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 사망했다. 석연치 않은 그의 죽음을 뒤로한 채 추기경들은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선거 ‘콘클라베’를 빠르게 추진한다. 이 콘클라베는 추기경 단장 로렌스(레이프 파인스)가 이끌며 콘클라베에 참석하기 위해 선거권을 갖고 있는 추기경들이 전세계에서 소집된다. 이들은 득표가 과반수를 넘은 후보가 선출될 때까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투표를 진행한다. 추기경들도 은연중 파가 나뉘어져 있다. 벨리니(스탠리 투치)는 로렌스를 비룻한 진보주의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반대편엔 보수주의자 대표로 나선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가 있다. 그러나 과반수 표를 얻어낸 건 나이지리아 출신의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였다. 첫 흑인 교황이 선출될 찰나, 로렌스가 아데예미의 과거 추문을 확인하고 선거 결과를 무효 처리한다. 이후 투표가 반복되며 후보군이 추려지고 오직 교황만이 정체를 알고 있던 ‘인 펙토레’ 추기경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스)가 의외의 키를 쥔 인물로 급부상한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로 제95회 아카데미 음악상, 미술상, 촬영상, 장편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의 신작이다. 소설가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이 바탕이 된 작품으로 로버트 해리스가 직접 영화의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영화는 콘클라베를 통해 가톨릭계 내부 구조를 들여다본다. 추기경들의 종교적 신념보다는 그들의 권력욕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에 종교영화라기보다 가톨릭계 권력자들의 암투극을 다룬 스릴러물에 가깝다. 영화는 추기경들이 벌인 부정을 숨기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입장이 얽히는 와중에 가장 복잡한 심정을 내비치는 인물은 로렌스다. 그가 콘클라베의 총관리자이자 추기경들의 무결함을 증명해야 하는 주체, 차기 교황 후보로도 호명되는 독특한 위치에 놓인 탓이다. 그의 손을 거쳐 추기경들의 비리가 밝혀지고 자신을 포함한 몇몇 추기경들로 교황 후보가 추려지면서 로렌스는 묘한 혼란을 겪는다. <콘클라베>는 픽션을 기반으로 종교인들의 이면을 파헤치는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들 역시 욕망에 흔들리는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려는 인상이 강하다. 그로 인해 가톨릭계에 한정짓지 않고 정계를 비롯한 타 조직 권력자들의 음모, 비리를 대입해 논해볼 여지를 안긴다.
로버트 해리스와 각본가 피터 스트로갠은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제정한 규칙들, 가령 교황이 사망했을 때 그의 반지를 부수고 방을 봉인해야 하며 투표 용지 보존을 위해 구멍을 뚫는 등 콘클라베에 필요한 사항들을 작품에 엄격하게 반영했다. 덕분에 콘클라베의 과정이 보다 정교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이 처음부터 로렌스 역에 캐스팅할 계획이었다는 배우 레이프 파인스는 단장이자 교황 후보로서 갖는 로렌스의 내적 갈등을 묵직하게 연기해냈다. 남성 추기경들이 완력 다툼과 스캔들로 스러져갈 즈음, 아그네스 수녀(이사벨라 로셀리니)와 같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이 통쾌함을 안긴다. 제97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각색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8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close-up
고해소 밖에서 이루어지는 고해성사의 순간들. 진실이 밝혀질 때마다 차기 교황 자리에 오를 인물은 더욱 예측 불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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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황> 감독 페르난두 메이렐르스, 2019
베네딕토 16세(앤서니 홉킨스)가 자진해 교황 자리에서 내려온 뒤 프란치스코(조너선 프라이스)가 그 뒤를 잇는 여정이 담겼다. <두 교황>에서도 콘클라베가 이뤄지지만 <콘클라베>처럼 후보간의 완력 다툼이나 수면 아래의 스캔들이 드라마틱하게 끌어올려지기보다는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가 종교인으로서의 신념, 고뇌 등을 나누는 과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새 교황 자리를 두고 벌어질 법한 픽션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교황>과 <콘클라베>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