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븐>과 <파이트 클럽>, 어둡고 심오한 묵시록
<쎄븐>에 이은, 데이비드 핀처의 진정한 걸작은 <파이트 클럽>이다.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심오한 묵시록의 세계. <파이트 클럽>은 <존 말코비치 되기>와 함께 지난 10년간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가장 논쟁적이고, 위대한 작품의 하나다. <파이트 클럽>은 한 남자의 자기분열적인 욕망과 초월에 관한 이야기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남자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모임에서 ‘고통’을 느끼려 한다. 하지만 그건 고통이 아니다. 그는 타일러를 만나고, 무정부주의자이며 도시의 게릴라인 그 남자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진짜 ‘고통’을 느끼는 파이트 클럽을 알게 된다. 일 대 일로 싸우며, 한쪽이 패배를 시인할 때까지 주먹으로 치고받는 파이트 클럽. 파이트 클럽에서 비로소 자신을, 세상을 만난 남자들은 세상의 질서를 비웃으며, 조직적인 테러에 들어간다. <파이트 클럽>이 ‘마초이즘과 파시즘의 경계’에 놓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핀처는 “남자다움에 대한 우리의 혼란과 복잡함에 대한 공격 그리고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혹자는 ‘놀랍도록 무책임한’ 영화라고도 평한다. <파이트 클럽>은 격렬하게 비난하고 싸운다. 경계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베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입 속에 총알을 쑤셔놓고 살아난 그 남자는, 역경을 헤쳐온 연인과 함께 마천루가 즐비한 야경을 바라본다. 후기 자본주의의 상징인 금융회사의 건물들이, 무역센터처럼 하나둘 허물어져 내리는, 그 황홀한 광경을.
<파이트 클럽>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이토록 극단적인 영화가 할리우드의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 데이비드 린치가 그토록 조롱하는, 몽상의 세계 할리우드의 중심에서 극단적인 운명론을 설파하는 감독이 성공한다는 것은. 데이비드 핀처는 게임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핀처는 상업주의의 첨단인,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성장해왔다. <파이트 클럽>의 인상적인 장면 하나는, 에드워드 노튼이 자신의 아파트를 거닐면 카탈로그에 있는 상품들이 설명과 함께 자리를 잡는 환상적인 풍경이다. 그는, 우리는, 상품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환영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파이트 클럽>은 삶을 조작하는 상품을, 라이프스타일을 공격한다. 핀처는 80년대 광고를 만들면서 대중을 현혹시켰던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뛰어난 CF가 예술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말한다. “뛰어난 광고는 상품을 초월한다”는 것.
고통 속에 발견하는 세계
사실 데이비드 핀처의 명성은, ‘상품’을 만들면서 드높아졌다.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작가’의 경지에 오른 핀처는, ‘필름’인 <쎄븐>과 <파이트 클럽>으로도 흥행에서 탁월한 성공을 거두었다. 리들리 스콧처럼 “이제는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허리를 굽히지도 않는다. 그는 ‘주류이면서도 개인적이었던’ 히치콕 영화 같은 작품을 원한다. 핀처는 “나는 내가 원치 않는 것은 결코 한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데이비드 핀처는 경계와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철학적, 사회적 경계와 기술적 경계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있다. 그것은 완벽주의적인 성향 덕에 더욱 빛을 발한다. <파이트 클럽>은 일반 영화의 세배인 1500릴의 필름을 사용했다. 한 장면을 10번 촬영하는 것은 기본이고, <패닉 룸>에서는 100번이 훨씬 넘는 장면도 있었다. 배우들의 부상도 잦다. <쎄븐>에서 브래드 피트가 팔에 감고 나오는 붕대는 진짜다. 촬영중에 당한 부상 때문에, 실제로 깁스를 하고 찍었다. <패닉 룸>의 니콜 키드먼은 다리 골절 때문에 중도하차했다. <패닉 룸>의 한 배우가 “핀처는 배우들을 실제로 공포에 질리게 한다”고 말할 정도다. <쎄븐>의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는 <패닉 룸>에서도 함께 출발했지만, 도중에 그만뒀다. 의견 차이 때문이다. 핀처의 삶의 원칙은 ‘최선을 다 하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원칙을 종종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요구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핀처의 영화는, 다수의 관객을 사로잡는다. 동시에 소수에게 열광적인 찬사를 받는다. 핀처의 영화는 감각을 뒤흔들어놓는 도발적인 영상이 관객에게 조응한다. 하지만 단지 영상만이 아니다. 근저에 깔려 있는 에너지가 과격하게, 동물적으로 분출한다. “날것의, 도발적인 폭력의 양상을 좋아한다”는 말처럼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는 폭력적이고,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감독이란 자학적인 노력’이란 말처럼, 영화를 찍는 일 역시 불편한 것이고 고통이다. 핀처가 좋아하는 영화도, <차이나타운>처럼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영화다. 그 불편함에서, 그 고통에서 핀처는 자신을, 세계를 찾아간다. <파이트 클럽>의 사내들이, 육체의 고통에서 자신을 발견했던 것처럼.지금 데이비드 핀처가 준비하고 있는 영화는 2004년 개봉예정인 <미션 임파서블3>, 그리고 의 작가 제임스 엘로이 원작의 <블랙 달리아>, 아서 클라크 원작의 <라마와의 랑데부>다. 여전히 무비와 필름이 뒤섞여 있다. 데이비드 핀처는 결코, 어느것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어느 순간엔가는, 그런 구분조차도 사라질 것이다. 무비와 필름의 구분조차도 없는, 가해자와 희생자가 구분되지 않는 <쎄븐>의 세계처럼, 매혹당하면서도 욕설이 터져나올 그런 영화. 만약 할리우드 메이저에서 가장 논쟁적인 영화가 등장한다면, 그 감독은 분명 데이비드 핀처일 것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디자인 임정숙 norii@hani.co.kr▶ <패닉 룸>으로 돌아온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세계, 그 고통의 희열(1)
▶ <패닉 룸>으로 돌아온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세계, 그 고통의 희열(2)
▶ <패닉 룸>의 촬영
▶ 데이비드 핀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