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펭귄>의 시작은 <더 배트맨>(2022)의 결말 시점 일주일 후다. 고담시의 마피아 보스 르미네 팔코네(마크 스트롱)는 리들러(폴 다노)에게 살해되고, 팔코네 가문의 수하 ‘펭귄’ 오즈 코블팟(콜린 패럴)은 혼란을 틈타 고담시의 일인자가 되려 한다. 한편 팔코네 가문의 장녀 소피아(크리스틴 밀리오티) 또한 왕좌를 노린다. <더 펭귄>은 두 안티히어로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악에 악을 거듭하는 범죄 스릴러다. 오즈와 소피아의 입체성을 살리기 위해 <더 펭귄>은 한 에피소드에 플래시백을 통째로 할애해 두 캐릭터의 전사를 간곡히 풀어내는 결정도 불사한다. 화려한 음악과 촬영이 그 위에 얹히고, 배우들은 클로즈업의 독무대에서 보란 듯이 열연한다. 게다가 <대부> <스카페이스>가 보여준 마피아 조직간의 합종연횡이 오즈와 소피아를 통해 오마주에 가깝게 재현된다. 재미없기가 어려운 이 시리즈는 공개 나흘 만에 미국 내 530만 시청 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통상의 이야기라면 이후 작품의 유해성이 평단으로부터 지적될 터. 하지만 그 누구도 절로 몰입을 부르는 <더 펭귄>이 악을 미화했다며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더 펭귄>은 두 안티히어로의 복합적인 내면을 작품의 매력으로 승화해내는 동시에 악이 작동하는 궁색한 동인과 악이 추동하는 처참한 결과 모두를 8부에 걸쳐 저글링해낸다. 오즈와 소피아는 각각 계급 차별과 젠더 차별의 피해자다. 달리 말해 두 안티히어로는 약자성을 지녔다. 이들은 자신이 놓인 불평등을 동력 삼아 고통의 원흉에게 짜릿한 복수를 단행하기도 한다. 여기까진 참작할 만하다. 문제는 이들이 앙갚음이 끝나도 악행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오즈와 소피아는 표면상으로는 고담시 전체를 신음하게 하는 마약 유통 독점권을 두고 경쟁한다. 둘은 이 과정에서 속출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저 폭주하며 악의 허브를 공고히 한다. 오즈와 소피아의 총구는 당연히 서로를 겨눈다. 자신의 결핍에 집중한 나머지 두 사람은 상대방의 약점이 곧 스스로의 우위라는 사실을 알려고 들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 약자의 상승 욕구를 짓밟고 권력만을 추구할 뿐이다. 요컨대 <더 펭귄>은 악의 근원을 면밀히 적시하되 그것이 미친 세상에서 미쳐야 할 이유라 합리화하는 잘못된 신념에 동조할 여지를 원천 차단한다. 심지어 두 악인은 추종자를 모으고 그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펼친다. 하지만 이 두 독백은 작품 밖 시청자까지 현혹하지는 않는다. 혐오와 차별에서 비롯한 선동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이에 근거한 결집이 얼마나 쉽게 와해될 수 있는지를 드러낼 뿐이다. <더 펭귄>은 시청자로 하여금 두 악인이 지닌 결핍의 원인을 사유하도록 돕지만 결핍의 결과만은 연민하지 않은 채 작품을 즐길 수 있게 쓰였다. 악인의 이야기를 즐기는 일에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그 신중한 작법에 녹아 있다.
아들
<더 펭귄>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는 아들이다. 프랜시스(디어드리 오코널)의 아들 오즈는 평생을 다른 형제들보다 인정받으려 애쓴다. 오즈는 자신의 수족인 빅터 아길라(렌지 펄리즈)를 아들 삼듯 훈육한다. 소피아는 아들이 아니라 제약이 크다. 한편 <더 펭귄> 바깥의 중요한 아들은 음악감독 믹 저키노다. 이번 작품에서 수많은 팝의 명곡을 서사에 맞게 양적 공세해낸 믹 저키노는 <업> <더 배트맨>의 음악감독 마이클 저키노의 아들이다. 아버지 못지않게 감각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