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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는 것 - 스튜디오 지브리 대표작 제작 비하인드
조현나 2025-06-17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을 중심으로 살펴본 스튜디오 지브리 대표작 제작 비하인드

SHUTTERSTOCK

인공지능의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제작이 한차례 유행한 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평화롭고 밝은 이미지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한층 짙어진 모양새다. 하지만 개별 애니메이션을 들여다보면 전쟁의 폐해, 기후 문제, 자연과 인간의 대립 등 그는 자신이 유년 시절부터 마주해온 동시대적 위기와 현실을 면밀히 기록해왔다. 지난 5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을 중심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삶과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두드러지게 녹아든 작품과 제작 비하인드를 정리해보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난 미야자키 감독에게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이미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맹렬한 폭격의 기억이었다. 유년 시절 자신이 살아가던 우쓰노미야에서 폭격을 겪은 경험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바람이 분다>의 전쟁 장면에 녹아 있고, 이후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을 바라본 경험은 <천공의 성 라퓨타>의 원자폭탄 폭발 장면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45년 7월12일, 내가4살이었을 때 야간 공습을 겪었다.하늘이 대낮처럼 밝았다. ‘지금 불타오르는 게 우리 집인가?’”미야자키 하야오의 단편 만화 <타인머스로의 여행> 중

<벼랑 위의 포뇨>

미야자키 감독이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 애니메이션 <백사전>을 본 뒤다. 인간의 모습을 한 뱀이 한 소년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인데, 이에 크게 감명받은 그는 후에 비인간 존재가 인간을 좋아하게 되는 <벼랑 위의 포뇨>를 기획한다. “자연이 항상 온순하고 인간이 오염시킨 환경을 되돌려줄 거란 생각은 완전히 거짓”이라던 미야자키 감독은 <벼랑 위의 포뇨>에서 위협적인 파도의 힘을 맹렬히 묘사하면서도 자연재해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지를 소스케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벼랑 위의 포뇨>에 담긴 감독의 메시지는 훗날 쓰나미 및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사고를 겪은 일본인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내 작업은하나의 목표를 중심으로이루어졌다. 좋은 애니메이션을보고, 그것을 뛰어넘는 것.”미야자키 하야오의 에세이집 <출발점 1979-1996> 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첫 장편 연출작인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애니메이션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던 미야자키 감독은 제작자 스즈키 도시오의 제안으로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12년에 걸쳐 연재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오염된 세계에서 인간과 자연의 전쟁이 예고된 상황에서, 인간만큼이나 동식물을 사랑하는 나우시카 공주가 이들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이야기다. 극 중 오염된 세계는 일본의 미나마타 해안에서 일어난 수은 중독 사건이 바탕이 됐다. 한때 죽음의 바다로 불렸으나 어업이 중단된 지 수년 후, 다시 물고기 떼가 나타났다는 뉴스는 미야자키 감독이 자정능력을 지닌 자연을 묘사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쿄가 태평양에 잠기고 NTV타워가섬이 될 날을, 인구가 감소하고더이상의 고층빌딩 없이 야생초원이지구를 덮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미야자키 하야오의 <뉴요커>와의 인터뷰 중

<붉은 돼지>

<붉은 돼지>는 전직 전투기 조종사의 모험을 그린 단편애니메이션이다. 거의 매년 장편애니메이션을 제작하던 미야자키 감독이 환기 차원에서 가벼운 단편 제작을 기획했으나 영화제작 중 아시아의 버블경제가 붕괴되고 소련이 해체됐으며 유럽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발했다. 이러한 현실의 참상은 <붉은 돼지>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자신의 작업실을 부타야(돼지의 집)라 부를 정도로 종종 스스로를 돼지 캐릭터로 묘사하는데, <붉은 돼지>에서 돼지의 외형을 지닌 조종사 포르코 로소는 감독의 분신으로서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복잡한 심리를 대변한다.

<모노노케 히메>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생태학적인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다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달라진 점은 자연과 인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 갈등과 충돌의 형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완전한 화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미야자키 감독은 숲에서 모두 함께 살아가는 해피 엔딩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모호한 결말을 택했다. 그의 애니메이션 중 가장 어두운 분위기로 완성된 <모노노케 히메>는 개봉 당시 일본에서만 1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진짜 아무것도 안 변했어. 그런 게감독의 일이야.”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중

“지브리가 편안한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마다그 생각을 지우고 싶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중요한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영화를 만드는의미가 없다. 혼란스러운데 모든 게 괜찮을거라고 거짓말하는 게, 그게 과연 가능할까?”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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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대원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