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봉준호 출연 로버트 패틴슨, 나오미 아키에, 스티븐 연 개봉 2월28일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2054년 외계 행성 니플하임, 지구를 떠나 새로운 정착지를 찾는 인류를 위해 '익스펜더블'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위험한 실험을 대신하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 미키(로버트 패틴슨) 이름 뒤에 붙는 숫자도 지금까지 그가 받아들여야만 했던 죽음의 횟수를 보여준다. 윤리 문제로 지구에서는 전면 금지된 휴먼 프린팅은 외계행성으로 고향의 깃발을 뻗어나가는 인간에게 유용한 기술이다. 동명의 원작 소설의 세계관을 이어 받은 봉준호는 이번에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으로 관객을 반긴다. 오늘 시사회를 막 마친 기자·평론가들이 첫 반응을 전해왔다.
송경원 기자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 생명 윤리, 정치 풍자, 철학적 딜레마 등 (봉준호의) SF 디스토피아 물이 다룸직한 요소를 총체적으로 훑으며 성실하게 포개 놓았다. (좋은 의미와 아쉬운 의미 모두) 쉽고 친절하고 모범적인 상상력. 있을 건 다 있는데 깊게 발 담그진 않는다. 선을 넘지 않는 착한 태도에 불만족스러울 순 있어도 매끄러운 완성도에 불평하긴 어렵다.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조차 몇몇 장면에선 섬뜩한 디테일과 기이한 뒤틀림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원맨쇼라 해도 과언이 아닐 로버트 패틴슨의 남루한 연기는 독보적이다.이자연 기자
2054년, 영 멀지 않은 시대에 인류는 거주지를 스스로 선택한다. 여기서 인류란 무엇일까. 용감한 개척자, 외로운 이민자, 혹은 이기적인 식민지배자. 오로지 빚더미가 무서워 지구를 떠난 미키는 보험이나 산업재해, 노동조합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띤다. <미키 17>은 로맨스, 블랙 코미디, SF 등 다양한 장르가 정신없이 뒤섞이는 와중에도 착취적인 자본주의와 디아스포라가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쥐고 흔드는지 견고하게 보여준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미키를 복제하는 방식에 있어서 독특한 지점은 그의 기억과 성격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점이다. 복제의 대상이 꼭 미키여야 할 이유도, 그의 전부를 보존해야 할 당위도 거의 없다. 어릴 적 겪은 특수한 사건으로 인한 내상에 시달리는 그는, 어떻게 보더라도 완벽한 인류의 표본처럼 보이진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진화에 관한 저항이다. 진화의 믿음이 깨어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선택을 소동으로 탈바꿈한다. 웃음 속에 깃든 슬픔인지, 슬픔 속에 깃든 웃음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것이, 틀림없이 봉준호 영화로구나 싶다.
최현수 객원기자
광대무변한 우주에도 밀리지 않는 이야기꾼의 부피감. <설국열차>의 계급론과 <옥자>의 생태주의를 아우르는 <미키 17>은 그가 거쳐온 담론을 모두 흡수한 거대한 블랙홀처럼 보인다. 격양된 몸짓의 전방위적인 풍자부터 트랜스 휴머니즘을 훑는 육체적 이미지까지 장르와 방법론이 혼종 되면서 흥미로운 영화적 화학반응이 끝없이 이어진다. 봉준호의 작가적 여정에서도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 인생에서도 새로운 분기가 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