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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아다지오 아사이>
이다혜 사진 최성열 2025-06-17

남현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남현정의 첫 소설집. “그러니 인생을 취소할게 오이디푸스도 아마 그랬을 거야 자기의 인생을 취소하고 싶었을 거야 쥘리앵 또한 그랬을 거야 자기의 인생을 취소하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 가만 나에게는 취소할 인생조차 없네 그렇다면 인생을 취소할게라는 말을 취소할게 인생을 취소할 일 없는 인생 없는 나는 이제부터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느낌표와 물음표는 있지만 마침표는 없는,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없는(하지만 여러 개의 각주가 자기주장을 하는) <없는>으로 시작하는 단편집 <아다지오 아사이>는 ‘예측되기’에 저항하는 듯 보인다. 소설 텍스트 바깥에서 끌어오는 레퍼런스들은 의미심장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데, <부용에서>는 영화 <국외자들>과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 칸딘스키의 그림 <곡선의 지배> 같은 작품들이 언급된다. 외삼촌을 만나기 위해 부용이라는 타지에 발을 들인 ‘나’의 이야기로, 어딘가 꿈을 꾸는 것 같은 기이한 상황이 연달아 발생한다. 이미지를 포함한 감각이 사유를 지배하는 느낌으로 문장을 따라가는 과정.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제 소설 속 인물은 저와는 달리 타협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우리는 어느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런 사람이라면 자기의 감각과 기억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지 않을까요.” 오로지 의심 속에서 다음 발을 내딛을 수 있다면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감각은 어떻게 인지될까. <그때 나는>은 202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남현정의 등단작이다. 여기서 화자는 “그때 나는 산꼭대기에 서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목소리가 울리고 나는 그것이 환청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 소설에서(그리고 남현정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화자는, 그리고 우리는 멈추지 않지만 도달하지 못한다. 좌절의 감각이 내재화된 혼란 속에서 문장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아름답지 않아도, 징그럽고 끔찍해도, 별 의미 없이도, 아주 천천히라도 그저 계속되고 있다면, 그게 바로 환희와 행복의 비밀이라는 걸 끝내 알아차리고 만다.”(<아다지오 아사이>) 묻지 않은 것에 대해서 답하지 않으려는 고집 센 입매를 가진 소설들이다.

꿈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 없이 울고 소리 없이 사랑을 한다. <하나가 아닌>,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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