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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리보기 [2]
김혜리 2002-06-21

미래 시제의 리얼리즘

지난해 <A.I.> 완성에 즈음해 인공지능 연구자들을 MIT에서 열린 프레스 정킷에 초대했던 스필버그는 이번에도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제출하기 위해 ‘싱크 탱크’라고 명명된 세미나부터 소집하는 우등생다운 태도를 보였다. 샌타모니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사흘간의 이 세미나에 초청된 것은 의 작가 더글러스 코플랜드를 비롯해 테크놀로지, 사법, 도시계획, 건축의학, 환경, 건강, 사회복지, 교통, 컴퓨터계의 권위자 스물여덟명. 5년, 10년, 50년 뒤 미래사회의 디테일에 대한 이들의 토의가 벌어진 컨퍼런스의 열성적인 청중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작진이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싱크 탱크의 운영은, 필름누아르의 렌즈를 빌려오는 것과 아울러 스필버그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초안을 잡으며 세운 또 하나의 대원칙 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었다. 그것은 바로 ‘공상과학’의 딱지를 거부하거나 다른 각도로 규정해보겠다는 것. 즉, 낯설고 신기한 미래를 자유분방하게 공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재를 거기 잠재된 미래를 포함하여 사실적으로 재현한다는 가이드라인이다(스필버그는 이미 에서 비슷한 시도를 보여준 바 있다). 요컨대 미래시제의 현실이며 현재시제의 미래다. 이에 따라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그려진 52년 뒤의 미래는 핵전쟁이나 로봇의 반란 같은 묵시록적 재난이 야기한 단절없이 2002년 현재의 현실과 뼈와 근육이 연결돼 있으며 테크놀로지는 여전히 세계에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순치된다.

뜻은 바람직하지만 실제 영화화 작업에서 이 원칙을 어떻게 관철할 수 있을까. 단순화하자면 “눈에 익은 배경의 컨텍스트 위에 눈이 확 뜨이는 소품을 배치하는 일”이었다고 프로듀서 보니 커티스는 설명한다. 스필버그는 예컨대 50년 뒤의 워싱턴이 백악관과 워싱턴 모뉴먼트, 캐피털 빌딩을 그대로 보유한 채로 교통 네트워크와 생활권의 변형을 보여줄 것이라고 보았다. 테크놀로지는 현재 성업중인 의류 브랜드 체인점들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들어가는 순간 속옷 사이즈를 말해주는 전광판을 더해줄 뿐이다. “우리의 디자인들이 지나치게 판타스틱해질라치면 스필버그가 항상 제동을 걸곤 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렉스 맥도웰은 말한다.

사진설명돌연변이 예지자 중 유일하게 존 앤더튼과 교류하는 애거사는 더 큰 음모와 비밀의 열쇠가 된다.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는 신령한 존재로, 프리크라임 내부자들에게는 영약을 채취할 수 있는 ‘희귀 식물’ 취급을 받는 예지자들은 자궁 형태의 탱크에 넣어져 영원히 폭력과 살인을 꿈꾸는 가혹한 운명을 감당한다. 프리크라임의 전국 의장 라마 버지스(막스 폰 시도)는 과학자 아이리스 하이네만의 연구 결과에 기초해 프리크라임 조직을 창시한 인물이며 고독한 존 앤더튼에게는 부성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는 범죄로 파괴된 과거를 가진 앤더튼을 내세움으로써 프리크라임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광선검 결투와 우주전쟁이 나오지 않는다고 반드시 시각적 세공의 품이 덜 든다는 뜻은 아니다. 우주선과 신무기만큼이나 신형의 탈것과 새로운 먹거리, 개인 통신기기의 디자인은 많은 맨파워를 요구하며 오히려 더 관객의 민감한 품평에 노출돼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스필버그 영화로서는 <미지와의 조우> 이후 최다인 450개의 시각효과가 덧입혀졌고 ILM과 PDI/드림웍스를 포함한 7개 특수효과 회사가 동원됐다. 봉제선이 드러나지 않는 시각효과와 일상과 밀착된 미래의 발명품들을 필름누아르의 캔버스 속에 쏟아부음으로써 스필버그는 관객이 미래를 현재의 연장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첨단 테크놀로지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영화의 미스터리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후더닛(whodunit: 미스터리스릴러 장르의 별칭), 혹은 (아직 저질러지지 않은 범죄 동기를 캐는) ‘후윌두잇’이며 매우 인간적인 스토리다.” 물론. 스필버그 영화의 가장 오랜 ‘특수효과’인 휴머니즘의 후렴구도 존 앤더튼의 가족에 대한 갈증, 착취받는 예지자들의 고통을 부각시킴으로써 존 윌리엄스의 반주에 실려 또 한번 울려퍼질 듯하다. 얼마 전 스필버그는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실험과 내게 도전하는 것들을 건드려보는 시기에 있다”고 토로했다. 그 실험실에서 나올 리포트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요란하게 읽히는 보고서가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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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20세기 폭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