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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의 타인의 우주] 나의 최초의 꿈

새해가 밝았다. 워낙 목표, 계획을 뚜렷하게 세우는 편은 아니라서 1월1일의 아침도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맞이했다. 늦은 오전, 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할머니! 곧 찾아뵐게요! 힘들게 아무 요리도 하지 마시고 계셔요!”라고 하면 할머니는 바로 “무슨 음식이 제일 먹고 싶니?” 하신다. 대화가 한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지만, 또 그렇게 사랑을 가득 느끼고 전화를 끊는다. 전화 통화에서 스쳐 지나가듯 계란찜을 먹고 싶다고 하긴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새벽부터 계란찜을 만들고 기다리고 계셨다(계란찜뿐만 아니라 온갖 반찬에 국, 막 새로 한 밥까지). 할머니댁 대문을 열자마자 코끝에 퍼지는 따뜻한 냄새들. 아니다, 향기라고 해야겠다. “아이고, 할머니!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니까, 못 말려!”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아, 이성을 잃은 채 식사를 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차린 게 없어서 어떡해. 미안해, 우리 손녀”라고 하신다. 후식으로 직접 담그신 식혜를 주시면서도 계속 더 챙길 것이 없는지 바쁘게 움직이셨다. 할머니의 음식 안에는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는 느낌이다.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의 설렘, 손녀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 혼자 흘리시던 외로웠던 시간, 백색소음만이 가득한 적막의 공간, 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퍼지는 함박웃음. 나는 할머니 품에 꼬옥 안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의 이야기를 절대 잊어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의 새해 다짐이었다.

할머니는 7남매의 어머니이시다. 외삼촌, 외숙모, 이모부, 이모들의 생일은 물론이거니와 손자, 손녀들의 생일까지 다 기억하신다. 매번 잊지 않고 전화를 주시는데, 끝인사는 항상 “할머니가 우리 민하 하늘만큼 땅만큼 무지무지 사랑해”이다. “사랑하는 우리 민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예쁜 나의 손녀 항상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민하 진심으로 사랑한다. 민하야 네가 하고 싶은 일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하기 바란다. 이 외할머니는 배운 것 없고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항상 사람 앞에 서면 준욱이 든단다. 우리 민하는 모든 것이 다 예쁘고 공부 많이 하고 어듸서나 당당하지. 사랑하는 민하 할머니 친구들한테 자랑한단다. 앞으로 너의 소원 잘 이루엇으면 좋켓다. 삼공주 내가 제일 사랑한단다. 할머니 글씨 읽기 힘들을 것이다. 고쳐가며 읽어다오. 사랑한다 요놈 세 새끼. 이만 그친다. 민하야 잘 있거라. 이지수 외할머니 보바나가 씀(보바나 거꾸로 읽어보거라) 하하 우수어라. 민하야.”

대학 졸업 당시 할머니가 써주셨던 편지다. 나는 이 편지에 답장을 하지 못했다. 귀여움이 한도 초과인 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펑펑 쏟은 기억만이 있다. 몇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손을 잡으며 이야기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 할 줄 아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 누구보다 열정이 넘치고 한지같이 고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우리 할머니라고 확신하며 살아왔다고.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나의 최초의 꿈은 할머니였다고. 조금 더 늦기 전에 할머니의 진심에 내 음성으로 회신하리라. 또 다른 새해 계획이 생겼다.

할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사람은 마음이 고와야 한다고 말이다. 어긋나지 않는 마음이 가장 큰 무기라고 말씀하셨다. 명절날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강인하게 내뱉으신 그 문장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내가 안고 살아온 가치관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마음이 고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뒤틀린 순간에도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를테면 본연의 마음, 순수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정신, 마음이 닿는 한의 이해심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것들을 잃을 것 같다는 순간들이 올 때가 많다. 여러 경험을 통해 발전할 때도 많지만 가끔은 지쳐서 판단이 잘 되지 않을 때, 모든 것이 갑자기 수수께끼 같을 때, 자신이 너무 싫어 앞이 뿌예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 놓고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머니의 세월과 목소리를. 그래서 나는 그녀가 어떻게 우리에게 사랑을 줄 수 있었는지를 상상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 말이 또 어디론가 흩어져버릴까봐 또다시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그런 위대한 진심을 생각한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 보면 용기가 생기는 날이 많다. 그래, 나는 ‘어듸서나 당당한’ 김민하야, 하면서 말이다.우리 할머니는 1929년생이시다. 지난해 태어난 나의 첫 조카는 2024년생이다. 거의 1세기 차이가 나는 이 두 여성에게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참으로 벅찬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채이에게도 흐르길. 채이의 온도가 할머니를 따뜻하게 감싸주길 혼자 소망하며 둘이 만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 날 이었다.

2월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2025년이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시작한 새해이지만 생각해보면 항상 이렇게 느낀 점과 다짐들이 모여 새로운 세월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새해를 맞이한 여러분의 느낌도 궁금하다. 듣고 싶다. 아직은 바람이 차지만, 겨울을 작별하듯 비추는 햇살이 심상치가 않다. 봄이 올 것만 같다. 겨울의 끝자락을 모두 각자의 이야기로 채워나가시길 바라며, 독감이 유행하는 요즘,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당부드린다.

다음 글에는 벚꽃라떼를 마시며 만날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