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장소, 진화된 기술, 다시 태어난 공룡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시리즈의 DNA를 품으면서도 한층 고도화된 방식으로 완성됐다. 실물 세트와 디지털효과, 고생물학과 상상력이 긴밀히 협업해 탄생한 ‘뉴 쥬라기 시대’의 제작 비하인드를 정리했다.
공룡들의 터전, 생 위베르 섬
생 위베르 섬은 팀 조라 베넷이 공룡의 DNA를 채취하기 위해 찾는 목적지다. 데이비드 켑이 쓴 각본에서 이곳은 “암석 지대와 해안 동굴, 초원과 폭포, 가파른 석회암 절벽이 어우러진 열대의 섬”으로 묘사된다. 상상 속 공간을 현실로 구현하라는 특명을 받은 로케이션팀은 전세계를 탐색한 끝에 코스타리카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선정했다. 그러나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의 후보지가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그가 자신의 전작 SF영화 <크리에이터>를 촬영한 태국을 추천한 것. 태국의 원시적인 자연환경을 담은 사진을 확인한 제작자 패트릭 크롤리는 자체 조사를 진행했고 감독의 제안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제작 총괄을 맡은 스티븐 스필버그다. 태국 현지 사진을 받아본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끝났네, 바로 여기야.”
움직이는 세트의 정점, 에섹스호
던컨(마허셜라 알리)의 선박 ‘에섹스’는 망망대해에서 팀원들의 집이 되어준 공간이다. 몰타 필름 스튜디오의 야외 수조에 설치된 실제 세트로, 영국의 특수장비 제작 전문업체 BGI 서플라이즈와 협업하고 <글래디에이터> 시리즈와 <그래비티> 등에 참여한 베테랑 특수효과 슈퍼바이저 닐 코볼드가 설계를 맡았다. 참고용 선박은 일본 도코하마 요트사에서 1980년대 제작한 고속 순찰정이었다. 고도의 기술이 동원된 이 세트는 실제 배가 다양한 해양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정밀하게 재현해낼 수 있었다. 선체를 좌우 45도까지 기울일 수 있었고, 태양 방향에 따라 회전도 가능했다. 그만큼 배우들도 몰입해서 촬영할 수 있었다. “움직이는 장치 위에서 연기하는 동안 바람 기계와 물대포에 끊임없이 맞아야 했지만 정말로 바다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마허셜라 알리) 다만 물은 후반작업에서 디지털로 추가되었다. 실제 바다를 담고자 제작진은 영국의 모션 컨트롤 전문 스튜디오 MOCO FX에 SOS를 요청했다. 지중해의 파도와 해류에 대한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고, 바다의 역동성과 미묘함을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공룡의 숨은 주역들
<쥬라기>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은 언제나 공룡들이었다. 이들의 위용을 새롭게 되살리기 위해 제작진에 주어진 시간은 단 6주.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를 현실로 만든 건 수천명의 유능한 VFX 아티스트들이었다. 여기에 <스타워즈> 시리즈와 <해리 포터> 시리즈 전편의 시각효과를 전담한 스튜디오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ILM)의 전통 애니메이터들이 힘을 보태면서 본격적인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실사 촬영 현장에서는 실제 모형 제작의 명가, 존 놀런 스튜디오가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공룡의 머리, 사지, 발톱 등이 조명과 배우의 시선 처리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일부 공룡은 모션캡처 퍼포머가 직접 연기를 맡기도 했다.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에서 벨로시랩터 블루를 연기했던 수석 퍼페티어 톰 윌턴이 이번에도 참여해 생동감 넘치는 동작을 구현해냈다.
모사사우루스부터 아퀼로스까지 화려한 공룡 라인업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서 첫선을 보인 백악기 후기의 ‘조스’ 모사사우루스가 이번 편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다만 외관은 완전히 달라졌다. 공룡 자문을 맡은 스티브 브루사트 에든버러대학교 고생물학 교수에 따르면 “고래 같기도 악어 같기도 한데, 사실은 그 무엇과도 다른 독특한 존재”다. “압도적인 크기, 속도, 힘을 강조한 새로운 모사사우루스는 피부와 근육 묘사가 한층 업그레이드되었고 물과의 상호작용”도 매끄러워졌다. 이번 디자인은 타이거 샤크(범상어)에서 모티프를 따왔으며 초록빛이 감도는 회색 피부 위에 표범 무늬를 연상케 하는 패턴이 특징이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익룡 케찰코아툴루스도 변주되어 등장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거대한 비행 생물 중 하나이고. 날카로운 부리를 가졌다는 정보만 있어 상상력을 더해 완성한 캐릭터다.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은 디자인팀에 “현실성과 공포감을 동시에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쥬라기> 시리즈의 상징인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도 빠지지 않는다. 데이비드 비커리 VFX 슈퍼바이저는 이번 티렉스가 “훨씬 건강하고, 더 무겁고, 더 근육질이며, 황소처럼 강인하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무서운 공룡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트리케라톱스의 조상 격이자 작고 뿔 달린 초식공룡 아퀼롭스가 이번 편의 마스코트로 활약할 예정이다.
액션 스타 스칼릿 조핸슨의 도전
폭포는 인도에서 소수의 촬영팀이 담아온 실제 폭포 영상을 기반으로 VFX로 구현됐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통해 웬만한 액션 기술은 모두 섭렵했을 것 같은 스칼릿 조핸슨이 이번 작품을 위해 새로 배운 기술이 있다. 바로 레펠(암벽 하강)이다. 그간 무기와 군사 훈련을 포함한 다양한 액션 트레이닝을 받아온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고. 반면 헨리 루미스 박사 역의 조너선 베일리는 레펠 장면을 찍을 때 고소공포증을 숨기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절벽 속 신전의 비밀
원래 고대 신전은 데이비드 켑의 시나리오에 없었다. 개러스 에드워즈 감독이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을 오마주하고 싶어 그와 논의 끝에 포함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를 구현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태국의 한 국립공원에서 제격인 장소를 발견했으나 해당 지역 규정상 내부 촬영 허가를 받을 수 없었던 것. 이 난제를 해결한 건 미술감독 앨릭스 캐러먼이었다. 그는 신전 전체 세트를 외부에서 제작한 뒤 부품별로 분해해 현장에 운반하는 방식을 택했고 덕분에 감독의 비전은 결국 스크린 위에서 현실로 구현될 수 있었다.
에섹스호에서의 잊지 못할 3분
‘스필버그 키즈’ 조너선 베일리는 에섹스호에서 헨리가 물에 빠지려는 조라(스칼릿 조핸슨)를 끌어올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물대포가 얼굴을 강타하고 주위는 마구 흔들렸지만 내 안의 아이 같은 자아는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스필버그스러운’ 3분이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