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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1)
2002-06-21

“니 눈엔 내가 스탭으로 보이니?”

믿거나 말거나, 최근 <씨네21>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받았다. 그 봉투 안에는 놀라운 서류가 담겨 있었다. ‘충무로 귀신박멸 프로젝트를 위한 기초 수사 회의록’이란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서류에는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한국영화계의 귀신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글에 따르면, 이 기록은 ‘세계 귀신박멸단(International Ghost Busters) 한국 지부’라는 정체불명의 조직 내 회의를 정리한 것이었다. 이 회의록의 앞부분에는 이 회의가 한국영화계 주변에 자주 출몰한 귀신을 퇴치하기 위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열린 것이라는 정황도 적혀 있다.

이 충격적인 기록을 접수한 뒤, <씨네21> 내부의 비밀조직인 ‘믿거나 말거나 연구위원회’는 기사화할 것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상당한 논의가 진행된 뒤 우리는 이 기록에 인용된 관련 인물들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결론을 내리자고 합의하게 됐다. 확인 작업이 진행됐고, 놀랍게도 이 회의록에 적힌 갖가지 귀신 목격담과 괴이한 이야기들은 근거가 있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이 기록에 이름을 올린 충무로 관련 인사들은 스스로 귀신을 목격한 것인지, 아닌지를 확신하진 못했지만 그런 ‘현상’을 겪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않았다.

다음의 내용은 이 회의록의 내용이다. 이 기록을 공개하면서, 독자 여러분에게 미리 몇 가지 양해를 부탁한다. 우선 상당히 중요한 내용이 적힌 것으로 보이는 이 서류의 뒷부분 한장은 의도적으로 폐기된 듯 보여, 우리로서도 매우 아쉽다는 점. 또 하나는 이 글을 기사로 정리하고 나자 얼마 뒤 ‘귀신이 곡하는’ 격으로 이 서류가 사라졌다는 것. 때문에 이 서류의 실재 여부를 파악하려는 관계 당국 및 독자 여러분의 뜻을 받들 수 없게 됐다. 마지막으로 노약자, 유아 및 임신부의 경우 이 글을 절대 보지 말 것이며, 평소 심장질환을 앓아왔거나 월드컵을 밤샘 시청하느라 최근 들어 부쩍 심약해진 분들도 가급적이면 이 페이지들을 뛰어넘길 부탁한다. 자 그럼, 이제부터 시작이다. 믿거나 말거나.

충무로 귀신박멸 프로젝트를 위한 기초 수사 회의록

국장: 몰더 요원, 그리고 스쿨리 요원, 제출한 보고서는 잘 봤네. 그럼 바로 시작하지.

스쿨리: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시를 받아 수사를 진행했습니다만, 이 일을 수사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국장: 최근 우리는 월드컵을 맞아 한국에 귀신들이 총집결한다는 제보를 입수했네. 그렇게 한국에 들어온 귀신들이 최근 세계영화계의 열렬한 반응을 얻고 있으며, 산업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충무로에 진드기처럼 눌러붙으려 한다는 내용도 함께 말이지. 이번 기초수사는 이들 귀신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실태 파악이라 할 수 있네.

몰더: 스쿨리 요원은 모르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첫 번째 파일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FILE NO .1 <무사>의 김성수 감독이 만난 할머니 귀신은 누구?┃

