥으로부터 이어지는 키워드는 전설과 민담을 발판 삼아 동화적 판타지를 가미하지만, 현실 세계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은 기만적인 현대인과 자극 중심적인 디지털 세계를 노련하게 꼬집는다. 노영석으로 시작해서 노영석으로 끝나는 영화는 다소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복제물로 대체될 수 없는, 색깔 뚜렷하고 개성 강한 감독만의 중심축이 선명하게 보인다.

close-up

<휴가> <3학년 2학기>의 연출자 이란희 감독이 영화의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실소의 화룡점정을 찍는 장면을 이란희 감독이 뻔뻔하게 이뤄낸다. 이전에 <조난자들> <순환소수> <7년의 밤> 등에서 단역 경험을 쌓아온 이력을 바탕으로 열연을 펼쳤다. 무엇보다 힘이 빠진 듯하지만 자기 생각이 뚜렷한 목소리 변주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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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거지> 감독 이하람, 2024

각본, 편집, 미술, 음악, 촬영, 제작 등 모든 영역의 엔딩크레딧에는 이하람 감독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단순히 1인다역을 했다는 이유로 이하람 감독 작품이 연상되는 것은 아니다. 뚜렷한 자기 색깔, 독특한 플롯과 작품관, 남들을 좇기보다 자신의 개성 안에서 자유롭게 골몰하는 영화적 태도. 집도 절도 없는 외계 행성 출신의 젊은 커플이 차를 타고 다니며 이유 있는 살인을 한다는 이야기가 황당무계하지만 철학적이고 농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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