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나스 트루에바는 텔레노벨라의 토양 위에서 누벨바그의 꿈을 꾸는가. 14년 연애 끝에 헤어지기로 한 커플이 ‘이별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반복되는 상황과 대화의 연속으로 풀어가는 스페인영화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에릭 로메르풍 여름을 통과하는 예술가 커플 알레(잇사소 아라나)와 알렉스(비토 산스)의 눅진한 관계를 탐구한다. 영화사의 전통을 혼합하고 능동적 오마주를 구사하는 호나스 트루에바의 영화는 정체된 현대 로맨틱코미디 장르에 균열을 내는 움직임이다. “헤어짐에도 의식이 필요하다”는 독특한 철학이 호나스 트루에바의 만화경을 만났을 때, 영화와 인생은 혼란스럽게 닮아가고 마침내 하나의 소동으로 수렴된다.
- 오래된 커플이 이별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구상의 출발점을 소개해달라.
나의 아버지, 페르난도 트루에바는 실제로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부터 “결혼식이 아니라 이별식이 필요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물론 당시에는 영화 아이디어라기보다 인생의 조언으로 들렸다. 그런데 그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영화의 전제로 싹트게 되었다. 할리우드의 고전 코미디들, 특히 1930~40년대 작품들엔 늘 신부의 아버지라는 인물들이 존재하지 않나. 내 아버지는 결국 영화에서도 알레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영화를 향한 사랑과 삶에 대한 태도,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가 시작됐다.
- 배우 잇사소 아라나, 비토 산스와 <어거스트 버진> <와서 직접 봐봐> 등 여러 작품에서 협업했고 그들은 대부분 커플을 연기했다. 배우들이 각본에도 참여했는데 세 사람의 오랜 창의적 관계는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비토는 전통적인 매력을 가진, 유머 감각이 탁월한 배우이고 잇사소는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배우이다. 두 사람은 스페인에서 각자 극단을 운영하며 직접 글을 쓰고 연출도 한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이들과 일하는 걸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자기 역할을 넘어서 영화 전체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쌓여 내 영화에서 이미 여러 번 커플을 연기했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선 그동안 쌓인 기억을 자연스럽게 가져오는 방식으로 작업한 점이 새로웠다.
- 이별식을 공표하는 커플과 이를 접하는 주변인들의 대화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느슨한 패턴을 그린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키르케고르의 <반복>을 빌리자면, 반복은 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앞으로 향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형식미학을 넘어 인생에 관한 철학적 은유로 자리 잡는 반복에 대하여 당신이 탐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 역시 반복은 정체가 아니라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반복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인생 자체가 반복의 연속이니까. 우리는 반복을 통해 익숙해지고, 그렇기에 다시 새로움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는 반복을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예술이다. 샹탈 아케르만의 <잔느 딜망>, 해럴드 래미스의 <사랑의 블랙홀>, 오즈 야스지로와 존 포드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 감독인 알레와 배우인 알렉스가 편집 중인 영화의 장면이 곧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하나로 겹친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내러티브를 구체화한 과정을 들려준다면.
영화 속 영화를 집어넣겠다는 발상은 이후 두 배우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여기엔 약간 자조적인 관점이 담겨 있다. 직업전선에 있는 우리 세 사람에게 영화란 늘 멋진 게 아니다. 편집하며 겪는 좌절, 끊임없는 의심도 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속에서 알레가 편집하는 영화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겹치기 시작했다. 영화와 인생은 매우 닮아 있다. 이것은 그사이에서 느끼는 혼란을 가능한 한 충실히 담으려는 시도다.
- 미학자 스탠리 카벨이 레오 매케리 감독의 <이혼 소동> 등 1930~40년대 할리우드 재혼 희극(remarriage comedies, 스크루볼코미디의 하위 장르)을 탐구한 저서 <행복의 추구>를 인용했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과 배우 리브 울만의 관계, 프랑수아 트뤼포가 묻힌 파리 묘역 등도 주요 소재다. 현실 세계의 각주를 거침없이 활용하는 연출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우선 카벨은 내게 큰 영감을 주는 사상가다. <눈에 비치는 세계> <말들의 도시들>도 자주 읽는다. 그는 때론 철학보다 영화가 더 철학적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단순한 인용이 아닌 오마주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내 영화의 일부이다. 과거의 유산이 실제 내 창작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노출시키면서 관객과 나누고 싶다. 화면 속 배경이든, 등장인물의 대사든, 여러 요소로서 스크린 안에 함께 존재하게 만들려고 한다.
- 카메라의 존재와 화면의 표층을 노골화했다. 분할화면, 디지털 줌인, 덜컹이고 삐걱대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식이다.
나는 영화의 어느 시점에 반드시 카메라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다. ‘나 여기 있어!’ 하는 과시적 양태가 아니라 흔들림 혹은 불완전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 불완전성은 진정성과 연결된다. 관객에게 카메라 뒤에 있는 이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 더 가까워진다. 이런 연출이 지적인 유희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감각적인 차원에서 전달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 실재하는 장소성, 지역성을 살리고자 한 로케이션이 있다면.
주인공 커플의 집이 대표적이다. 마드리드 중심부, 라바피에스 지역의 오래된 아파트다. 오늘날 이 동네는 관광객을 위한 숙소가 대다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지역의 성격이 그대로 보존된 공간들이 있다. 우리는 아파트 한층에 두집으로 나뉜 공간을 다시 하나로 연결해 촬영했고, 계단과 가벽을 더해 고전 스크루볼코미디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물들이 문을 여닫으면서 소통하는 공간 구조를 만들었다.
- 당신의 여름영화들은 느슨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어질 또 다른 연인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나는 늘 이전 영화가 다음 영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전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들지만 결국엔 비슷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게 중요한 건 영화 한편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이어지는 여러 영화들을 통해 삶에 일관된 리듬을 유지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홍상수 감독을 존경한다. 그의 영화가 스페인에서도 꾸준히 개봉되기 때문에 항상 챙겨 보고 있다. 홍상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등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