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모두를 위한 게 아니었다.”
〈비포 나잇 폴스〉(2000)는 쿠바의 작가였던 동성애자 레이날도 아레나스의 동명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찢어지게 가난한 농촌에서 자라던 소년은 타고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 아바나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개방적인 도시 아바나에서 동성애자들은 자유를 만끽한다. 하지만 1959년 혁명 성공 이후 혁명 사수가 최대의 과제인 카스트로 정권에게, 이들은 국가정신을 좀먹는 존재였고 대대적인 탄압정책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쓰레기”라고 자기비판하고, 동성애자인 동료 작가를 비난해야 했다.
레이날도 또한 도피생활 끝에 붙잡혀 ‘강간, 살인, 시아이에이 첩자’라는 죄목으로 엘 모로 감옥에 2년간 투옥된다. 동료 죄수들의 편지를 대필하며 얻은 종이와 연필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몰래 쓸 수 있었다. 그의 40년 가까운 쿠바 생활에서 공식적으로 출간된 책은 단 1권, 나머지 8권은 모두 비밀리에 해외로 내보내져 빛을 보았다. 영화는 가려졌던 쿠바혁명의 그늘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80년 미국으로 추방된 그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구원해줄 수 있는 길, 죽음을 선택한다. 1990년의 일이었다. 그저 자유롭기만을 갈망하던 한 인간을 받아주는 땅은 사회주의의 쿠바도, 자본주의의 미국도 아니었던 것이다.
몽환적인 화면과 아름다운 시, 쿠바의 공기를 실어 보내는 듯한 맘보 음악 등으로 영화는 짙은 잔상을 남긴다. 〈하몽하몽〉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국민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의 레이날도 연기나, 마초인 중위와 게이의 1인2역을 해낸 조니 뎁은 영화를 빛내준다. 21일 개봉.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