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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와 포승줄에 결박되었을 때 들려온 소리, <심플 액시던트> 자파르 파나히 감독
김혜리 2025-06-13

자파르 파나히는 놀라운 이야기꾼이며 스릴러의 장인이다. 창작의 자유에 대한 이란 정부의 억압과 투옥은 그의 스토리텔링을 더욱 깊고 독창적으로 벼릴 뿐이었다. 공식적 영화제작 금지령이 해제된 2025년 파나히가 칸에 가져온 <심플 액시던트>는 예술적 자기 성찰을 담은 전작 <노 베어스>에 비해 훨씬 직설적이다. 영화는 정당한 권리를 외치다가 구금돼 고문당하고 삶에 깊은 내상을 입은 시민들이 가해자로 추정되는 남자를 우연히 마주치며 시작한다. 남자는 한사코 자기는 그 악덕 관리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복수를 원하는 피해자들은 무고한 이를 해칠지도 모르는 일말의 가능성으로 인해 윤리적 딜레마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남자의 아내는 출산 직전이라 돌봄을 필요로 한다. <심플 액시던트>의 프리미어에서 울려 퍼진 경외의 갈채는 이튿날 진행된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 자리에서도 소리 없이 계속됐다.

©SHUTTERSTOCK

- <심플 액시던트>를 만드는 동안 개인적으로 겪은 심리적 여정이 있다면.

이 영화의 이야기들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게 아니다. 대부분 투옥 기간 중 동료 수감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5년, 10년, 15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한 사람들이고 여기에는 또한 그들보다 먼저 투옥된 죄수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심플 액시던트>는 약 50년에 걸친 이란인의 집단적 경험을 4, 5명의 캐릭터로 함축한 결과다.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 가운데에는 즉각적이고 폭력적인 복수를 원하는 이도 있었고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순박한 블루칼라 노동자도 있었고 진심으로 이란 사회의 미래를 구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물론 나 역시 취조당한 경험이 있다. 긴 시간 눈이 가려진 채 벽 앞에 앉혀졌고 등 뒤에 수사관이 서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자연히 나의 청각은 매우 예민해졌고 뒤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우리 모두의 호기심을 건드리는 사운드로 시작했다. 영화 말미의 어떤 사운드는 관객의 심장을 거의 멈출 것 같은 효과를 낸다. 관객도, 그 소리를 들은 투옥자와 동일한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 소리는 피해자를 언제 어디서나 다시 결박하고 눈을 가려 벽 앞에 세워놓는다.

- 이란의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시네마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바꿔놓은 바가 있나.

옥중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죄수와 나눈 대화가 나의 내면에 남았다. 출옥한 후 얼마간이 지나 나 자신을 회복하고 차분함을 되찾았을 때 감옥에서 나눈 대화들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고 그것이 영화가 되리라는 걸 알았다.

- <심플 액시던트>에는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플래시백이 없다. 영화 도입부의 로드킬을 비롯해 영화에서 폭력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이 작품에 시각적 플래시백은 없지만 청각적 플래시백은 많다. (일동 동의) 오프닝에서는 관객과 게임을 해보려 했다. 초반에 개를 차로 치어 죽인 인물의 리액션을 본 관객은 나중에 그가 다른 인간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대했는지 알게 된다. 동시에 개의 로드킬은 차에 탄 가족 안에 존재하는 생각의 차이를 드러낸다. 남자의 아내가 어린 딸에게 개의 죽음이 신의 뜻이라고 말하자 딸은 아빠가 운전에 부주의했고, 아빠에게 말을 걸고 있었던 건 엄마인데 그것이 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반박한다.

- 끔찍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이면서도 <심플 액시던트>는 위트와 유머를 빠뜨리지 않았다. 어떻게 톤을 결정했나.

사실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디테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란인은 삶에 유머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신이 만약 이란인의 집을 방문하거나 거리에서 대화를 듣게 된다면 금세 그 감각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적인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 부분을 살리는 것이 내게는 매우 중요했다.

- 올해 칸영화제 상영작 가운데 정치적 박해를 다룬 영화가 유난히 많아 보인다. 오늘날 세계의 상태에 대해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가 있을까? 세상은 악화되고 있는 걸까? 우리가 힘든 현실을 감당하는 방편으로 영화를 만드는 걸까.

전세계 감독들이 의논해서 영화를 기획하는 건 아니니 할 말은 없다. 아마 우리는 유사한 문제를 체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트럼프 미 대통령 같은, 문제를 만드는 정치인이 각지에 있다. 최근 트럼프가 미국 밖에서 제작된 영화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엄포를 놓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런 상황은 시네마에도 큰 제약을 준다.

- 무시무시한 엔딩이다. 마지막 장면에 대해 하나의 윤리적 입장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내내 확신을 갖고 있었는지, 영화를 만들면서 서서히 도달한 엔딩인지 알고 싶다.

찍는 내내 영화를 어떻게 끝낼지 고민했다. 실제로 관객들이 본 엔딩이 처음부터 머릿속에 있었는데 동료들이 다른 아이디어를 제안해 두세 가지 버전의 가능성이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수용하도록 준비했고 편집까지 했으나 결국은 원래 나의 아이디어로 돌아왔다. 주된 이유는 거기에 다른 대사 하나, 단어라도 더 얹으면 영화가 무너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 <심플 액시던트>의 등장인물 가운데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 웨딩 포토그래퍼의 캐릭터에 대해 더 알고 싶다. 5년 전만 해도 이란영화에서 보기 힘든 여성 아니었나 싶은데.

내 영화를 계속 보아왔다면 이런 여성 인물을 많이 보았을 텐데? 예를 들어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싶어 하는 <오프사이드>의 소녀들이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2022년 여성의 자유를 위한 시위 이후 이란 사회 전반에 여성의 존재감과 힘이 부쩍 가시화되고 있다.

- 완벽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번 영화를 찍었나.

지난 15년간 완전한 자유라는 건 맛본 적이 없다. 물론 영화제작 금지령은 풀렸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를 이란 정부가 허락해줄 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비밀리에 영화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 이 영화를 만들면서 용서에 대해 생각한 바가 있나.

<심플 액시던트>는 용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을 부추기는 등 떠밀기에 가깝다. 마지막에 문제의 음향을 들을 때 우리는 가해자가 지금까지 본 사건을 통해 변했을지 아니면 미래에도 더 많은 무고한 시민을 구금하고 고문할지 궁금해하게 된다.

- 이란의 현 체제에 균열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부에서 보는 관점은 어떤가.

균열 이상이다. 많은 이들은 이 정부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실패했고 껍데기만 남아 있다. 다만 언제 매장될지는 내 영화에서처럼 불분명하다. 오늘이 그날일지 몇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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