<무사>의 강행군이 막바지에 이르던 2000년 말, 중국 시청 지방에 자리한 토성(土城) 오픈 세트에선 괴담이 만발했다. 고려 무사들의 최후 결전을 촬영하기 위해 온 이곳에서는 악으로 깡으로 버텨온 스탭과 배우들의 피로와 향수병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50일가량 이뤄진 이곳 촬영의 중반 무렵, 스탭과 배우들 사이에서 괴이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흰옷을 입은 할머니 귀신이 출몰한다는 이야기였다. 발단은 서울액션스쿨의 한 스턴트맨에게서 시작됐다. 고된 촬영이 연속되다보니 틈만 나면 스탭이나 배우는 촬영장에서 선잠을 청했는데, 그 역시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한데 그의 곁을 지나던 제작진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잠자고 있는 그의 머리가 바닥에서 떨어져 공중에 떠 있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그에게 사정을 물어보니 뜻밖의 답이 나왔다. “누가 무릎을 대줘서 그걸 베고 잤는데….” 하지만 촬영장의 그 누구도 그에게 무릎을 빌려준 적은 없었다. 그 이후 촬영장과 숙소에서 할머니 귀신을 봤다는 스탭들이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배우 안성기씨가 김성수 감독에게 “저런 쓸데없는 이야기가 현장에서 도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본래부터 귀신의 존재나 괴담을 믿지 않는 김 감독은 스탭과 배우를 불러 모아놓고 “아니, 왜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나 하고 다니냔 말야”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김 감독은 당시 하루에 1∼2시간밖에 잠을 잘 수 없는 힘든 나날을 보고 있었는데, 그날 따라 피곤해 새벽 2시쯤 침대 위에서 잠을 청했다. 좀처럼 잠자는 도중 깨지 않는 그는 이상한 기척을 느껴 눈을 떴다. 그런데 방 한구석에 하얀 옷을 입은 할머니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도 놀라다보니 강골로 소문난 김성수 감독도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고 잠이 번쩍 깼다.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방금의 장면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눈을 뜨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힘차게’ 눈을 뜬 순간,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 할머니가 자신의 눈과 불과 1cm도 안 되는 거리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던 것. 유난히 짙은 눈썹과 눈동자밖에 볼 수 없었지만, 분명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는 너무나 섬뜩해 다시 눈을 감고 말았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자니, 싸우고 욕을 해서 귀신을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먹이라면 꽤 자신이 있던 그였지만 온몸이 말을 듣지 않아 별 소용이 없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귀신을 물어뜯으려고 시도했지만, 곧 탈진 상태가 됐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다. 왠지 몸이 뻐근하고 무거웠지만, 그는 “내 참, 살다보니…”라고 중얼거리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한 뒤 면도를 하고 있던 그는 자신의 목 아래에 보지 못했던 상처가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빨간 세개의 줄이 가늘게 목 아래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내복과 스웨터를 몇겹씩 입는 탓에 파카의 지퍼 따위에 긁혔을 리도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한 일은 그 상처가 열흘 정도 처음 상태가 유지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췄던 것이다.

국장: 으흠. 괴이한 일이군.

몰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사>에 출연했던 배우 주진모도 토성 촬영을 하던 중 괴이한 일을 겪었다. 어느 날 아침, 매니저가 그의 방으로 들어가보니 주진모는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왜 바닥에서 잤냐는 매니저의 말을 듣자, 그의 뇌리 속에 전날 밤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애초 그는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잠에 빠졌다. 그런데 침대 위 천장에서 누군가 “야, 빨리 내려가”라고 신경질을 냈다는 것. 그래서 “제가 너무 피곤하거든요”라고 대꾸하다가 그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하도 재촉하기에 바닥으로 내려가서 잤다는 얘기였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전날 밤 유독 주진모가 피곤해 보였기에 매니저가 직접 방에 데려다 주고, 침대 위에서 잠이 드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침대는 누가 손을 댄 듯,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는 점이었다. <무사>의 괴담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후반작업이 이뤄졌던 호주의 사운드록 사운드 디자인의 사무실과 숙소에서 연출부 여러 명이 각기 다른 시간에 여자 귀신을 만났다고 한다.

스쿨리: 하지만 이 사건을 귀신의 소행으로 보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김 감독이 겪은 일은 가위눌림 증상과 매우 유사합니다. 또 다른 스탭의 경우도 5개월 동안 중국 대륙 1만km를 횡단하며 쌓인 피로와 긴장이 마지막 촬영지에서 이런 식으로 나타난 것일 수 있습니다. 특히 타지에서 오랜 고생을 겪다보면 향수병이 강력해 이런 착시현상을 잘 일으킨다고 합니다. 베트남에서 이뤄진 <하얀 전쟁> 촬영 때 배우들이 겪었던 귀신 소동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얀 전쟁>을 연출했던 정지영 감독도 “피로와 향수병이 겹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합니다.

몰더: 잠깐. 그래도 당시 스탭과 김 감독이 본 형상이 공통적으로 흰옷을 입은 할머니였다는 점은 풀리지 않습니다. 또 이 영화의 프로듀서였던 나비픽처스의 조민환 대표는 <무사>와 관련된 이들 괴담에 대해 “절반은 믿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촬영을 위해 중국에 들어갔을 때 중국쪽 프로듀서를 맡았던 장샤는 “이런 정도의 영화를 하다보면 가장 운이 좋은 경우라도 최소한 두명은 죽는다”고 말했답니다. 그녀의 충고가 근거없는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그는 촬영에 앞서 스탭과 배우의 안전에 최우선을 기했고, 촬영지를 옮길 때마다 토지신에게 고사를 올렸죠. 고사문에서 가장 앞서 나오는 말도 건강, 안전이었고요. 그는 “<무사>가 결국 큰 사고없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데는 오히려 귀신이 도와준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합니다.

