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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함의 필요, <센티멘털 밸류> 요아킴 트리에르 감독
김소미 2025-06-13

요아킴 트리에르는 자신의 전통을 세워가고 있다. 그의 신작은 여전히 개와 늑대의 시간, 인물들의 자기인식을 대변하는 제3의 보이스오버, 배우 레나테 레인스베, 고약한 유머와 멜랑콜리가 동반한 서정의 드라마와 동반한다. 오슬로 3부작과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이어 <센티멘털 밸류>에서도 일관된 스타일을 확장해나가는 동시에 감정적 깊이와 가족의 다성적 시선을 감싸는 서사의 품은 키워냈다. 한 작가의 완연한 진일보다.

<센티멘털 밸류>는 가족을 떠났던 영화감독 아버지 구스타브(스텔란 스카르스가르드)가 두 자매를 찾아오면서 비로소 드러나는 가족의 혼란과 슬픔을 들춘다. 특히 배우인 언니 노라(레나테 레인스베)는 아버지가 쓴 자전적 작품에 주연배우로 출연해줄 것을 제안받고 오래된 마음의 상처 속을 헤매게 된다. 요아킴 트리에르 감독은 영화와 동시대 예술이 처한 현실, 오래된 집과 물건들을 경유해 가족의 연약한 맨살이 서로 맞닿는 순간까지 관객을 이끈다. 부드럽지만 견고한 그 손길에 레드카펫의 호사가들은 대체로 <센티멘털 밸류>를 강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점쳤었고, 트리에르는 폐막의 밤에 넉넉한 미소와 함께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었다.

©SHUTTERSTOCK

- 노르웨이어 원제를 번역한 영어 제목은 정확히 어떤 뜻인가.

노르웨이어로 Affeksjonsverdi, ‘센티멘털 밸류’(정서적 가치)는 말 그대로 할머니의 커피잔처럼 본인에게는 세상을 의미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중요치 않아 보이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같은 가족사를 완전히 다르게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두 자매에 관한 이야기다. 나와 내 형제들도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왜 우리가 이렇게 다른지, 왜 우리가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시간의 포화 속에서 각자 주관적으로 가치를 매기는 것이 결국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어 제목은 콜 포터의 곡 같은 멜랑콜리한 옛날 스탠더드 재즈의 느낌도 나는 것 같다. 무언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느낌이 들면 좋겠다. 시간, 부모와 화해할 가능성,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기회, 자라나는 아이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오래된 집 같은 것들.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은 낡고 사라진다.

- 자매와 아버지의 시간, 가족의 집에 얽힌 역사, 영화 속 영화 등이 비선형적인 구조로 얽혀 있다.

나와 작가 에실 보그트는 물론이고 함께 작업하는 편집자 올리비아 부테 모두 비선형적인 드라마투르기를 지향한다. 특히 이번 영화는 생략과 단절을 더 적극적으로 썼다. 시간을 단편화하면서 관객이 스스로 거리를 인지하고, 여백 속에서 스스로의 해석을 더하는 시간을 유도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끝으로 갈수록 응집력 있게 모이도록 했다. 결국은 상처받은 가족이 서로에게 허락된 가능한 한 최선의 해결책에 도달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칸 프레스 기자회견에서 “온유함(tenderness)이 곧 새로운 저항 방식이다(Tenderness is the new punk)”라고 발언한 것이 화제가 됐다. 지지하는 목소리들이 많은데 조금 더 부연해줄 수 있나.

온유함, 부드러움, 다정함은 동시대 스크린에서 거의 보기 힘든 것이다. 이것은 복잡한 문제다. 나는 1990년대에 자라면서 반문화적인 유행, 서브컬처를 적극적으로 흡수해왔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펑크를 했으며 정치적으로도 타협하지 않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은 바야흐로 장르영화와 폭력의 시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부드러움과 희망을 위한 공간을 찾아야 함을 자주 느낀다. ‘당신이 그런 말을 했으니 당신을 무너뜨리겠다’가 아니라 ‘내가 오해했나? 좀더 가까이 다가가보자’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가족 이야기를 만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깊은 상처와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는 서로의 발을 밟은 채로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나는 앞으로 서로를 더 용서하고 더 받아들이는 부드러운 이야기로 나아갈 것이다.

- 시간을 증언하는 장소로서의 집이 작품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나.

영화 속 붉은 페인트 집은 세대와 시간에 대한 더 큰 관점을 제공한다. 자연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코끼리는 코끼리만의 시간이 있고 개미는 개미만의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집도 인간과는 다른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개인은 태어나고 죽고 오고 가며 이동하지만 집은 늘 그대로 있다.

- 스텔란 스카르스가르드가 연기한 영화감독 아버지 구스타브에 대해 개인적인 해석을 들려준다면.

가부장으로서 감정적 소통의 무능력에 갇혀 있는 것은 캐릭터로서 흥미로운 특성이다. 구스타브는 구세대의 남성으로 전쟁 후 큰 트라우마를 가진 세대인데 내 가족 중에서도 2차 세계대전 중 포로가 되었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끔찍하게 다친 할아버지가 있었다. 자칫 평면적으로 그려질 우려가 있었지만 스텔란 스카르스가르드라는 훌륭한 배우가 입체감을 부여했다. 감정이란 도구가 인간이 다른 사람과 접촉하게 도와주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이끈다는 것을 이 캐릭터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 이번에 오슬로가 생생하게 담겼다. 해질녘의 공기가 촉감으로 와닿는 듯하다.

도시의 기운은 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동력이다. 이를테면 나와 작가 에실이 나고 자란 오슬로야말로 ‘정서적 가치’가 분명한 곳이다. 이번 영화가 전작과 구분되는 점은 나로서는 매우 새로운 공간을 도입했다는 것인데 하나는 입센의 모든 극을 초연한 노르웨이국립극장이고, 다른 하나는 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아카이브가 보관된 국립기록보관소다. 나는 이 두 공간이 좌뇌와 우뇌, 성격이 다른 두 자매, 두개의 다른 언어처럼 공존하는 두개의 건물로 비치길 바랐다. 모두 깊은 이야기를 품은 공간이면서 서로 다른 문법을 품은 공간이다.

- 불안과 슬픔 등으로 인물의 감정이 동요하는 장면들에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준다. 카메라와 배우가 매우 친밀하게 보이는 순간들을 어떻게 연출하나.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많다. (웃음) 세대간 트라우마의 전이, 치료실에서 의사와 내담자 사이에 일어나는 전이 같은 것을 믿는다. 감독이 배우들과 작업할 때도 그 사이에 심리적인 전이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배우들에게 최선을 다해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려고 한다. 그곳은 배우가 나와 소통하는 동시에 자신을 캐릭터에 투입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이것은 메소드나 비메소드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믿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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