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소녀감정이라 말할지 모르겠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신데렐라〉의 요정할머니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샬라카 둘라 멘치카 불라~’ 주문을 외거나, 〈정글북〉의 모글리와 곰이 배를 두드리며 춤을 추는 장면은 떠올리기만 해도 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그래서인지 디즈니랜드에서 밤에 펼쳐지는 미키마우스를 앞세운 반짝이는 퍼레이드를 보다가 눈물을 글썽거린 기억도 있다. 지난주 〈릴로&스티치〉 제작진 인터뷰를 위해 찾은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디즈니월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폭포가 있는 무대 위에서 미키마우스가 나와 갖가지 레이저빔으로 디즈니의 캐릭터들을 보여주는 쇼를 보니 디즈니월드 곳곳에 서 있는 ‘디즈니 100년간의 마술’이란 표어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디즈니는 여전히 사람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코드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들이 말하는 ‘꿈과 환상’이란 게 도대체 뭔가라는 생각을 곰곰이 해볼 기회가 있었다. 월트 디즈니의 조카이자 현재 디즈니그룹의 부회장인 로이 디즈니,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사장 토머스 슈마커 등 경영진과의 인터뷰를 마치고서였다.
“드림웍스가 어떤 시도를 해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디즈니는 다르다. 지난 75년간 쌓아온 사람들의 기대를 버릴 이유가 없다. 특히 적어도 미국에서 중요한 주제는 여전히 ‘가족’이다. 우리 전략은 가치 더하기 오락이다. 오락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가족의 유대’라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그들은 자신감이 넘쳤지만 외부의 비판에 ‘귀를 막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서 언제나 가족은 모든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다. 미국만큼 가족단위가 해체되고 문제가 많은 나라도 없는데 말이다.
〈디즈니의 순수함과 거짓말〉에서 헨리 지루가 “디즈니의 세계에서 순수함이란 역사의 불쾌한 측면을 제거하는 이념적 도구”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도피주의와 역사적 망각과 인위적인 세뇌라는 전략은 미국의 정체성을 백인, 교외 주거지, 중산층 그리고 결혼을 통한 가정생활만으로 정의한다”는 것이다. 새삼 디즈니의 전략을 비난하자는 건 아니다. 나 또한 충분히 디즈니를 즐기니까. 다만 디즈니의 미국식 전략을 전세계인이 똑같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