국장: 결론은 나중에 내리기로 하지. 다음 파일로 가자고.

FILE NO .2 ┃왜 <단적비연수>의 스탭들은 귀신을 따라나섰을까?┃

<단적비연수>의 프로듀서였던 이성훈씨는 촬영작업 당시 촬영지만 떠올리면 왠지 찜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 촬영을 위해 헌팅한 곳마다 나중에 알고보면 꺼림칙한 곳이었다. 경남 산청에 마련한 세트도 한국전쟁 당시 엄청난 양민학살이 있었던 곳이었고, 매족 신단 세트를 지어놓은 전북 부안도 공동묘지를 파헤쳐 놓은 곳이어서 심지어 마을 사람들도 좀처럼 가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불안한 기운이 그의 눈앞에서 현현한 것은 제주도의 검은오름이라는 곳에서 촬영할 때였다. 최진실이 늪에 빠지는 장면을 찍기 위해 스탭과 배우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헌팅한 장소까지 버스를 타고 들어가기는 무리여서 모두들 내려서 200m 정도를 걸어 들어가야 했다. 이 PD의 앞쪽에는 분장팀 2명이 걸어가고 있었고, 나머지 스탭들도 이들을 뒤따랐다. 얼마쯤 걸었을까. 길이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앞의 분장팀 스탭들이 촬영장소쪽으로 안 가고, 왼쪽의 갓길로 접어드는 거다. 그쪽에 화장실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일까 싶어, 몇번을 불렀다. “야, 어디로 가는 거야?” 그러자 “우리 저 언니 따라가는데요”라는 답이 들렸다. 이 PD는 의아했다. 그들 앞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누굴 따라간다고?”라고 재차 물었다. “저…언니….” 분장팀 스탭들은 자신들을 인도한 누군가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없어졌음을 느꼈다. 결국 이 PD는 이들을 불러서 길을 되돌려 촬영장으로 향하게 했다. 밤샘촬영은 그렇게 시작됐고, 순조롭게 마쳤다. 다음날 아침, 기분좋게 돌아오는 길에 그 문제의 갈래길을 지나던 이 PD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앞에 세워진 표지판을 봤기 때문이다. 전날 분장팀 스탭들이 가려고 했던 그 길에는 ‘xx화장터 200m’라고 적혀 있었다.

몰더: 결국 화장터의 귀신에 이끌려 잘못된 길로, 어쩌면 위험한 길로 들어설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스쿨리: 몰더, 어떻게 그렇게 단정지을 수 있죠?

국장: 싸우지들 말게. 다음 파일을 보자고.

FILE NO .3 ┃죽은 아버지, 필름 위에 재림하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촬영을 했던 . 이날의 촬영분은 JBI의 국장이 사이고(나카무라 도루)의 집을 찾아 숨겨진 역사의 비밀을 설명하는 장면. 일본의 한 전통가옥에서 이뤄진 이날 촬영 중 핵심은 국장과 사이고가 마루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모니터를 보던 이시명 감독은 두 사람 뒤쪽에 누군가 어른거리는 듯해 “NG!”를 외쳤다. 그는 도대체 누가 신성한 영화촬영을 방해하나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웬걸,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실수를 저지른 뒤 재빨리 숨었구나 싶어, 이 감독은 ‘범인’을 적발하기 위해 촬영장면을 모니터를 통해 다시 되돌려 봤다. 아니나 다를까, 화면 안에는 사람 비스무레한 형체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인물이 아닌가. 결국 그는 스탭과 배우에게 화면 속 주인공이 누군지 물어봤다. 모두 갸우뚱하고 있을 때, 국장 역할을 맡았던 일본 배우가 소리를 쳤다. “앗, 저분은 우리 아버진데….”

몰더: 다음 사건도 비슷합니다.

▶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1)

▶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2)

▶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3)

▶ 충무로 영계 연구가 이광훈 감독

▶ 괴담의 해외 사례들

▶ 원귀의 본산, 서울종합촬영소

▶ 영상원의 유령 목격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