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앞 광장을 붉은색으로 메운 붉은 악마들, 온 거리를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자동차 안의 청년들, 녹색 구장 속 꽃미남들을 주시하다가 축구경기에 매료된 여성들…. 월드컵을 맞이해 최근 우리 눈앞에 선보이고 있는 풍경들은 너무나도 낯선 것이다. 그런데 혹시 온힘을 다해 자신이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응원하다 이런 생각이 든 적은 없는지.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축구가 뭐기에?”
<속을 알면 더 재미있는 축구이야기>는 이같은 의문에 시원한 답을 주는 책이다. 요즘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라는 ‘본업’보다 ‘축구마니아’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장원재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축구의 본질을 간단명료하게 정의하고, 나아가 월드컵이라는 행사가 갖는 의미까지 친절하게 설명해낸다. 그에 따르면 축구는 전세계가 공히 즐기는 유일한 스포츠다. 육상도 일부 아랍국가에서 마라톤을 법으로 금지할 정도니 축구만큼 보편적이진 못하다. 이런 보편성을 갖고 있는 축구는 그가 보기에 현대의 유사종교다. 그는 만인을 열광케 하는 축구에서 문명간 충돌을 방지하는 “인류구원과 문명화합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인류가 동일한 규칙하에 동일한 목적을 향해 어울리는 제도”인 월드컵대회는 ‘인류 최대의 제전이요 잔치이며 한바탕 대동굿’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축구와 월드컵의 본질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학술서’는 절대로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축구와 월드컵과 관련된 갖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장 교수 특유의 맛깔스런 문체로 담았기 때문이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 때 잉글랜드의 관중이 대프랑스전이 열리기 직전, 프랑스의 상징인 수탉을 살해했다거나 66년 잉글랜드월드컵 당시 조직위원회의 실수로 잃어버린 줄 리메컵을 한 강아지가 찾은 일, 그 대회의 기념우표 속 축구장면이 모두 반칙이었다는 사실, 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때 담배 한대를 피웠다고 선수단 전체에 돌아갈 막대한 포상이 물거품이 된 일, 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홈팀 멕시코가 엘살바도르가 차야 할 프리킥을 대신 차 골을 기록했다는 것 등 그가 보여주는 축구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축구에 꽤나 관심이 있는 팬이라도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축구 때문에 전쟁을 벌였다는 일화는 알고 있겠지만, 훗날 두 나라가 축구 덕분에 따뜻한 우정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가물가물했을 것.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앙숙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려진 바지만, 이 책은 그 발단에서부터 지난 4월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에 의해 베컴이 부상당한 데 대한 아르헨티나 언론의 반응까지, 축구로 매개된 양국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가지면 바람직한 생각과 자세다. 한국식 경기용어, 시축과 같은 요식행위, 광고에만 신경쓰는 방송문화, 남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의 관객문화 등 그가 지적하는 바는 귀담아둘 만한 주장들이다. 물론 축구를 사랑하는, 아니 축구에 ‘미친’ 한 사람의 애정고백이라는 차원만으로도 이 책은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폴리미디어 펴냄)